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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장도서

관촌수필

지은이
이문구
출판사
문학과지성사
페이지수
399
대상
'일낙서산' 등 8편의 중,단편으로 분단과 전쟁으로 파괴된 토착,전통 세계의 몰락과 농촌의 현장을 현대의 실향의식으로 형상화 시킨 최초의 연작소설집. [평론] 친근한 언어로 엮은 '시골 이야기' -- 풍상 속의 온갖 사연, 현실감 있게 그려 오랜만에 성묘차 고향을 찾은 작중화자는 마을 어귀에서 울적한 심정을 토해 놓고 만다. {내 살과 뼈가 여문 마을이었건만, 옛 모습이라곤 아무 것도 없었던 것이다. 옛 모습으로 남아난 것이 저토록 귀할 수 있을까.} 모두 8편의 연작으로 되어 있는 {관촌수필}의 첫 작품 [일락서산(日落西山)]이 발표된 것이 1972년이니 거기서 다시 25년의 시간이 흘렀다. 그때 그랬던 관촌부락의 모습이 지금은 또 얼마나 바뀌었을 지를 짐작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렇지만 그처럼 대단한 세월도 소설 {관촌수필}이 뿜어온 빛을 감하지는 못했다. 땅에 깊숙이 뿌리박은 삶의 말들과 오래도록 조선의 정신을 함축해 온 유가(儒家)의 언어를 통해 고색 창연한 이조인이었던 할아버지를 비롯, 옹점이, 대복이, 석공, 복산아버지 등 그 땅의 그 사람들에게 고스란히 돌려준 작가의 빼어난 문장은 그 실감을 전혀 잃고 있지 않았다. 그 이유의 한 자락을 나는 {관촌수필}을 다시 읽으면서 만났다. {세월은 지난 것을 말하지 않는다. 다만 새로 이룬 것을 보여줄 뿐이다. 나는 날로 새로워진 것을 볼 때마다 내가 그만큼 낡아졌음을 터득하고 때로는 서글퍼하기도 했으나 무엇이 얼마만큼 변했는가는 크게 여기지 않는다. 무엇이 왜 안 변했는가를 알아내는 것이 더 중요하겠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작가는 4백여 년에 걸쳐 마을의 온갖 풍상을 지켜봐 온 왕소나무의 사라짐에 탄식하고, 종가(宗家) 같은 풍채를 지녔던 옛 고향집이 추레하게 변해 버린 주제꼴에 가슴이 미어질망정, 정작 그가 기억하고 기록해야 할 바를 [그럼에도 변하지 않는 것]에 두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해서 작가가 찾아낸 것은 무엇일까. 나는 그것이 언제 어디에나 있는 [사람살이의 안타까운 마음]이라고 생각한다. 마을 사람들로부터는 정작 내침을 받거나 업수이 여겨졌던 대복이나 복산아버지 유서방을 화자는 그들의 타고난 천성의 자리로 가서 기억해 내는데, 그것은 모진 세월 속에서 [그렇게밖에 할 수 없었던] 마음의 안타까움을 작가가 보려고 하기 때문일 것이다. 6.25 전란의 참화를 다른 어느 집보다도 혹독하게 겪은 화자의 자리에서 보면 사람들로부터 입은 모진 사연이 어디 한 둘에 그칠까. 그럼에도 화자의 기억은 고난 속에서도 사람살이의 정과 예의를 가르쳐준 옹점이에게로, 돌을 좋아해 석공(石公)으로 불렸던 고향 마을의 한 농부에게로 자꾸만 흘러갈 뿐이다. 작가는 그러니까 사람살이의 본디 마음들이 펼쳐 보였던 그 아픈 아름다움에 대한 기억을 전쟁이나 덧없는 세월 따위에게 빼앗길 수 없었던 것이다. 변하지 않는 것은 그러므로 사람살이의 그 안타까운 마음들이었다. {관촌수필}의 세계는 분명 우리가 돌아가 다시 살 수 있는 세계는 아니다. 그러나 작가가 기록해 준 인정의 아름다움은 우리가 되풀이 살아야 할 아름다움이다. 곳곳의 낯선 말들에도 불구하고 어느 대목에서인가 나는 소설을 속으로 흥얼거리고 있었다. 잊고 있을 뿐, 내 삶 어딘가에도 순박한 일생을 살았던 석공의 마음은 흐르고 있을 것이다. <문학평론가/정홍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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