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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한울이의 자전거-'쓸 만한 아이'를 읽고-
작성자 김영우 작성일 2003-05-11
작성일 2003-05-11
수학경시대회에 참가하고 왔답시고 공부는 안 하고 컴퓨터게임만 하다가 엄마한테 혼이 났다. 내 방에 처박혀 속상한 맘을 달래고 있는데, 아빠가 들어오시더니 책을 한 권 내밀며 읽어보라고 말씀하셨다.
‘치~ 화나는데, 책은 무슨 책?’
나는 마음 속으로 쫑알대며 아무 죄 없는 아빠를 흘겨보곤, 한 손으로 대충 넘겨보았다. 처음엔 책장을 세듯 아무 생각 없이 넘기던 나의 손길이 차츰 진지해지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스무 장쯤 읽었을 때엔 엄마한테 혼난 사실을 잊어버릴 정도로, 나는 이 책에 푹 빠져버리고 말았다.
‘쓸 만한 아이’라는 제목을 가진 이 책은, 여러 편의 글을 모아 놓은 것이다. 이금이 선생님께서 쓰셨는데 5학년 1학기 「읽기」교과서에 나오는 ‘우리 집 우렁이각시’라는 동화도 이 책에 실려있다. 나는 여러 편의 동화 중에 맘에 드는 두 편의 이야기만 소개하려고 한다.

처음 이야기는 ‘대화명 스타짱’이라는 이야기이다. 정한주라는 아이는 매일 게임만 하고 채팅을 하다 부모님께 들켜서 혼나는 날이 많아지자 점점 더 컴퓨터에 빠져들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대화명으로 자신을 소개한 아이의 인터넷 속에 있는 집에 방문하게 되었다. 그 아이는 마치 게임에 미쳐있는 듯했다. 이야기를 하려고 말을 걸어보면 짤막하게 대답하고 게임에만 집중했다. 그리고 할머니께 전화가 와도 그냥 “예, 예.”하면서 끊어버렸다. 컴퓨터만 쳐다보고 있는 그 아이를 보고 한주는 그 집을 나오려고 했다. 솔직히, 한 번쯤 붙잡으면 못이기는 척 다시 앉으려고 생각했지만 그 아이는 쳐다보지도 않았다. 결국 집을 나왔지만 뒤를 돌아보진 않았다. 왠지 그 아이와 같아져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도 컴퓨터게임을 무척 좋아한다. 그리고 게임 중독이 무엇인지도 안다. 그러나 아까 그 아이처럼 어린 나이에도 게임에 중독된다는 사실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여태껏 난 어른들만 인터넷에 중독되는 줄로 알았다. 가끔 TV에서 어른들이 인터넷에 중독되어 살인을 저지르거나 가족으로부터 버림받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나는 어른들이 게임에 중독되어 살인을 하는 것도 무서운 일이지만, 어린이가 게임에 중독되는 것은 더 끔찍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어려서부터 게임에 중독된다면 어른이 되어서는 뭐가 되겠는가? 상상만 해도 몸이 덜덜 떨린다. 나는 절대로 컴퓨터게임에 중독되진 않을 것이다. 아니, 하루에 한 시간 정도만 게임을 할 것이다.

그 다음 이야기는 책이름과 같은 제목인 ‘쓸만한 아이’다. 어느 날, 한울이 엄마는 신문을 보다가 이런 광고를 보게 되었다. ‘깡통 만개를 모으면 어른용, 어린이용 자전거 중에서 한 가지를 선택할 수 있고, 그 밑으로는 라디오, 도서상품권과 교환해 드립니다.’라는 글이다. 그 날부터 한울이의 깡통 모으기는 시작되었다. 일부러 깡통 음료수를 사 먹거나, 자신의 동네는 물론 다른 동네 쓰레기통까지 뒤지며 말이다. 예전부터 한울이는 쓸만한 것이라면 다 주워오는 아이였는데, 덕분에 더 많은 물건을 가져오게 되었다. 엄마는 그런 한울이의 행동을 별로 달갑지 않게 생각하셨다.
깡통을 모아놓은 자루가 불룩해 질 때쯤, 준혁이와 만나게 되었다. 준혁이는 한울이와 누가 빨리 깡통 만개를 모으나 시합을 한 친구다. 그런데 준혁이는 벌써 자전거를 타고 있었다. 한울이 엄마가, “벌써 깡통 만개를 다 모았어?“라고 물어보자, 깡통 모으느라고 공부를 소홀히 하는 것 같아서 그냥 사 줬다고 준혁이 엄마가 대답했다. 그 말을 들은 한울이 엄마는 깡통 빼고는 어떤 물건이든 집으로 가져오지 못하게 했다. 그 때 한울이 할아버지가 비 오는 날 잔칫집을 걸어서 다녀오시다가 독감에 걸려서 앓아 누우셨다는 소식이 왔다. 한울이 할아버지는 원래 십리안쪽 길은 자전거를 타고 다니시는 분인데, 너무 오래된 자전거가 고장이 나서 타실 수가 없었던 것이다.
드디어 깡통 만개가 되던 날, 한울이는 어른용 자전거를 골랐다. 바로 옆에 그토록 갖고 싶어한 어린이용 자전거가 있는데도 말이다. 한울이 엄마가 그 이유를 물어보니 할아버지께 드릴 선물이라는 것이다. 할아버지께 이 자전거를 드리면 먼 길을 걸어가지 않으셔도 되고, 또 방학 때에는 할아버지와 함께 자전거를 탈 수 있어서 좋을 것이라고 말한다. 또 자신이 어른이 되면 할아버지를 태워드릴 것이란다. 그 말을 들은 한울이 엄마는 “넌 참 쓸만한 아이야.”라고 칭찬해 주셨다. 우와, 내가 생각해봐도 한울이는 진짜 쓸 만한 아이 같다. 할아버지를 위해서 그토록 고생해서 얻은 자전거를 포기하다니......

이 이야긴 나를 감동시켰다. 나는 원래 책을 읽어도 거의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는 편인데, 이 이야기는 좀 달랐다. 눈물도 꽤 많이 흘렸다. 아버지는 그 이유가 내가 한울이랑 같은 또래라서 그렇다고 했다. 그래서 한울이의 마음을 이해하기 때문에 눈물을 흘린 것이라고 한다. 내가 직접 겪어본 일은 아니지만 말이다.
그리고 우리 할아버지는 지금 이 세상에 안 계신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약주를 너무 많이 드셔서 돌아가셨다고 한다. 그래서 나는 할아버지가 태워주는 자전거를 탈 수 없다. 한편으론 할아버지가 태워주시는 자전거를 타는 한울이가 부럽기도 하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 왜냐하면 내가 어른이 되면 돌아가신 할아버지 대신 아버지를 태워드릴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