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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작품

제목 달리기
작성자 김희연(고1) 작성일 2003-08-23
작성일 2003-08-23
소년은
그야말로 사람 같았다.
소년은 달렸다. 해가 끝나도록 달이 흩어지도록.
숨막히는 절망의 평균대를 아슬아슬하게 부여잡듯 필사적으로.
언젠가는 지평선에 닿을 거라면서- 울며 소리치며.
타오르는 거친 숨이 정수리까지 도달한 때는 이미 오래 전.
소년은 달렸다.
기차와 함께, 강을 거슬러 올라가기도 하고, 도시의 불빛에 눈이 아리어 습기가 고여 어지러이 떨어질 때조차도 소년은 고개를 젖히고 이를 악물어 달렸다.
가끔씩 소년의 반대쪽에서 똑같은 모양으로 뛰어오던 소녀를 보며 가슴 설레어도, 달빛을 등져 그림자만 보고 달려야 할 때도 소년은 그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렸다.
대지는 너무나 생각 없이 뛰었고, 하늘은 너무나 성급하게 날았다.

그래, 언제부터 소년이 달렸을까. 소년은 언제부터 길을 잃어야 했으며 언제부터 지평선을 바라보게 되었는가.

소년에게는 작은 새가 있었다. 무기력한 그늘의 어린 시절, 그것은 소년에게 좋은 친구였다.
어느 날 새가 말했다.

어떤 사람이 있었어.
그 사람은 어느 날 어떤 새에게 질문을 받았지.
너는 잘 때 팔을 이불 밖으로 빼고 잠을 자니, 아니면 속으로 넣고 자니? 라는 질문을.
그 사람은 곰곰이 생각해 보았지만, 도무지 기억나질 않았지. 언제나 하는 행동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야.
그래서 그 사람은 오늘 자 보고 말해주겠다고 했지.
그렇게 그가 그날 저녁 잠자리에 들었어. 그런데 팔을 이불 밖으로 빼고 자려니까 왠지 이불 속이 허전한 거야.
그래서 그 사람은
'내가 그동안 팔을 이불 속에 넣고 잤었구나'라고 생각하며 팔을 이불 속으로 집어넣었지.
그런데 이번엔 또 갑갑한 거야. 그래서 다시 팔을 이불 밖으로 꺼내었지만 역시나 어색한 것은 마찬가지였어.
결국 그는 그가 평소에 어떻게 팔을 가누고 잤는지 새벽이 나 가도록 알 수 없었어.

소년은 조금 울었다.

새야, 가르쳐주지 말지 그랬어.

새는 말했다.

달리겠어?

소년은 고개를 끄덕이는 대신 천천히 달리기 시작했다.
그것이 언제였을까. 아이가 소년이 되던 시절, 그 때였을 텐데.

달리는 소년의 주위로 어느 새 사람들이 구경하듯 몰려들었다. 소년은 피를 토하듯 중얼거린다.

이제 아픈 건 몸이 아니라 갈 수 없을 거란 두려움.

어떤 꼬마 아이의 새까만 눈동자가 별빛처럼 스쳐간다.

힘내요.

소년은 달리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래, 그 언젠가가 되면 저 아이로 할거야.
소년은 그렇게 달리고 또 달렸다.
으스러져가는 비명 지르는 뼈마디를 메마르게 위로하며 쉬임없이 달렸다.



그리고 마침내

태엽처럼 돌아가던 소년의 발이 정지했다.
소년은 천천히 쓰러졌다.
거친 숨소리, 쌔근거리는 잠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소년의 심장은
고장 난 시계처럼 모든 움직임을 정지했다. 아무런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그리고 약간의 시간이 멈추었다.

죽은 소년의 몸이 서서히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눈부신 광휘가 충돌하여 바스러지는 듯한 강렬한 섬광이 소년의 시체를 옭아매었고, 그 순간 소년은 새가 되었다…….

한 때 소년이었던 새는 잠에서 갓 깬 듯 날개를 퍼덕였다.
새가 말했다.

새는 달릴 순 없지만-.

새는 고고히 날아올랐다. 그리고는 투명한 은빛의 잔상을 흩뿌리며 어딘가를 향해 날아갔다.


그 새는.
지금쯤 어떤 작디작은 꼬마의 옆에 머물고 있을 것이다.

달리기는 계속, 그렇게 이어질 것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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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랄까요, 계속 이어지는 것은 달리기만이 아닐 거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인간인 이상 공통의 이상을 노력하는 것은 본성이라고 생각하면서 쓴 소설입니다;
진리에의 탐구랄까요(중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