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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작품

제목 할머니의 미소
작성자 김영우 작성일 2002-12-18
작성일 2002-12-18
얼마 전에 있었던 일이다.
그 날은 몹시도 추웠다. 기상청에서 '이상한파'라고 했을 정도니까.
이까짓 추위쯤은 문제없다고 잘난 체하던 나는, 내복을 입지 않고 학교에 갔다.
그러나 내 몸은 내 생각만큼 튼튼하지 못했나 보다. 몸을 잔뜩 웅크려도 덜덜 떨리는 걸 어쩔 수가 없었다. 엄마 말씀을 듣지 않은 게 후회됐다.

학교수업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던 길이었다.
따뜻한 집이 그리워서 친구들이 게임하자는 것도 뿌리치고 거의 뛰다시피 했다.
그런데 집에 거의 다다랐을 때 눈앞에 이상한 물체가 보였다. 내 키만큼 짐이 실린 리어카가 혼자 움직이는 게 아닌가?
리어카에 실려있던 것은 빈 종이박스며 신문지, 빈 병, 고철 등 재활용품이었다. 그런데 리어카가 어떻게 스스로 움직이지?
나는 몹시 궁금해하며 리어카 앞쪽으로 가보았다. 그러자 앞에는 놀랍게도 할머니 한 분이 리어카를 끌고 계셨다. 아니 리어카에 매달려 계셨다.
연세가 너무 많으신 할머니는 허리가 반으로 꺾여 있어서 리어카의 키보다도 훨씬 작았던 것이다. 그래서 내 키보다도 작게 실린 짐에 가려서 뒤에서는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갑자기 작은댁에 계시는 할머니가 생각났다. 우리 집에서 함께 사시다가 아빠의 사업실패로 작은댁으로 가신 우리할머니!

나는 할머니를 도와드리기로 마음먹었다.
그래서 “할머니 제가 좀 밀어 드릴게요”라고 말씀드리고 뒤에서 리어카를 밀었다.
한참 밀다보니 우리 집을 지나쳤다. 그래도 멈추지 않고 계속 밀었다. 이젠 춥지도 않고 오히려 땀이 뻘뻘 날만큼 더웠다.
할머니는 이젠 됐다며 그만 두라 하신다. 나는 요 앞 언덕 너머까지만 밀어드리겠다고 했다. 드디어 리어카가 언덕을 넘어섰다.
그런데 리어카가 경사를 따라 막 굴러가기 시작했다. 깜짝 놀란 나는 리어카가 앞으로 굴러가는 걸 막기 위해 아무거나 잡고 뒤로 힘껏 끌어당겼다. 그러나 그게 나의 큰 실수였다.
내가 얼떨결에 잡아당긴 것이 하필이면 짐을 묶은 밧줄이지 뭔가? 밧줄이 풀리며 꽁꽁 묶어 놓았던 짐이 땅바닥으로 와르르 쏟아져 내렸다.
난 너무 당황했다. 너무 놀라서 눈물까지 찔끔 나왔다.

할머니께 너무나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할머니께 죄송하다고 말씀드렸다. 그리고 마음 속으로는 할머니께서 혼을 내셔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할머니께서는 괜찮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는 땅에 떨어진 빈 박스를 주섬주섬 줍고 있는 내 손을 잡으시며 빙그레 웃으셨다. 비록 할머니의 손은 차갑고 거칠었지만 우리할머니의 손만큼이나 다정했다.
내가 할 테니 그냥 내버려두고 집에 가라는 할머니의 말씀을 어기고, 할머니가 짐 싣는 걸 끝까지 도와드렸다. 할머니가 리어카를 끌고 가시며 날 보고 다시 한 번 빙그레 웃으셨다.
너무 추워서 꽁꽁 얼어붙은 얼굴의 쭈글쭈글한 미소! 하지만 내 눈엔 이 세상의 어떤 미소보다도 아름답게 보였다.

몹시 추웠던 날에 만났던 그 할머니의 따뜻하고 인자한 미소는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  
(초등 4학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