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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장도서

모독

지은이
박완서/민병일 사진
출판사
학고재
페이지수
344
대상
소설가 박완서의 티베트 네팔 여행기. 미치도록 푸른 하늘과 순연한 사람들, 정결한 생활모습, 쓰레기마저 완전순환되는 땅을 통해 현대문명의 소용돌이에 빠진 우리들에게 삶의 본질적 조건을 질문한다. 도착하던 날, 한 나절 동안 뱃놀이를 즐겼던 일행은 다음날이 되서야 사원 구경에 나선다. 사원은 우리네 절과는 사뭇 다르다. 버터램프가 내뿜는 숨막히는 듯한 냄새와 바닥에 찐덕찐덕하게 달라붙은 기름 때문이다. 그 뿐이 아니다. 원색을 이용해 화려하게 채색한 불상 덕분에 사원은 화려한 요정만 같다. 오히려 신자들이 부처님 같고, 부처님이 그 곳 사람 같다고나 할까. 게다가 멀리 사원이 보이는 곳에서부터 오체투지로 사원마당까지 이르는 일반인들의 불심에 비하면 법회를 준비하는 스님들은 시장바닥에 온 상인처럼 느껴진다. 이렇듯 성과 속이 자연스럽게 섞인 모습에서 중국 통치 하에서도 티베트 불교는 여전히 살아있음을 깨닫는다. 또 갈색 몸뚱이를 그대로 드러낸 산과 고산기후 속에서 예쁘게 피어난 붉고 노란 꽃을 보며 자연의 위대함을 느끼는가 하면, 야크만 있으면 겨울도 걱정없다는 유목민에게서는 넉넉지 않은 살림을 꾸려가는 삶의 지혜를 배운다. 책의 시작에서 그녀는 "나는 시인의 사진에다 설명을 붙이는 정도의 역할밖에 하지 못했다"고 겸손히 말했지만, 실제로는 그녀만의 독특한 문체와 수사로 읽는 이의 감성을 즐겁게 자극한다. 글은 사진을 돕고, 사진은 글을 도와 맑고 순수한 티베트의 모습을 사실에 가깝게 감상하도록 하였다. 미디어 서평 세계지붕 위의 숭고한 자연·인간 병풍처럼 감싸고 있는 히말라야 산맥을 볼 때마다 저 산너머에 뭐가 있을까 하는 의구심을 갖곤 했다. 그것은 넘을 수 있을 것 같지 않아서 품을 수 있는 동경이었다. 지난 여름 소설가 박완서 씨(66)는 넘을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던 히말라야 왕국 네팔과 그에 인접한 티베트를 다녀왔다. 해발 3,500m에서 5,000m에 이르는 고원지대를 노구를 이끌며 20여 일간 여행한 원로작가가 그때의 감상과 추억, 그곳의 풍광을 한 권의 책으로 묶었다. <모독(冒瀆)>. 도서출판 학고재에서 펴낸 이 기행집은 이름부터 독특하다. 박씨는 기행 후 감상을 '모독'으로 요약했다. 태초의 푸름을 간직하고 있는 하늘, 절에 보이는 지점에서부터 오체투지(五體投地)로 기어가는 티베트인, 성(聖)과 속(俗)이 어우러진 사원, 부처보다 더 성스럽고 인간적인 원주민들, 우주의 시원을 연상케 하는 거대한 흙바람 등. 무욕의 인간 앞에, 순결한 대지 위에 문명인의 발자취(기행)는 모독에 지나지 않을 터이다. 다른 한편 삶에 대한 깊은 통찰력을 지니고 있는 작가에게 티베트·네팔 기행은 자연 앞에 자기의 존재를 되묻는 구도(求道)의 여정이다. 평생에 한번 참배하는 것이 소원이라는 포탈라 궁에 선 작가는 권력자의 착취를 생각하기에 앞서 종교적인 열정을 되뇐다. 돌과 나무로만 지었는데도 300여 년을 끄떡없이 견뎌온 세계적인 불가사의. 그는 신비의 실체를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오체투지의 열정에서 찾아낸다. 또 티베트 불교의 총본산이자 최대 사찰인 조캉 사원의 불상에서 공예미술의 정수를 확인하기도 하는 작가는 사원 밖 시장에서 구걸하는 어린이와 부녀자들의 모습에서 티베트의 또 다른 얼굴을 발견하기도 한다. 정복되지 않은 순연한 사람들의 미소와 정갈한 삶의 모습, 생활의 방편인 야크와 야크 똥, 고산 지대의 야생화 등을 생생한 사진과 함께 담고 있는 이 책은 문명에 찌든 현대인들에게 삶의 의미를 되묻게 한다. <경향신문 97/01/27 허연 기자> 소설가 박완서 씨(66)가 고산병으로 젊은이들도 헉헉대는 티베트와 네팔을 찾아간 것은 보약 먹는 대신 가는 여행으로였다. 