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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장도서

원미동 사람들

지은이
양귀자
출판사
문학과지성사
페이지수
384
대상
서울 변두리의 부천시 원미동이라는 구체적 삶의 장소를 무대로 하여,그곳에서 벌어지는 소시민들의 크고,작은 일상사를 따스하고도 날카로우며,섬세하고도 넉넉한 시선으로 담아내고 있는 창작집. 미디어 서평 담담히 그린 `서민들애환` 대체로 나는 무엇이든 열심히 하지만 치열하게 해본 적이 없다. 문학에서도 마찬가지인것 같다. 필사를 해본 기억도 없거니와 책장이 너덜너덜해지도록 여러 번 읽은 책도 드문 것을 보면 지금 `원미동 사람들`을 다시 들쳐보면서 맨 처음 든 생각은 `내가 이 책을 두 번 읽었었구나`하는 것이다. 한 번은 호의적인 독자로서, 그리고 두 번째는 소설가 지망생으로서였 다. 내 삶의 모든 기력을 `생활`에만 쏟아부어야 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 나는 아파트의 계단을 올라가다가 무거운 비닐봉지들을 내려놓고 계단참에 기대 현기증을 달래고 있거나, 볼펜이 끼워진 가계부를 한숨과 함께 옆으로 밀쳐놓은 뒤 아르바이트 원고 교정을 하고 있거나 하였다. 88년 그 무렵 열에 들떠 뒤척이는 아이의 이마에 밤새워 찬 수건을 갈아놓으며 읽은 책이 `원미동 사람들`이었다. 소설은 `멀고 아름다운 동네` 원미동으로 떠나는 이삿날로부터 시작된다. 가장은 장롱을 들어낸 자리나 벽의 낙서 따위에서 살아온 흔적을 만진다. 앞으로의 삶의 불안을 누르려는 듯이, `불씨`의 주인공은 뜻밖의 실직으로 성격에 안맞는 외판원이 된 사내. 그는 종일 입 한 번 떼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밤 지하철 차창에 비친 자기의 얼굴을 본다. 비오는 날이면 일을 쉬고 밀린 임금을 받기 위해 가리봉동으로 가는 막일꾼은 `그 돈만 받으면 고향으로 가겠다`는 꿈을 토로하며 운다. 그리고 막바지 인생끼리의 금지된 사랑을 그린 `찻집 여자`에 깃든 쓸쓸함과 애틋함, 똥눌 권리를 찾지 못해 고통받는 `지하생활자`의 생존조건...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난 95년, 나는 다니던 직장을 그만둘 생각을 했다. 이른바 존재론적인 고민속에 있었던 내게는 소설 쓰는 일이 돌파구로 보였다. 그러나 소설작법 같은 것을 배워보지 않았던 나로서는 몇 권의 책을 골라 꼼꼼히 읽는 것 외에 다른 뾰족한 방법이 없었다. 그때 `원미동 사람들`을 두 번째로 만나게 되었다. 거기에서 나는 빤히 아는 줄거리를 두 번 읽는데도 여전히 흥미로울 수 있게 해주는 것은 문체나 묘사의 매력임을 깨달았다. 한 개인의 이야기가 인간 모두의 이야기가 될 수 있음을 보면서 작가의 포착력과 시각이 뭔지도 알 것 같았다. 사람을 설득하기 위해서 작가가 조금은 능청스러워야 한다는 것도. 모두가 말하듯이 `원미동 사람들`은 따뜻한 소설이다. 하지만 상투적이고 도식적인 낙관이나 안이한 휴머니즘이 아니다. 삶의 비정과 남루를 다보고 알고 있지만 사랑하는 것이다. 인간의 나약함을 드러내 보이지만 그것을 폭로하고 질타하기보다 약간은 젖은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독자가)좀더 분명한 메시지를 담을 만도 하지 않느냐고 바라기도 했지만 나는 그 지적의 타당함을, 지름길을, 충분히 이해는 하지만 애써 둘러가는 것이 소설의 길이라고 여전히 생각하고 있다.`` 애써 둘러가는 것, 그것은 소설의 길만이 아니다. 거리를 두어가며 지키려는 내 삶에 긴장이 되기도 한다. 다음달이면 사십이 되기 때문인가. 자꾸 서둘러 가려고만 하는 것 같아 걱정이다. <조선일보 97/12/9 은희경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