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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장도서

멋진 신세계

지은이
올더스 헉슬리
출판사
문예출판사
페이지수
334
대상
중학생이상
영국 소설가 올더스 헉슬리의 1932년 작으로 과학문명의 과도한 발전 결과 인간성의 상실을 결과하고 만 미래사회의 모습을 그렸다. 미래의 인간은 출생시부터 인공수정에 의해 대량생산되어 지배자 계급과와 피지배자로 운명이 결정된다. 개성도 가정도 미래사회에서는 의미 없는 것이며, 감정도 말살된다. 저자의 현대문명에 대한 강렬한 비판이 깃든 문명비판 문학의 고전. 독자서평 과학에 지배당한 세상에 대한 경고문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는 유토피아를 주제로 한다. 20세기 초에 쓰인 소설이지만 근래에 출판되고 있는 유토피아를 주제로 한 책과 비교해 보았을때 손색이 없을 정도로 그 상상력이 뛰어나다. 전혀 촌스럽지 않으며, 전혀 동떨어진 얘기도 아니었다. 미래를 내다보는 작가의 눈에 경의를 표하고 싶을 정도이다. 책속의 유토피아는 이런 세상이다. 유전자 조작을 통해 계층이 나뉘어진채 태어나는 인간들과 그들의 계층에 적합한 성격과 행동을 수면시간에 주입한다. 그러한 현실에 대한 저항의식이나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고민들과 그로 인해 생겨나는 많은 감정들에 대해서는 소마라는 알약 한알을 먹음으로써 더이상의 인간적인 고뇌는 허용하지도, 허용되지도 않는다. 혼란에 대한 두려움으로 시작된 이 무모함은 소수에 의해 계획되고 조작된 세상이며, 이 사회를 벗어난 다른 사회는 원시에 지나지 않는다. 원시의 세상을 질타하는 그 누군가가 이 세상에 들어오지만 자유롭지 못한 감정, 인간답지 못한 생활은 그에게 다시 야만의 생활을 택하게 한다. 그러나 이 책은 단지 유토피아를 표현하는데 그치지 않는다. 그 속에서 유토피아를 조작해낸 엘리트들의 행동에 모순이 있음을 밝히고, 과학의 발전을 통한 더나은 생활의 변화를 꿈꾸는 과학자와 지식인들은 반드시 책임감을 수반해야 한다는 경고를 하고 있다. 유전자 조작을 통해 많은 생물들이 그리고 곧 인간들이 계획되어지는 세상이 지금의 현실이다. '멋진 신세계'를 통해 미래를 볼 수 있다. 하지만 우리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세상은 분명 아닐테다. 지금의 과학수준과 발전의 추세로 계속된다면 언젠가 이런 세상을 계획하는 사람은 존재할 것이다. 그런 유토피아를 꿈꾸는 사람은 반드시 이 책을 읽어야 한다. 신세계에 대한 막연한 동경을 가진 사람과 막연한 두려움을 가진 사람에게 이 책은 경고문이 될 것이다. <인터넷서점 http://www.yes24.com aiyaa 님이 쓰신 서평> 끔찍한, 멋진 신세계 오랜 물질 문명과 의식의 진보 속에서 인류가 진정으로 추구한 것은 과연 무엇이었는가. 이 [멋진 신세계]라는 과학 소설은 그 진보의 결과로서 '문명국'이라는 한 이상국을 제시한다. 아이러니하게도, A. 헉슬리는 이 소설에서 [멋진 신세계]라는 단어로 오히려 [끔찍한 신세계]라는 뉘앙스를 풍기게 하려고 한 듯 하다. 그 곳에서는 타인과의 갈등, 스스로의 중대한 결단, 회의, 심지어 사랑이나 욕구같은 기본적인 감정까지 제어를 당한다. 아이들은 태어날 때부터 시험관에서 길러지고, 평생 부모나 부부란 의미를 모르고 지낸다. '문명국'의 사람들에게 제일 큰 욕은 '너희 어머니' 혹은 '아버지'다. 문명인은 한 사람을 오래 사랑할 권리를 갖지 못한다. 그들은 아주 어릴 때부터 성에 대해 배우고, 최대한 자유로운-도가 지나쳐 문란에 가까운- 성생활을 즐긴다. 사람들은 감정을 억제하고 평화스런 기분을 갖게 하는 '소마'라는 약을 습관처럼 먹는다. 그들 인류는 동등하게 인격자의 모습을 하고 있다. 삶은 안락하고, '모두는 모두를 소유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나는 그들을 문명의 최고점에 다다른 행복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차라리 최고급 성냥갑 속에 나란히 뉘인 성냥들처럼 보인다. 인류의 역사는 대부분 자유를 향한 투쟁, 평등을 향한 투쟁, 그리고 이념을 사수하기 위한 투쟁으로 이어졌다. 보다 행복하고 인간다운 삶을 살기 위해 인류는 끊임없이 노력해왔고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언제나 문제 해결은 그에 따르는 또 다른 문제들을 불러 일으켰다. 완벽한 제도나 정치인은 없었으며, 가장 정당한 판결이 무엇인지 확실히 말할 수 조차 없었다. 다수결은 권력자의 지배 수단으로 쓰이기도 했으며, 개인의 욕망은 타인을 옭아매며 온갖 사회 갈등을 일으켰다. 그러나 갈등의 무마가 가장 좋은 해결 방법이 될 수는 없다. '문명인'들은 스스로 갈등을 차단하는 방법을 택했지만, 그 모습은 권력에 눌려 의사 표현을 하지 못했던 옛날 사람들이나 다를 바 없다. 문제를 간소화하고 최대한 안정적인 상태만을 추구하려는 이념 아닌 이념에 그들은 지배받고 있는 것이다. '문명인'들은 외부에서 자극받은 어떤 일에도 적절한 대응책을 찾지 못한다. 그러나 진통제 주사로 아픔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환자는 진실로 행복한 것인가. '고통'은 어떤 의미에서는 선택의 결과이다. 고통을 알기 때문에 우리는 환부를 치료할 수 있다. 진정한 자유인은 고통을 받아들이고 고통을 치유하는 사람인 것이다. 조작된 문명 아래서 '문명인'들은 약기운에 의존한 생을 살아간다. 그들에게는 도전도 기회도 없으며, 용기나 눈물도 필요치않다. 그들에게 있어 행복이란 획일화된 자동 판매기의 내용물과도 같다. 그러나 자유인들-그들이 '새비지'라고 하여 경멸하는-은 아버지와 어머니의 고통 속에서 탄생한다. 그들은 타인과 사회와의 고달픈 부딪힘 속에서 때로는 깊은 절망을 느끼지만, 때로는 하늘을 날아오르는 기쁨도 느낀다. 우리는 인생에 대한 이성적이고 인간적인 시각을 가져야 한다. 문명의 차디찬 거울 속에서도, 삶의 갈등을 보다 조화롭게 해결하려고 애쓰는 인류의 모습은 여전히 아름답게 비췰 것이다. 그런 인류의 미래는 적어도 이 [멋진 신세계]의 모습보다는 인간적이지 않을까. <인터넷서점 http://www.yes24.com gradiva 님이 쓰신 서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