농담처럼 한 말이지만 그것은 진정한 휴식을 주는 정신적 보약일 터이다. 최근 출간된 그 여행기의 제목이 걸작이다. 이름하여 <모독(冒瀆)>(학고재 刊). 관광하는 것 자체가 순결한, 완전순 환의 땅에 모독이 될까 두려워한 작가의 심중을 담고 있다. 이미 네팔을 두어 번 다녀오면서 그 나라를 병풍처럼 감싸고 있는 히말라야 산맥 뒤엔 뭐가 있을까 궁금해했던 작가는 그 너머 땅 티베트에서 딴 나라를 여행하고 있는 게 아니라 딴 천체를 여행하고 있는 것처럼 아득하고 공포스러운 외로움에 사로잡히게 된다고 회고한다. 티베트의 햇빛에서 바늘쌈을 풀어놓은 것처럼 대뜸 눈을 쏘는 날카로움에 적의를 느끼기도 하고 세계의 불가사의 포탈라 궁에서 절대권력자의 무자비한 착취보다는 종교적 열정을 생각하면서 티베트 문화의 우수성에 탄복한다. 극빈의 상황에서도 '연꽃 속의 보석이여'라는 뜻의 진언을 입에 달고 다니는 티베트인들의 삶에서 작가는 현실의 구질구질함을 극복하면서 한편으로는 아름다운 상상력으로 정신을 정화하는 힘을 얻고 싶어한다고 간파한다. 몸을 벌레처럼 극도로 낮추는 오체투지로 참배하는 모습, 시체를 독수리에게 먹히는 조장(鳥葬), 살아 있는 여신 쿠마리를 모시는 사람들의 마음이 작가 특유의 맛깔스러운 문체에 의해 살아나는 책이다. <국민일보 97/01/29 남윤호 기자> "고개를 넘을 때마다 성황당 같은 돌무더기를 만나는 것도 신기하다. 돌무더기뿐 아니라 울긋불긋한 헝겊이 걸려 있는 것도 성황당하고 비슷하다. 돌무더기나 아무렇게나 뒹구는 돌 중엔 티베트 문자가 새겨진 돌도 많다. '옴마니반메훔'이라는 그들의 진언이라고 한다. '옴마니반메훔'을 직역하면 '연꽃 속의 보석'이라고 한다." 소설가 박완서 씨가 티베트와 네팔 기행문집 「모독(冒瀆)」을 학고재에서 출간했다. 「모독」이란 제목과 티베트, 네팔의 저 원시성과 생명을 함축하고 있는 대지와는 어떤 상관관계에 있는 것일까? 육순을 넘긴 작가에게 백두산보다 1천m 가량 더 높은 티베트의 라싸(표고 3천6백50m)와 5천m나 되는 고원지대는 결코 만만치 않았다. 고산병 예방책으로 연신 물을 들이켰지만, 뙤약볕의 빨래처럼 몸은 금세 건조해졌다. 작가와 동행한 시인 민병일, 소설가 이경자 김영현씨 등은 만약을 대비해 산소통도 준비했다. 작가가 찾아간 티베트는 현재 중국 서장(서장) 자치구에 속한다. 달라이 라마의 망명지는 이번 여행에서 아쉽게도 제외됐다. 자치구의 중심 라싸에 도착한 작가의 눈에 티베트인들의 생김새는 우리와 닮았지만, 절의 풍경은 별천지였다. 우선 참배객들이 바치는 게 초나 향이 아니라 버터기름인 탓에 절의 공기는 누릿한 냄새를 풍겼다. 게다가 부처상은 부처 위에 여인이 올라앉은 남녀합환상이었다. 그 앞에서 오체투지(五體投地)하는 티베트인들. 작가는 "내가 보기에는 있는 그대로의 저 사람들이 바로 부처로 보이고 절 안의 부처가 훨씬 더 인간적으로 보였다"라고 적었다. 황갈색의 풍경 속을 지나가는 작가 앞에서 메마른 흙바람이 자주 일어났다. "흙바람은 태초의 혼돈을 떠올리게 하면서 자연이 풍화되는 종말의 과정도 동시에 상상케 한다"고 그는 썼다. 그의 발길은 9백99개의 방이 있다는 포탈라궁을 거쳐, 세계의 지붕이라는 초모랑마(에베레스트의 현지 이름), 카일라스산(수미산)으로 이어지면서 초월의 사다리를 올라간다. 고산 지대에 핀 들풀과 꽃들이 자꾸만 작가의 발목을 잡는다. 그는 눈 앞에 펼쳐지는 풍경을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구성하는 사물들 속에 숨어있는 언어를 하나씩 불러낸다. 마치 티베트인들이 옴마니반메훔을 외치듯 그는 풍경 속의 진경(眞景)을 불러낸다. 작가는 네팔로 넘어가기 전에 이렇게 적었다. "우리의 관광 행위 자체가 이 순결한 완전 순환의 땅엔 모독이었으니. 당신들의 정신이 정녕 살아 있거든 우리를 용서하지 말아 주오. 랏채(티베트의 지명)를 떠나면서 남길 말은 그 한 마디밖에 없었다." <조선일보 97/01/28 박해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