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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장도서

그렇다면 도로 눈을 감고 가시오

지은이
박지원
출판사
학교재
페이지수
342
대상
미디어 서평 영남대 김혈조교수 `연암집`등서 95편 엄선 연암은 또한 대문장가였다. 화려한 언어구사와 웅혼한 문장 표현은 오히려 사상가의 면모를 능가한다. 수많은 학자, 문인을 쏟아낸 영·정조연간 문예중흥기라고 불리는 이 시기에도 연암은 단연 발군이었다. 그래서 그의 문학은 다산 정약용의 사상, 단원 김홍도의 회화와 함께 조선 후기 문화의 꽃으로 불리곤 한다. ` 연암의 문장은 굳세고 웅장하고 넓고 크다. 자유자재로 노닐고 여유가 있어 천년에 우뚝하니 그는 동방의 문장가에 일찍이 없었던 분이다` 구한말 문장가 김택영이 쓴 `중편연암집` 서문은 후대인의 찬사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연암문학의 참맛을 느낄수 있는 글들이 한권의 책으로 묶었다. 연암 산문선 `그렇다면 도로 눈을 감으시오.`(학고재). 영남대 김혈 조교수(한문학)가 「연암집」「열하일기」 등에서 연암의 생각과 문체를 잘 드러낸 산문 95편을 엄선, 유려한 우리말로 옮겼다. 그간 연암문학 소개는「양반전」등 소설에 치우친 것이 사실.「연암집」이 아직 완역되지 못한 현실에서 이 산문선집은 연암문학에 대한 갈증을 어느정도 풀어줄 것으로 보인다. 서화담 선생이 출타했다가 집을 잃어버리고 길가에서 울고 있는 사람을 만났더랍니다.「너는 어찌히여 울고 있느냐?」 「저는 다섯살때 눈이 멀어 지금 20년이나 되었습니다. 오늘 아침나절에 밖으로 나왔다가 홀연 천지만물이 맑고 밝게 보이기에 나머지 집으로 돌아가려 하니 길은 여러 갈래요, 대문들은 서로 어슷비슷 같아 저희집을 분별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지금 울고 있습지요」. 선생은 「네게 집에 돌아가는 방법을 깨우쳐주겠다. 도로 눈을 감아라. 그러면 곧 집이 있을 것이다」라고 일러주었답니다. 그래서 소경은 다시 눈을 감고 지팡이를 두드리며 익은 걸음걸이로 걸어서 곧장 집에 돌아갈 수 있었더랍니다` 표제작이 된 산문「자신의 본분으로 돌아가라」의 일부. 마음의 눈으로 볼때 바른 길을 찾을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는 이 글은 중학교 교과서에 실린 「일야구도하기」(一夜九渡河記) 등과 함께 사물과 현실을 올바르게 인식할 수 있는 방법을 일화를 통해 흥미있게 전해주고 있다. 「선비와 독서」는 연암의 열려있는 독서관을 잘 드러낸다. 어린아이가 독서하면 요절하지 않고 노인이 독서하면 늙어 혼몽해지지 않는다. 어진사람은 지나치게 넘치지 않고, 못난 사람도 유익함이 없지않게 된다」. 그에게 독서는 단지 사대부의 전유물이 아니다. 연암 문학정신은 「법고창신」(法古創新)으로 요약된다. 「진실로 옛것을 본받으면서도 능히 변화시킬 줄 알고, 새 문체를 만들면서도 고전에서 근거를 둔다면 지금 사람의 글도 고인의 글과 같을 것이다」. 법고창신은 옛것에 대한 주체적 수용에 바탕을 둔 개혁정신과 상통한다. 이밖에 조선의 현실정치에 대한 생각을 담은 「교육이 우선이다」 「인사고과」 「도요새와 신천옹」 등과 북학파 지식인들과의 우정을 그린 「이덕무와 박제가」 「홍대용의 벗들」 「완물상지」, 연암의 자연관을 담은 「한여름밤의 풍류」등은 정통산문의 아름다움을 한껏 드러낸 명문들이다. <조선일보 97/10/3 조운찬 기자> 한 시대의 인문정신은 운문에서 가락을 찾고 산문에서 노랫말을 얻는다. 중세사회의 지형이 충(忠)·효(孝)·열(烈)의 인륜적인 가치체계에서 이용후생의 물질적인 가치체계로 바뀌던 영·정조대에 당대의 시대의식을 예각적으로 표출했던 연암 박지원의 산문이 새롭게 묶여나왔다. 김혈조 교수의 섬세한 번역이 연암체 문장의 독특한 결을 살렸다. 이 산문집에는 새롭게 떠오르는 민(民)의 세계에 주목한 근대지향적 세계관이 담겨 있다. 백성에게 이롭고 나라에 도움이 되는 것이라면 비록 이적(夷狄)에게서 나온 것이라도 취해야 한다는 학문관, 당대 지식인의 허위의식에 대한 통렬한 질책, 양심적인 지식에 대한 아낌없는 찬사 등 위대한 사상가로서의 면모가 담겨 있다. 뿐만 아니라 홍대용·박제가·유득공·이덕무 등 북학파 지식인들과의 동지적 우정과 따뜻한 인간애를 지닌 자연인으로서의 연암의 모습이 투영되어 있다. 연암의 산문 전체를 꿰뚫는 핵심주제는 ‘있는 세계’ 또는 ‘현실의 세계’에 대한 사색과 비판을 통해서 ‘있어야 할 세계’ 또는 ‘실현해야 할 세계’를 모색하고 지향하는 정신이다. 연암의 책이 그의 사후 100년 동안 금서로 묶여 있었던 것도 이러한 혁신적인 근대지향성 때문이다.“한마디의 말로도 요령을 잡게 되면 적의 아성으로 질풍같이 돌격하는 것과 같고, 한 조각의 말로써도 핵심을 찌른다면 마치 적군이 탈진하기를 기다렸다가 그저 공격신호만 보이고도 요새를 함락시키는 것과 같다”는 글짓기의 묘리에 대한 설파는 17, 8세기 산문정신의 한 경지를 보여준다. <출판저널 97/10/20 박천홍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