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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장도서

카오스의 아이들

지은이
더글러스 러시코프
출판사
민음사
페이지수
342
대상
`스크린 세대`라고 불리는 젊은 세대들의 대중문 화를 살펴보면서 전자오락게임과 웹브라우저로 가득한세상에서 커가는 것이 이들의 행동과 사고를 어떻게 바꾸고 있는지, 상상도 못할정도로 복잡해질 미래를 살아가는 방도는 무엇인가에 대해 모색했다. 미디어 서평 별천지 서핑하는 10대 문화보고서 ...어른들은 이해할 수 없다. 1분에 한번씩 채널을 바꾸며 어떻게 TV를 볼 수 있단 말인가. 애들이 전자오락에만 묻혀있고 책을 안 읽는다면 이 사회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인터넷, 정보고속도로, 정보혁명으로 이야기되는 20세기 후반의 기술의 발전은 정상궤도에서 벗어난 아이들을 낳을 뿐인가. 아이들이 이렇다면 우리는 어디서 미래의 희망을 발견할 수 있는가. 90년대 젊은이의 테크노 문화에 대한 평론가와 작가로 잘 알려진 러시코프의 `카오스의 아이들`은 이런 질문에 답을 제시한다. 그의 답은 간단하고 낙천적이다. 걱정하지 말라는 것이다. 아이들의 이러한 모습은 인간과 기계가 共進化 (공진화)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거치는 새로운 `군체적 생명형태`의 한 측면이라는 것이다. 간단히 말해서 어른들의 걱정은 시작과 끝, 선과 악, 상과 벌, 승자와 패자가 분명한 선형적(Linear)인 문화와 사회 속에서 자라나고 교육받은 기성세대가 프랙탈, 자기반븍, 비선형적인 문화, 서핑, 단절적인 이미지, 순간성 등 카오스의 문화에 익숙하고 이 속에서 자라온 카오스의 아이들을 이해하지 못함에서 비롯되었다는 주장이다. 그래서 그는 이 차이를 단순한 세대차이가 아니라, 개인주의와 선형성, 이원론과 기계론에 익숙한 전통적인 사회와 군체성과 카오스, 전체성과 애니미즘의 부상으로 특징지어지는 새로운 사회의 대립으로 본다. 이 새로운 사회를 가능케 한 것은 전 세계의 컴퓨터를 이어주는 전지구적 네트워크라는 기술이다. 리시코프의 주장은 간결하고 재미있지만, 그 근거는 빈약하다. 그는 현대 수학의 카오스와 물리학의 불확정성, 분자 생물학을 얘기하고 이를 아이들의 문화와 연결시키려 애쓰지만 그 분석은 깊이 있지도, 설득력 있지도 못하다. 예를 들어 오락을 많이하는 아이가 머리가 좋다는 연구결과를 인용하거나, 1분에 한번씩 TV채널을 돌리던 아이가 나중에 성인이 되면 업무 프로그램을 돌리며, 한손으론 전자메일을 체크하고, 인터넷으로 상담을 하면서, 전화를 받는 등 다양한 일을 재빨리 바꾸며 할 수 있다는 희망을 이야기할 뿐이다. 이 책의 재미는 다른 데 있다. 이 책은 파워레인저, 닌자거북, 모시 핏, 펄프픽션, 소오강호, 스타트렉, UFO신드롬, 낙태와 사형논쟁, 컴퓨터 바이러스 등 20세기 말엽을 특징 짓는 미디어, 사회문화 현상에 대한 저자의 가벼운, 그렇지만 재미있는 비평을 담고 있다. 파워 레인저에 관심이 있으면 그 부분만, UFO와 낙태가 무슨 상관이 있는지 알고 싶으면 그 관련 부분만, 미국의 30대 백인 남성이 소오강호를 어떻게 보았는지 알고 싶으면 역시 관련 몇쪽만 읽으면 된다. 그렇지만 번역본에는 원서에 있는 색인(Index)이 없다. 이는 이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봐야 되는 것처럼 만들어 버렸다. 요즘같은 세상에서 `점점 소수의 사람만이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는다`는 저자의 중요한 메시지는 이렇게 가볍게 무시된 셈이다. <문화일보, 97/8/27 홍성욱(캐나다 토론토대 교수)> 미국 문화비평가 더글러스 러시코프의 <카오스의 아이들>(원제 Playing the Future)은 젊은 문화에 대한 연구서이자 옹호서이다(민음사 간). 