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선택 > 권장도서 > 청소년

권장도서

오래된 미래

지은이
헬레나 노르베르 호지
출판사
녹색평론사
페이지수
245
대상
산업사회 병폐와 개발 허구성 폭로서부 히말라야 고원에 자리잡은 황량한 마을 라다크. 생활환경이 척박함에도 불구하고 1천년이상 검소한 생활과 협동정신으로 건전한 공동체를 꾸려오고 있는 마을이다. 물질적으로는 빈약해도 아무도 가난을 불평하지 않았다. 이 책은 언어학 공부를 위해 라다크를 방문했다가 그곳 사람들의 삶의 모습에 매료돼 장기 체류하게 된 스웨덴 출신의 여성학자의 '라다크' 현장 보고서다. 미디어 서평 근대화 · 산업화 비판 통해 '반개발' 주장 사회의 변동과 역사의 진보를 설명하는 많은 이론 중에 현대 인류·세계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이 근대화 모델이다. ‘개발된’ 국가들의 발자국을 따라감으로써 ‘저개발’ 국가들도 부유하고 안락해질 수 있으며, 생태계 위기를 초래하는 인구폭증과 환경문제도 해결된다는 것이다.   스웨덴 출신의 여성학자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의 『오래된 미래-라다크로부터 배운다』는 ‘개발’ ‘근대화’ ‘서구화’ ‘산업화’를 동의어로 간주해온 근대화 프로젝트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 제기이자 현대 산업문명에 대한 신랄한 자기비판이다. 16년간의 현지 체험에 바탕을 둔 이 책에서 저자는 전통적인 라다크의 사회적·생태적 균형을 애정어린 시선으로 재생해내는 한편 개발이 그것을 어떻게 붕괴시키고 있는가를 안타까움과 분노의 시선으로 그려내고 있다. 호지가 75년 처음 라다크에 갔을 때 마을의 생활은 몇 세기 동안 이어진 방식 그대로 이뤄지고 있었고, 사람들은 고래의 원칙에 따라 자신의 환경에 걸맞는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75년 인도 정부의 개방과 개발 결정은 라다크의 이 같은 일상을 급격히 변화시켰다. 세계의 다른 어느 곳과 마찬가지로 라다크에서도 개발은 철저하게 서구식으로 진행됐다. 그 주요 내용은 도로와 에너지 생산 같은 ‘하부구조’의 건설이나 외화를 약속하는 관광사업 등이었다. 이 같은 개발과 개방이 현지인들에게 한편으로는 서구적 기술 문명의 혜택을 일부 나눠줬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가난과 불행, 열등감과 스트레스라는 익숙치 않은 부산물을 안겨줬고 예전에 ‘먹을 것도 마실 것도 넉넉하다’고 말하던 사람들이 ‘우리는 가난해요. 우리는 개발을 해야 돼요’라고 단언하기에 이르렀다.   저자는 라다크인들이 배우면 배울수록 자신들의 건강한 뿌리로부터 멀어져가고, 라다크 사회가 개발되면 될수록 붕괴돼 가는 현실을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지 않았다. 그녀는 이 사실을 라다크인들에게 납득시키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으며, 세계를 향해 끊임없이 라다크의 비극을 고발했다.   그녀의 노력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라다크의 비극이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해 그녀가 선택한 새로운 키워드가 바로 ‘반개발(counter-development)’이다. 반개발은 지구의 생명을 떠받치는 다양성을 보호하고,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한 조건들을 만들어내는 것에 1차적 목표를 두고 있다. 그런 만큼 이것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경제의 탈중심화, 에너지 생산의 탈중심화, 적정기술 등이 수반돼야 한다.   돌이켜보건대 현대사회의 여러 질병과 역기능은 현대 자본주의 질서가 스스로 근대화 과정에서 만들어놓은 부산물인 듯하다. 