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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작품

제목 설악산을 다녀와서
작성자 최유정(중2) 작성일 2003-08-30
작성일 2003-08-30
※중2 설악산행 수학여행(2003년 4월)을 마치고 기행문으로 학교에 제출한 글입니다.


아직은 쌀쌀한 바람이 옷깃을 움츠리게 하는 초 봄, 4월 2일. 나는 기대에 부풀어 들뜬 마음으로 설악산 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그 누가 자연의 연륜 속에 드리워진 고풍의 미에 감탄사를 흘리지 않겠느냐마는, 끝이 보이지 않게 시원하게 뚫린 영동고속도로를 타고 달리는 버스의 창 밖 풍경은 어느 수식어로도 형용하지 못할 정도로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은빛 백사장에 물결치는 푸른 바다와 형이상적으로 광활한 하늘에 몸을 던지는 철새들의 무리지어 가는 모습들, 새벽의 푸른빛을 머금은 구름의 빛이 만드는 몽롱한 차양까지. 무의식적으로 응시한 몽환적인 풍경에 동화되어 가슴속 회상의 그늘을 만들다가 언제부턴가 스르르 잠이 든 나는, 나를 거칠게 흔들어 깨우는 친구의 손길에 깨어 통일전망대에 도착해 승차하고 있는 학생들의 모습을 보았다.
통일전망대는 금강산이 가깝게는 16km, 멀리는 25km로 해금강이 한눈에 들어오는  곳에 위치하여, 우리나라에서 북한과 가장 근접한 최북단 지역이다. 우리는 통일전망대에서 우리나라의 분단의 이유와 통일의 필요성에 대해 교육을 받은 후, 손을 뻗으면 닿을 것 같이 근접해 있는 철문 너머의 북한을 관망하였다. 철문에 막혀 토막난 도로와 이제는 녹슬어버린 울타리를 바라보며 통일이 더 이상은 우리의 소원이 아닌 현실의 모습으로 다가와야 할 것을 새삼 바랬다. 굳게 가로막힌 철문너머의 북한을 뒤로 한 채 나는 숙소에 도착하여 석식을 마치고 나서, 넉넉하게 주어진 자유시간에 같은 반 아이들과 담소를 나누며 사진을 찍기도 하는 등 밤새 친목을 다졌다. 그 날도 어김없이 시계는 정해진 계산대로 정확히 내일을 향해 움직이고 있었지만, 달이 수차례 그 모양을 바꾸고 다시 밝아오는 여명의 하늘에 모습을 감추는 평이한 생활의 반복된 모습과는 다르게, 나는 우정과 감동의 순간을 기억 속에 새기는 데에 분주했다.

보는 것만으로도 흐뭇하게 할 정도로 일정이 빽빽한 이튿날. 우리는 비몽사몽간 6시에 일어나 체육복으로 갈아입은 후, 금강산의 만경동을 무색케 한다는 설악산의 대표적 명승지 비선대로 향했지만 피치못할 사정으로 인하여 관람이 불가능해졌다는 말을 듣고 아쉬워할 뿐이었다. 비선대 푯말에 여운을 남기고 우리는 다시 낙산사로 향했다. 바다의 물결소리만이 간간이 들리는 홍련암에 올라 신비로운 이야기의 서막이 펼쳐지기라도 할 듯 미세하게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왠지 모를 위압감이 묻어나는 고사의 근엄한 자태를 묵묵히 지켜보며 사색(思索)에 잠겼다. 그 날 저녁, 우리는 레크레이션과 해변축제로 열광의 시간을 보내고 설악산 순회로 지쳐 거의 쓰러지듯 잠이 들었고, 하늘이 밝아옴과 동시에 숙소를 떠날 내일도 같이 밝아왔다.

숙소를 떠나는 날. 우리는 교관 분들과 간단한 작별인사를 나누고 다시 차에 올랐다.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간 3일. 떨리는 가슴을 안고 버스에 오른 그 날이 아직 내 가슴속엔 선명한 느낌으로 남아있건만. 3일이란 짧고도 길었던 시간 동안, 나는 무엇을 깨닫고 무엇을 배웠으며 무엇을 얻었을까. 그저 동물원의 원숭이 보듯 아무 생각 없이, 몸이 따라주는 데로, 나른한 회색 필름에 환영이 비추어 지듯?
  '나는 수학여행 때 이런 것 저런 것을 배우고 왔어요' 라고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할 자신은 없다. 그러나 한가지 확신하는 건데, 이번 수학여행이 나를 한순간에 바꿔 놓을 만큼 큰 영향을 미추진 않았더라도, 나를 이루고 자라나게 하는 밑거름 중 하나가 되었을 거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