1960년대 히피의 피를 이어받은 저자는 갖가지 주변문화가 갖는 현대적 의미를 성찰한다. 특히 생활문화에 대한 비평이 생생하고 구체적이다. 저자는 윈드서핑에서 파워레인저(미국의 어린이 TV프로그램),레이브(청소년들이 밤에 모여 춤추는 파티)에 이르는 다양한 문화 현상을 미래의 관점에서 조망하면서 파도처럼 다가오는 미래를 놀기 위해 어떤 자질이 필요한가를 보여준다. 지난 60년대의 문화운동가처럼 대항문화의 건설을 주장하는 대신 스케이트 보드에서 컴퓨터 게임에 이르기까지 현재 유행하는 하위문화의 껍데기를 벗겨내어 그 속내를 들여다보도록 인도하고 있다. 러시코프는 기술과 문화의 연관을 드러내는 탁월한 재능을 보인다. 그는 스노 보드에서 인식의 틈새를 건너뛰는 비선형적 사고의 진수를 찾아내는가 하면, 애니미즘의 부활을 보고 기술 샤머니즘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낸다. 그리고 영화 펄프픽션에서 비선형적 논리를 발견하고, 만화영화 심프슨 가족에서 브레히트의 소격효과를 끄집어내는 혜안도 갖고 있다. 이 책은 근대 데카르트적 이원론의 한계를 가볍게 뛰어넘는 카오스 시대의 비선형적 인식구조와 감각형태가 현대의 문화속에 어떻게 짜여들어가 있는가를 펼쳐 보여준다.또한 카오스의 아이들은 청소년 때려잡기에 몰두하는 우리의 한심스런 문화 풍토에 시원한 한줄기 소나기를 뿌려준다. 마치 영국 낭만주의 시인 워즈워드가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라고 말한 것처럼 아이들의 문화에서 무지개를 본다. 그는 그것이 비록 혼란과 혼돈의 구렁텅이로 보이더라도 바로 그 때문에 새로운 활력과 창조의 밑거름이 되리라는 믿음을 갖고 있다. 우리가 아이들의 비디오 「빨간마후라」에 절망하면서 청소년문화를 계도되어야 마땅한 일탈의 문화로 낙인찍고 있을 때 러시코프는 거꾸로 마약과 레이브를 비롯한 갖가지 주변문화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낸다. 러시코프식으로 풀어보면 「빨간마후라」는 스크린세대가 열어놓은 비종말론적 사유와 행동의 극치일지도 모른다. 이 카오스의 세계에 우리는 정신이 돌아버리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을까. 선형적 단순성에 익숙해 있는 사람들은 비선형적 복잡성을 기괴함·비일관성·변태로 본다.디지털 시대의 선두주자인 젊은 사이버족들은 정보와 물질, 기계와 사고, 일과 놀이를 이원론적으로 구분하지 않는다. 그들은 첨단 기술과 마술을 한데 뒤섞는 카오스의 자식들인 것이다. 저자는 현대의 주변문화에서 이원성의 몰락과 전체성의 새로운 부상을 본다. 선형적 사고의 몰락과 카오스의 부상은 도처에서 눈에 뛴다.아이들은 이미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선형적 사고·이원론·기계론·위계·메타포 그리고 신자체를 지나서 역동적이고 전체론적이며 애니미즘적이고 무중력적이며 압축재현적인 문화를 향한 진화의 도정으로 우리를 이끌고 있다. 『카오스는 그들의 자연환경이다. 아이들이 어른에게 어떻게 변해야 하는가를 보여주는 셈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기성세대 가운데 종말론으로부터 탈출하려면 카오스를 껴안아야 한다는 저자의 조언을 받아들일 준비가 된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비록 우리에게 아직 익숙하지 않은 미국의 사례를 다루고 있지만 어쩌면 내일 당장이라도 닥칠수 있는 미래의 문화지형도를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백욱인 교수 사회학·서울산업대) <중앙일보 97/08/17 김성기(문화비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