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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소설

제목 꽃, 그림자, 너
글쓴이 최자인
" 윤 리...군 맞죠? "
" 네. "
질문들을 들으며 빈칸을 적는다.
" 유화 그룹 회장님의 아드님시이라...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주위의 시선 때문에 학교 생활이 그리 매끄럽지 못할 수도 있겠지만 가능한 학교에서 조취를 취할테니 조금만 힘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 네. "
"아, 가족란만 쓰시면 되겠네요. 형제 자매 분이 따로 계십니까?"
샤프심이 질문의 끝과 동시에 "똑"하고 부러졌고, 짧은 몇 초간 숨소리 없는 침묵이 흘렀다.
" ...아뇨, 없습니다. "


윤 리 군이 3반 교실에 편입된 후, 이 학교 공기의 흐름이 역순행적으로 바뀌었다.
마치 그것은 볼 것 없는 동물들이 가득한 넓은 초원에 한 마리의 사자가 찾아온 것과 같은 느낌이였다.
그런 사자가 혼자 가만히 있으랴, 공작같이 끼를 부리며 다가오는 녀석들도 있다.
하지만 공작은 사자의 짝이 될 수는 없다.
" 안녕, 이번에 전학 온 애지? 난 신아람이라해. 너랑 나랑은 남다른 태생, 쟤네들이랑은 급이 다르지. 급이 같은 우리 둘이가 어울려야 한 폭의 그림이 되지 않겠어? "
" 그래. 우리 그룹에 들어와. 너랑 어울릴만한 애들만 구성되있지. 만족할꺼야. "
" 꺼져. "
" 뭐... 뭐라고? "
" 급 같은 걸 나누는 너네들과 나는 이미 급이 다른 것 같은데? "
오른쪽 손을 올리며 윤 리 군의 얼굴에 검지를 가리켰다.
" 내가 위면. "
공작새들의 무리들을 가리켰다.
" 너네들은 아래. "
교실에 있던 아이들은 그의 명쾌한 대답에 다들 마음속으로 희열을 외치었다.
" 너 그러다간 후회해! 우리 그룹에 들어오면 말이지. 급식은 말야-"
" 거기까지. "
공작새들에게 향해 다가온 한 마리의 늑대.
" 타반 출입 금지. 몰라? "
" 칫. 천민 주제에 꼴은. "
그녀의 교복치마에 가래를 뱉곤 공작새 무리들은 이내 교실을 나갔다.
흔들림 없는 표정으로 가래를 털어낸 뒤 윤 리 군을 째려보았다.
" 너도 언행에 조심해. 싸울려면 밖에서 싸워줘. "
뒤를 돌아 제자리를 가는 그녀의 뒷모습은 자긍심이 강한 늑대의 뒷모습과 같았다.
이로서 학교는 한 마리의 사자가 와 완벽한 동물의 왕국이 되었다.




" 하하하하하! 그래서? 그 무리들한테 뭐라했는데? "
" 꺼져라 했지. "
" 푸하하하하하! 정말이지 학교란 곳은 재밌는 것 같아. 나도 가고싶어. "
웃음 소리의 진동과 같이 기모노가 흔들흔들 거려 천천히 내려갔다.
" 학교에 가고 싶으면 몸부터 빨리 나아. "
" 헤에- 그치만 난 불치병인걸. 그러니 못 가. "
기모노를 올려 입혀주고 윤 리 군은 인상을 찢부렸다.
" 이 상처는 언제 생긴거야. "
묵묵부답. 그는 발가락으로 풀 사이를 헤엄쳤다.
" 얼른 하고 끝내. "
그는 윤 리 군의 말에 기다렸다듯이 소매에서 커터칼을 꺼내 다가갔다.
그와 상처난 곳과 똑같이 윤 리 군의 쇄골에 커터칼로 선을 그었다. 선명한 선이 나올 때 까지 천천히 그의 쇄골을 더듬으며 그어갔다.
몇 초 뒤 선 사이로 붉은 실들이 줄을 이어 흘러내렸다.
그는 윤 리 군의 윗옷을 벗겨내어 자기와 똑같은 상처들을 본 뒤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기모노를 마저 벗으려 하자 그의 두 팔을 세게 잡았다.
" 역시, 날 벗어나지 못하는 구나. "
비실비실한 웃음을 내뱉고 윤 리 군의 가슴에 얼굴을 파뭍어 기댔다.
반쯤 벗겨진 기모노 밖의 피부가 윤 리 군의 피부에 닿아 온기가 느껴졌다.
상처들을 하나하나씩 만져가며 촉감을 느꼈다.
" 괴로워? 나 때문에? "
" 전혀. "
" 형식적인 대답. 싫지만 맞는 말이야. 날 사랑한다면 나와 똑같은 상처를 받을 필요가 있어. 한 사람만 상처받는다면 너무나 이기적인 일이잖아. 난 이기적인게 아냐. 공평할 뿐이지. 내 말이 맞지? "
" 맞아. "
윤 리 군은 벗은 와이셔츠로 그를 덮은 뒤 팔로 감싸주었다.
" 가자. 네 방으로. 춥다. "
" 아하하하하하... 역시... 날 사랑해주는구나. "
그는 발바닥 밑에 있던 들꽃을 꺾은 뒤 나지막하게 말하였다.




" 끝까지 날 사랑해줘, 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