과(過)발전·저((低)발전·미(未)발전이 특정 지역·특정 국가의 범위를 넘어 전지구적 차원에서 공존하는 현상, 그리고 성장 신화의 확산과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서의 지역공동체 및 생태계 파괴는 자본주의적 근대화의 전형적 특징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현대가 이룩해놓은 근대화가 서구적 합리성에 따라 진행된 ‘단순한’ 것이었다면 노르베리 호지가 설파하는 반개발은 산업사회 전체, 즉 우리가 몸담고 있는 현시대의 지배적 담론구조의 창조적 자기파괴 가능성을 열고 있는 새로운 개발모형이다. 그런 점에서 ‘오래된 미래’는 서구적 방식의 근대화에 회의적인 사람은 물론 개발의 새로운 모형을 찾아나선 이들에게도 권할 만한 책이다. < 전자신문 북서핑 02/08/24 김종길 덕성여대 교수>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의 오래된 미래 “모든 사람이 우리처럼 행복하지 않단 말입니까?” 히말라야 고원의 작은 마을 라다크에 살고 있는 체링 돌마는 그곳을 찾아온 스웨덴의 언어학자 노르베리-호지의 말이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첨단 기술과 온갖 진기한 물건들을 가진 서구인들이 자신들도 쉽게 누리는 행복을 얻지 못하는 게 이해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화가 난단 말인가요?” 노르베리-호지는 서구인들의 삶에 만연해 있는 스트레스를 설명한다는 게 얼마나 힘든지를 실감했다. 왜 많은 물건을 만들어 놓고도 풍족하지 않은 걸까?라다크 사람들은 서구인들의 이야기를 이해할 수 없었다.서구 사람들이 행복의 조건으로 생각하는 더 많은 물건과 더 빠른 기계를 가지고 있진 않았지만 라다크 사람들은 서구인들에겐 없는 생태적 지혜를 가지고 있었다.그러나 ‘총체적인 기만’에 둘러싸인 자들이 세계를 ‘개선’하려 할 때,바로 그 때가 제일 무섭다고 했던가. 1975년 인도 정부의 개방과 개발 결정으로 라다크는 급속히 서구화된다.개발과 개방은 사람들로 하여금 서구적 기술 문명을 일부 이용하게 해주었지만 또한 저자가 그토록 설명하기 힘들었던 불행과 스트레스가 무엇인지를 뒤늦게 깨닫게 되었다.예전에 “먹을 것도 마실 것도 넉넉하다”고 말했던 사람들이 이제 “우리는 가난해요.우리는 개발을 해야 돼요”라고 말하기 시작했다. 저자는 물이나 공기가 오염되는 과정과 사람들이 오염되는 과정,다시 말해 자연에 대한 파괴와 사회에 대한 파괴가 함께 일어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환금 작물만을 재배하느라 땅이 생태적 다양성을 잃어갈 때,사람들도 문화적 다양성을 잃어간다. 예전엔 누구나 노래를 부르고 연극을 하고 음악을 연주할 줄 알았지만 이제는 가수들만이 노래하고 배우들만이 연기한다.아이들은 예전엔 본 적도 없는 침대 정리법이나 신호등 건너기 등에 대해 배워야 했다.새로운 교육은 라다크의 다양한 관습과 생태 환경에 대해 가르쳐주지 않고,오히려 서구적 모델에 비춰 그들 문화가 얼마나 열등한 지에 대해 말한다.라다크인들은 많이 배울수록 그들 사회로부터 멀어져갔고,라다크 사회는 문명화될수록 붕괴되어 갔다.아마도 서구 사회가 라다크에게 무언가를 가르쳐 줄 게 있다면 그것은 자신에게 배울만한 것이 아무 것도 없다고 하는 사실일 것이다. 저자는 이 사실을 라다크 사람들에게 납득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그녀는 세계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라다크에서 일어난 일을 고발했고,서구적 개발에 반대하는 ‘라다크 프로젝트’라는 국제 조직을 발족시켰다.1991년에는 이 조직을 ‘에콜로지 및 문화를 위한 국제 협회’로 발전시켰다.이 조직은 잊혀진 지혜를 재발견할 수 있도록 라다크 사람들을 도왔다.그러자 이번에는 라다크가 자신을 돕는 자들을 도왔다.이 프로젝트에 참여한 선진국의 생태주의자들도 이 일을 계기로 자신들의 삶 역시 돌아볼 기회를 가졌고,라다크에서 벌인 새로운 실험들을 자신들의 지역에서도 시도하게 되었다.라다크인들이 그들에게 새로 배울 때,그들 역시 라다크로부터 새로 배웠던 것이다.