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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장도서

참 맑은 물살

지은이
곽재구
출판사
창작과비평사
페이지수
120
대상
우리 산천과 사람들의 꿈과 사랑을 아름답게 그려온 곽재구 시인의 다섯 번째 시집<참 맑은 물살>은 시인의 오랜 기행 속에서 길어 올린 시편들을 모았다. 풍자와 익살로 슬픔과 분노에 대해 노래한 시편들과 조선소리, 사람, 정서를 찾아다니며 얻은 시편들이 있다. 미디어 서평 시인은 두해 전에 〈내가 사랑한 사람 내가 사랑한 세상〉이라는 기행 산문집을 낸 바 있거니와, 〈참 맑은 물살〉의 시들은 산문을 거르고 증류시켜 내린 맑은 술과도 같다.`냉이꽃들이 바람에 하염없이 흩날리네/황톳길 칠십리 하룻길은아직 멀었는데/눈에 부딪는 산과 강 다 그리워/버리지 못하고 가슴에 안고 가네`. 서시 격으로 맨 앞자리에 놓여 시집의 기조를 말해주는 ‘봄언덕’은 목월의 시 ‘나그네’로 거슬러 올라가는 전통적인 유랑시의 흐름 위에 서 있는 듯이 보인다. 그러나 시의 후반부에 등장하는 `최루가스 짓물린 네 눈물자욱`이나 `곤봉으로 피멍든 첫사랑 이야기`와 같은 구절들은 `술 익는 마을마다/타는 저녁놀`을 노래하는 ‘나그네’에서는 찾을 수 없었던 사회·역사적 관심을 보여주고 있다. 역마살이 낀 시인의 발길은 지리적으로는 그의 고향 광주를 중심으로 진도, 장흥, 강진 등 남도의 물과 뭍, 그리고 간도 용정에 미국 캘리포니아까지를 분주히 오간다. 그 여행길에서 그가 보는 것은 젊은날 남편이 짓찧은 입술로 더욱 사무치는 소리를 내는 조공례 할머니, 녹동 선창 금다방의 노란 스타킹 이금순, 도망간 각시를 애써 잊고 연년생인 두 아이를 홀로 키우는 염전지기 오억만, 수인선 협궤열차의 노동자 연인, 캘리포니아의 욕쟁이 멕시칸 농꾼들이다. 그러니까 시인의 여행은 산자수명한 풍광을 찾아다니는 유람이기보다는 못 생겼으면 못 생긴 대로제 몫의 삶을 살아가는 이웃들을 만나러 가는 인간 답사라 할 수 있다. 시인의 여정은 또한 공간적으로 확장될 뿐만 아니라 시간적으로 깊어지기도 한다. 동학과 일제 강점기, 한국전쟁, 80년 5월, 91년의 ‘분신 정국’을 꿰뚫는 그 행로는 공간의 시간성과 역사성을 되새기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공간 속에 녹아들어가 있는 역사성을 투시하는 시인의 시선은 흔히 서로 다른 시간대를 하나의 시공간에서 보아내는 수법을 빌어 표출된다. 통시의 공시화라 할 수 있을 이런 기법이 표나게 사용된 시가 90년대 시골 아낙의 모습에 동학과 다산의 시대를 포개놓은 ‘수석가 게 아낙’이다.“갈재 넘어가는 봉준이네 병사들에게/하얀 주먹밥 소금에 꾹꾹눌러주는/아니면, 왠지 강진 귤동부락 갈대밭 숲에서/피투성이남편을 끌어안고/절양(絶陽)을 울부짖고 있는 것만 같은/발등 까만 그 아낙.” 지금 이곳과 그때 그곳의 이런저런 사람살이를 시적 제재로 삼는 데서 오는 필연의 하나는 곽씨의 시가 서정적 울림에 못지 않게 서사적 구성에 기대게 된다는 사실이다. 흡사 선배 시인 신경림씨를 연상시키는 곽씨 시의 서사 지향은 남도의 정겨운 방언과 겨레의 유장한 가락에 버무려져 효과를 극대화한다. 곽재구씨는 80년대 민중시의 미학적 한계에 갇혀버리지 않은 몇 안 되는 시인에 속한다. 사회적 슬픔과 역사의 환부를 찾아나서는 그의 시적 순례가 사랑과 평화의 땅에 대한 그리움을 역설적으로 노래하는 것임을, 순결한 사랑 노래 두편에서 확인할 수 있다. `사랑하는 이여/강가로 나와요//…//그곳에서 당신의 머리를감겨드리겠어요/햇창포 꽃잎을 풀고/매화향 깊게 스민 촘촘한 참빗으로/당신의 머리칼을 소복소복 빗겨드리겠어요//그런 다음/노란 원추리꽃 한 송이를/당신의 검은 머리칼 사이에/꽂아드리지 요`(‘단오’).`참 맑은 물살/발가락 새 헤적이네/애기 고사리순 좀 봐/사랑해야 할 날들/지천으로 솟았네/어디까지 가나/부르면 부를수록/더 뜨거워지는 너의 이름`(‘참 맑은 물살’).<한겨레신문 95/11/01 최재봉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