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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신청] 3기 신청합니다 . 클라라와 태양
글쓴이 옥미선

이 책은 노벨문학상을 받은 가즈오 이시구로의 장편 소설이다. 클라라와 태양이라는 제목에 걸맞게 태양을 떠올리게 하는 표지가 진주황으로 강렬하다. 작가에 대해서, 책에 대해서도 전혀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 제목만으로는 전혀 감을 잡을 수가 없던 책이었다. 책을 다 읽고 난 후 이 이야기가 영화로 나오면 어떨까 생각했는데, 소니 픽처스가 영화화한다니 기대를 해 봐도 좋겠다.

미래의 어느 시점에 에이에프라고 불리는 ai 가 사람들의 선택을 기다리며 가게에 전시되어 있다. ai들은 태양광이 필요한 인공지능이다. 때문에 태양빛을 더 잘 받기 위해서, 사람들에게 선택되기 위해서 앞쪽 쇼윈도에 가길 원한다. 클라라에게는 한 가지 다른 이유가 더 있었는데 바로 바깥세상을 더 세세하게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호기심은 인간이 가지는 특성이라고 생각했는데, 클라라는 바깥세상이 궁금했다.

클라라는 조시라는 소녀에게 선택을 받아 조시네 집으로 가게 되고 아픈 조시를 낫게 하기 위해 태양을 노하게 하는 쿠팅스 기계를 파괴할 계획을 세운다. 조시의 아빠 도움을 받지만 충분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좋아질 때도 있지만 모두들 조시는 희망이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클라라의 정성 때문일까 조시는 회복해서 대학에 가게 되고 클라라는 버려지게 되는 이야기다.


이 작품은 머지 않은 우리의 미래라고 생각되어 거부감이 들지는 않았다. 조시의 엄마는 조시가 잘못될 때를 대비해 조시의 모습을 본따 인형을 만들고 클라라를 조시로 대체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클라라를 선택할 때 조시를 흉내내어 걸어보기를 요구하는 장면이 있는데, 클라라의 능력을 알고 싶어서라고 생각했지만 그게 아니었다. 이 역시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된다. 이미 세상을 떠난 사랑하는 가족을 데이터로 만들어 대화를 하는 일이 일어나고 있으니.

인공지능인 클라라는 그녀(클라라를 그녀라고 칭해도 될까?)의 공감능력과 감정을 느끼는 면에서는 인공지능 같지 않게 느껴진다. 특히나 이 책은 클라라의 시점에서 이야기가 진행되고 있기에 처음엔 어떤 상황인지 감이 오지 않았다. 클라라는 조시의 어머니를 위로하고 조시가 나을거라는 희망을 가지며 조시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한다. 다른 ai와는 달리 관찰력이 뛰어나고 인간의 감정을 좀 더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눈에 보이는 어떤 현상의 이면까지 생각하려고 노력하는 모습까지 보인다. 인공지능은 학습을 통해 모든 것을 배운다고 알고 있는데 클라라는 계속 관찰하고 감정에 대해 생각하며 학습을 한다. 배움이란 무엇일까 생각을 해 본다. 배움은 인간만이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ai가 나타난 이후 인간만의 영역은 아니게 되었다.

조시는 몸이 아플 때가 많아 클라라가 매장에 있을 때 와서 널 데리고 가겠다고 약속을 하고도 한동안 올 수 없었던 적이 있다. 그때 어느 고객이 클라라를 선택하려고 했지만 클라라는 조시를 기다리며 반응하지 않는다. ai에겐 금지된 행동으로 클라라는 매니저에게 경고를 받는다. 다음엔 이런 일이 있으면 안된다는. 인공지능이 자신의 자유의지를 갖게 된 것이다. 인간에게 자유의지는 반드시 필요하지만 인공지능의 자유의지는 걱정스럽다. 아마도 인공지능에 대해 부정적인 영화? 매체?를 많이 봤기 때문인 것 같다.

클라라는 아픈 조시를 위해 존재했기 때문에 건강해진 조시에게 클라라는 필요가 없어진다. 왜 유기견이 생각나는 걸까? ai의 존재의 의미가 무엇인가, 우리가 사용하는 모든 것이 인간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지고 사용되고 있다. 온갖 가전들이 인공지능이 탑재되어 똑똑해져서 우리의 삶을 편리하게 하지만 고장이 나면 아무 미련없이 버리고 양심의 가책은 전혀 갖지 않는다. 오히려 더 좋은 성능의 최신 사양의 가전을 사는 즐거움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말을 하고 스스로 배우고 특히나 클라라처럼 완벽하진 않지만 감정을 느끼는 인공지능은 어떻게 해야할까? 앞으로 인공지능과 공존해 살아야할 텐데,

교류모임에서 몇몇 아이들이 클라라의 팔다리를 잡고 던져보자는 제안을 한다. 에이에프는 그런 상황에서 바르게 착지할 수 있게 설계가 되어 있기 때문에 일종의 실험인 것 같지만 아이들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은 클라라에 대한 응징같은 것이었다. 더군다나 조시는 이 상황에서 클라라를 보호해주지 않는다. 대신 어떤 아이가 그것이 나쁜 짓이라며 말린다. 조시에게 클라라는 어떤 존재였을까?

아낌없이 주는 나무도 생각나고 프랑켄슈타인도 생각나는 작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