절망이 잘못된 배움에서 왔다면 희망은 새로운 배움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국민일보 01/11/13 고병권 (『니체,‘천 개의 눈,천 개의 길’』저자)> 맹목적 미래낙관론 반성적 고찰 ``왜 세상은 하나의 위기에서 또 하나의 위기로 비틀거리며 나아가고 있는가. 항상 이러했는가. 과거는 현재보다 나빴던가 아니면 더 좋았던가`` 스웨덴 출신의 여성학자인 헬레나노르배리 호지는 <오래된 미래 : 라다크로부터 배운다>(녹색평론 펴냄)의 서두에서 이런 고민을 내뱉는다. 새로운 밀레니엄을 앞두고 인류는 극도로 정형화한 생각에 매몰되어 있다. 과학은 발달할 것이고 그래서 여러 행성과 바다 속을 식민지로 만들 것이다. 인간의 수명은 연장될 것이고 가족은 해체될 것이다. 아주 명료하다. 그러나 이러한 도식적인 미래는 늘 인간과 자연의 정체성을 간과한다. 물질 숭배에 의한 인간 파괴가 빨라지고 파편화한 인간들은 우리가 그토록 찬사를 보낸 사랑과 이웃을 내버리고 불안과 공포의 그늘에서 아귀다툼을 벌이게 될 것에 대해 아무런 방안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 환경 파괴는 어떤가. 아무 것도 마음 놓고 먹지 못하고 물이란 물은 모두 썩어 가는 세상은 이미 도래했다. 불과 40년 정도 후에는 지구 위의 동물은 애완동물과 쥐나 도둑고양이 같은 기생동물 그리고 인간만이 남을 것이다. 이것이, 다가올 2000년대의 본모습일지도 모른다. 저자는 티베트 고원에 있는 라다크 지방에서 16년을 살며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는다. `오래된 미래`를 찾는 것이다. 오래된 미래는 그에게 영원한 미래이며 니체의 말처럼 신비스러운 사상이다. 티베트 고원의 원시적인 문화가 우리의 미래에 무엇을 가르쳐 줄 수 있을까. 산업화한 생각 속에서 어쩌면 당연한 물음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서구문화를 유일한 대안으로 받아들인 우리의 한계일지도 모른다. 라다크에는 낭비도 오염도 없다. 범죄는 사실상 존재할 수 없고 공동체는 건강하다. 청소년은 어른들과 다정스럽게 대화하는 방법을 자연스럽게 배우고 타고난 생태적 지혜를 통해 땅과 어울려 산다. 그들은 아무도 가난하다고 느끼지 않고 정서적, 심리적으로 안정을 누리며 여성과 아이들과 노인들이 존중되는 사회의 생생한 모습을 보여 준다. 이 책은 진보의 개념 자체를 되물으면서 장미빛 미래 만큼이나 우리 옆에 바짝 다가온 사회적, 생태적 재앙을 경계한다. 이 책이 훌륭한 미래서일 수 있는 것은 우리의 장래에 대해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절망이 아닌 희망의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생태적 균형과 사회적 조화 없이 우리가 떠올리는 모든 미래는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낭만적인 문명비판적 발언이 아니라 구체적인 사실 확인이며 자연과 인간에게 행사한 폭력에 대한 반성이다. 저자가 말하는 인류의 올바른 미래를 위한 대안은 `적정 개발` 이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다. 귄력의 집중과 문화적인 획일화를 막고 각 지역에 대한 구체적인 조건과 필요에 기초를 둔 적정한 개발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인간의 성찰로 얼마든지 가능하다. 앤서니 기든스가 말했듯이 `인간에게 닥친 정체성의 위기는 곧 가능성`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이제 인도 북부의 작은 마을 라다크마저 파괴하기 시작했다. 그곳이 인간이 지구 공동체를 회복할 수 있는 마지막 모델이었고 다행히 그곳의 삶과 사회가 기록을 통해서라도 남아 있다면 라다크는 우리에게 분명 아주 구체적인 미래의 대안으로 언젠가는 활용될 것이다. 그래서 인간은 또 위대하다. <매일경제신문 밀레니엄 가이드 97/10/25 허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