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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장도서

광장/구운몽

지은이
최인훈
출판사
문학과지성사
페이지수
342
대상
광장이 없는 밀실과 밀실이 없는 광장-남과 북의 분단과 대결을 최초로 그리고 유일하게 이념적으로 접근한 현대 한국 문학의 고전, 주인공 이명준의 비극과 갈망은 우리 자신,우리 민족의 바로 그것이다. 미디어 서평 남도 북도 싫다던 석방포로를 기억하는가 작년에 남의 대통령이 방북하여 북의 국방위원장을 만났고 금년엔 북의 국방위원장이 남을 방문하게 될 모양이다. 게다가 북의 국방위원장이 최근 중국의 시장경제 현장을 둘러보고 개혁개방 정책에 대해 지지를 표명함으로써 북의 정책이 변화될 수도 있음을 시사했다. 이러한 일련의 진행은 반세기에 달하는 분단의 역사에 획기적인 전환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기대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하지만 이런 때일수록 들뜨지 말고 차분해질 필요가 있다. 화해든 통일이든 정말 중요한 것은 그 실질적 내용이 무엇이며 그것이 어떻게 추구되느냐 하는 점이고, 그 점을 현명하게 판단하기 위해서는 근본에 대한 재탐색이 필요하리라 생각된다. 최인훈의 장편소설 『광장』을 소개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1960년에 처음 발표된 『광장』에서 한국문학은 분단에 대한 본격적 성찰의 첫 걸음을 내디뎠다. 석방 포로 이명준이 배를 타고 중립국으로 가던 중 바다에 투신하여 자살하는 이야기라고 요약할 수 있는 『광장』은 남과 북의 현실 모두를 비판적 관점에서 탐색하고, 그 탐색의 결과로 양 체제 모두에 대한 부정을 내용으로 하는 비극적 전망을 제시했던 것이다. 이 비극적 전망이야말로 지금 이 시점에서 깊이 음미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광장』에는 `광장'과 `밀실'이라는 유명한 비유가 나온다. 표면상으로 보면 북에는 광장만 있고 남에는 밀실만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좀더 깊이 들여다보면 북의 광장은 이미 타락한 광장이고 남의 밀실은 이미 타락한 밀실이다. 진정한 광장은 밀실 없이 불가능하고 진정한 밀실 또한 광장 없이 불가능한 것이다. 진정한 광장과 진정한 밀실의 행복한 조화, 즉 인간다운 삶에 대한 열망을 주인공 이명준은 죽음으로써 증거했다. 이 열망이야말로 남북 관계의 변화에 대한 평가의 근본적 기준이 되어야 할 것이다. 발표 이후 여러 차례 개작되고 개판된 이 작품의 최종 판본은 1996년에 나온 `문학과지성 소설 명작선'판 『광장/구운몽』이다. <한겨레신문 01/1/27 성민엽 (서울대 중문과 교수)> 최인훈의 소설 '광장'은 4.19 직후 '새벽'지에 발표되고,뒤이어 원고지 2백장 가량이 추가되어 1961년 단행본(정향사)으로 발간되었다. 이후 신흥출판사(65년),민음사(73년)를 거쳐 76년 문학과 지성사에서 '최인훈 전집1권'으로 발간되어 지금까지 개정4판의 총105쇄를 발간했다. 이 외에도 삼성당(83년), 중앙일보사(88년),동서문화사(87년), 동아출판사(95년) 등의 문학전집에 수록되어 꾸준히 읽혀왔고, 73년 김소운의 번역으로 일본어판(동수가)으로 발간되기도 했다. 월북한 아버지 때문에 시달림을 당하던 철학도 이명준은 북으로 올라가 북한의 정치체제에 가담해보지만 남의 '밀실'과 북의 '광장'어디에도 소속감을 느끼지 못하고 방황하다 6·25전쟁에 휩쓸려 전쟁포로가 되어 제3국행을 택하지만 결국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는 것이 '광장'의 줄거리이다. '광장'이 정치적 금기의 울타리를 넘을 수 있었던 선행조건은 4.19였다. 그 금기는 멀리는 염상섭과,장용학이나 서기원,김성한 같은 지식인 작가들을 회의와 풍자에 머물게 한 족쇄였다.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총독의 소리', '회색인' 등의 작품을 통해 조선조에서 60년대 한국사회까지를 폭넓게 해부하는 가운데에서 얻어진 최인훈의 현실인식은 60,70년대의 젊은 세대들에게 상당한 호소력을 발휘했다. 경직되고 도식적인 구호로 떨어지기 쉬운 정치적 호소를 박학하고 유연한 문체로 처리함에 있어 최인훈은 남 다른 바가 있었다.'광장'의 역사인식이 관념적이라는 평가는 사회 변화에 역동적으로 뛰어드는 것이 아니라 중립적인 관찰자의 그것에 머물고 있다는 데에서 비롯된다. 그것은 황석영의 '한씨년대기'와의 비교에서 확연하게 드러난다. 남과 북의 현실에 대한 인식이 별로 다를 바 없음에도 독자에게 주는 감동의 무게가 다르다.'광장'에서 이명준의 행적은 격동기 청년의 지적 편력이라는 느낌이 짙다. 역사와 사회 전체를 박학한 경세가적 입장에서 보는 것이 그렇고, 남과 북을 손쉽게 넘나들고, 중립국으로 가는 화물선에서 자살을 택한다는 것이 그렇다. 그에 비해 '한씨연대기'의 월남 의사 한용덕이 지닌 무게는 분단의 고통이 처참한 전형으로 집약되어 있다는 데에서 나온다. 그뒤 분단극복을 위한 열풍이 80년대를 뒤흔들었지만 이제 남북문제에서 실감나는 것은 분단의 고통뿐이고 그마저도 지금와서는 흐릿해지고 있는 느낌이다. 한용덕의 장례식에 찾아 온 딸이 문밖에 걸린 등의 불을 끄고 도망치듯 상가를 떠나는 마지막 장면은 황석영의 의도와는 다른 리얼리티를 갖는다. 역사인식에는 시효가 있는 모양이다. 그것은 최인훈의 경우나 황석영의 경우나 마찬가지다. <문화일보 97/5/21 방대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