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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소설

제목 꽃, 그림자, 너 01
글쓴이 최자인
한동안 머물던 소란도 서서히 일상에 뭍혀갔다,
한 명만 빼고 말이다.
" 금화야. 체육시간도 아닌데 왜 체육복을 입은거니? 너가 규정을 어기다니 별일이구나. "
국어 시간이 시작된지 10분이 지나서야 반장은 교실에 들어왔다.
하얀 가루로 범벅인 교복을 뒤로한 채 재빨리 자리에 가 앉아 교과서를 꺼내었다.
" 늦게 와서 죄송합니다. 사정이 있었습니다. 벌점은 제대로 받겠습니다. "
단호하고도 명확한 그녀의 대답. 윤 리 군이 제일 좋아하는 대답 형식이기도 하다.
이런 식으로 비슷한 일들이 하루에 2,3 번 씩 그녀에게 생겼다. 선생님들은 반장을 걱정했지만 괜찮다고 강하게 부정하니 어떻게 손을 델 수도 없는 노릇이였다.
하지만 아이들은 안다. 그녀가 사실은 괜찮지 않은 사실을 말이다.
아마도 그건 윤 리 군이 와서 부터 발생하기 시작하였다.



" 저기 말야, 내 남자친구가 요새 딴 여자랑 바람을 피고 있는 것 같거든? 내 말이 맞을까? "
"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
" 어머, 전교 1등이면 뭐든지 다 알아야 하는거 아니니? "
아람은 금화의 머리카락을 배배 꼬며 눈을 가까이 마주댔다.
굴하지 않고 금화의 눈은 하나의 흔들림 없이 그녀의 눈을 똑바로 바라봤다.
" 난 네 그 눈이 맘에 안들어. "
잡고 있던 머리카락을 세게 끌어당겨 쓰레기장으로 던져버렸다.
" 빨리 처리해. "
" 이거 놔! 돈에 환장한 놈들, 아주 그냥 돈독에 올랐어. 내 몸에 손대지 마! '
그녀의 울부짖음에도 여왕벌의 부하들은 미치도록 그녀를 더럽혔다.
계속되는 울부짖음에도 아무도, 그 누구도 도와주러 오지 않았다.




늦은 오후. 시계는 6시를 향해가고 있었다.
야자가 없는 오늘은 아무도 학교에 남지 안았다.
윤 리 군은 조용해진 이 곳에서 숨을 돌리기 위해 도서관에 들어갔다. 사서 선생님도 가시고 아무도 없는 것 같아 한층 더 고요했다.
나지막한 틈에 문을 열자 " 끼이익 " 하고 소리가 울려퍼졌다.
" 누구세요? "
금화가 책장들 사이로 얼굴을 내밀었다.
" 아무도 없는 줄 알았어. 금방 보고 나갈께. "
" 마음대로. "
윤 리 군은 그녀의 대답을 들을 때 마다 생각한다. 어쩜 저렇게 사람이 올곧고도 냉정할 수 있는지. 마치 대나무를 떠오르게 하였다. 대나무처럼 어떤 시련에도 굴복하지 안고 앞만 보며 냉정하게 판단을 하는... 그런 점이 멋있다고 생각한다.
한참 생각에 빠져있을 때 건너편 책장에서 책이 쏟아지는 소리가 들렸다.
달려가보니 떨어진 책들 사이에 금화는 우두커니 서있었다.
자세를 보아하니, 높은 곳에 있는 책을 꺼낼려다 옆에 있던 책들이 쓰러진 것 같았다.
마지막 책 하나가 금화의 정수리를 찍고 또다시 바닥에 떨어졌다.
"야... 괜찮냐. 가만히 서있고 뭐 해. "
윤 리 군은 떨어진 책들을 주우며 정리를 하였다. 책을 다 주워갈 때 쯤 가만히 서 있는 금화를 보며 화를 냈다.
" 너도 같이 안 돕고 뭐해? 혼자 멍하니 서있... 곤... 말야..... "
책을 들고 일어서자 금화는 울고있었다.
" 아...파... "
" 당연히 책에 맞았으니까 아프지. 많이 아프냐? "
" 흑....흐윽.... 흐... 아파 죽겠어... 아파 죽겠단...말야....흑.... "
깜빡 잊고 있었다. 아무리 굳센 대나무도 가끔은 썩어 문드러질 때도 있단걸 말이다. 왜 그걸, 인제 와서, 대나무 같은 그녀가 상처에 울 때 깨달은걸까.
아마도 상처는 깊은 곳까지 썩어 있었던 것 같았다.
마음속 깊이 말이다.
낯선 그녀의 약한 모습에 윤 리 군은 죄책감과 같이 그녀를 안아주었다.
" 아플 땐 말야. "
힘껏 그녀를 안아주었다.
" 아프다고 말하는거야. 이 대나무야. "



그녀의 상처가 서서히 아물때 쯤엔,
그의 죄책감이 이미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그것은 흰 장미 대신 대나무를 선택한 그의 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