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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장도서

만화를 위한 책

지은이
박인하
출판사
교보문고
페이지수
320
대상
서울의 대형서점을 산책해보자. 망가노모리(漫畵 の 森) 같은 대규모 만화전문서점이 있는 일본에 비해, 전문서점은 고사하고 대형서점조차 독립된 만화 코너가 없는 것이 우리 나라 현실이다. 아쉬운 대로 아동코너에 들어가 쭈삣쭈삣 만화책을 집어든다. 엄마손에 붙들린 아이도 만화책을 집어든다. '만화는 안 된다고 그랬지. 만화 보면 공부 못하니까 다른책 골라.' 만화는 좋은 작품이 나올 수 없다는 인식, 만화는 포르노그라피(pompgraphy)에 불과하다는 편견, 만화를 보면 책읽는 습관을 기르지 못한다는 몰이해 등은 만화에 화인(火印)으로 찍힌 숱한 주홍글씨들이다. 만화에 대한 이중적 인식을 극복하기 위해서는먼저 이러한 주홍글씨와 근거없는 저주를 푸는법을 고민해야 한다. - 본문중 필자는 이러한 고민의 일환으로, 만화일반에 대한 1부와 만화장르별로 살펴본 2부로 본서를 구성했다. 1부는 다시, 만화 보는 사람들, 만화를 얘기하는 사람들, 만화와 사는 사람들로 세분되는데, 만화에 대한 일반적 인식 및 제평가를 두루 훑어보며 편견에 대항코자 했고 만화제작의 현상황에 대해서도 일갈했다. 2부는 성인만화,아동만화, 리얼리즘 만화,독립만화 각각의 특징과 대표적인 만화가 및 그에 대한 필자의 소고가 재치있게 풀어져 있다. 95년 《스포츠서울》 신춘문예 만화평론에 당선된 이후 Sicaf(서울국제만화페스티벌) 95년에는 코디네이터로, 97년에는 큐레이터로 일한 경력이 반증하듯, 필자가 풀어놓은 가락은 만화에 대해 우호적이다.필자가 만화에 대해 애정을 가지는 데에는 공감할 만한 이유가 있다. 이저 Wolfgang Iser의 주장을 빌어와 작가가 창작해놓은 인쇄물을 '텍스트'라 이야기하고 독자가 읽고 이해하여 재생산해낸 텍스트를 '작품'이라고 한다면, 만화는 다른 어떤 장르의 예술보다 독자의 수용에 의한 텍스트의 구체화가 용이하다. 창작자와 작품, 독자의 소통 가능성이 크다는 말이다. 게다가 만화는 창작자에게 무한한 자유의 공간을 제공한다. 시각적인 형상과 비시각적인 형상들이 아우러져 창조되는 세계는 다른 예술매체에서 도달하지 못한 자유로운 공간이며 작가에게 무한한 창조성을 제공한다. 바로 이것이 지금까지 발견한 만화의 비밀이고 매력이다. 미디어 서평 만화가 시대의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각종 국제 만화제가 연이어 개최되는가 하면 일부 만화가들은 선정·폭력성 등의 혐의로 재판정에 서 있다. 아이들이나 즐기는 것으로 인식됐던 만화가 그만큼 문화의 중추로 자리잡은 증거들이다. 그러나 만화의 공과를 진지하게 따지는 문화·출판계의 움직임은 아직껏 미흡하기만 하다. 그나마 대부분의 관련서가 읽을 거리로서 흥미로운 정보는 주고있으나, 실제 만화의 실체를 파고들려는 독자들의 마음을 만족시키는 경우는 드물다. 이토록 만화에 대한 깊은 논의가 부족한 것은 만화연구가 이제 겨우 출발테이프를 끊었다는 측면도 있지만, 만화를 산업차원에서만 생각하고 고부가가치만을 앞세우는 관계당국의 정책에도 문제가 있다. 이 같은 상황속에서 나온 박인하씨의 <만화를 위한 책>은 만화문화에 대한 깊은 애정과 연구의 기초적인 열정이 합쳐진 책으로 판단된다.저자의 본업 또한 만화평론가. 흔한 대중문화평론이 일반인들이 이해못하는 문화연구의 전문개념에 매몰되고, 현학적·자기과 시적 논리에 물들어가는 시점에 소장파 만화평론가로서 그가 제시하고 있는 만화론은 대중들에게 만화의 실제 역할과 문화론적 위상, 현실반영으로서의 장르적 특징을 쉽게 설명하고 있다. 난해한 표현과 현학적 언사로 만화의 문화적 기능을 호들갑스럽게 떠들기보다 만화가 지니고 있는 재미와 사회저항적 의미를 가장 대중적인 언어로 풀어내 만화연구의 새로운 출발을 보여주고 있다. 저자는 무엇보다 만화에 대한 이중의 잣대가 왜 생겼는지 찬찬히 따져보고 있다. 그것은 자신이 몸담고 있는 만화를 예술적 차원에서 정당화하겠다는 이기주의일 수도 있고, 지금까지 제대로 대접받지 못한 만화를 새롭게 조명하겠다는 문화적 반성의 발로이기도 하다. 이런 기준에서 만화의 ‘상업성’은 자본주의 시장원리의 자연스런 반영이며, 선정성과 폭력성 또한 에로티시즘과 서스펜스로 승화시켜야 한다는 주장을 전개하고 있다. 또한 만화와 동고동락하는 사람들이 겪는 현장의 목소리를 구체적으로 담으려고 노력했으며, 자기 작품세계를 고집하고 있는 방학기·박수동·오세영 등 이른바 ‘작가주의’ 만화가들의 위상을 나름대로 분석하려는 시도도 참신하다. 현재 시중에 나온 만화관련서는 크게 작품분석에 중심을 둔 평론서와 상황분석 및 문화이론에 초점을 맞춘 이론서로 양분된다. 그런데 평론서는 인상비평에 가까워 내용의 깊이가 한계로 지적되며, 이론서는 만화를 좋아하는 일반독자들과 거리가 먼 난해함이 문제다. 반면 이 책의 장점은 이 두 가지 형태의 가운데에 서 있다는 것. 평론서와 이론서의 경계에서 두 가지 책들이 놓치기 쉬운 독자들의 궁금증을 모두 담아내려고 노력한 책으로 여겨진다. 물론 불특정 다수의 만화 애호가들을 대상으로 논의의 대중화를 시도하다보니 내용의 전문성과 깊이가 다소 빈약하다는 느낌도 든다. 그러나 성인·아동만화는 물론 지금까지 주목을 받지 못했던 리얼리즘만화·독립만화 등 상업만화와 달리 나름의 예술성을 추구했던 만화도 고루 조명하는 저자의 폭넓은 관심이 돋보인다. 저자가 이 책을 시작으로 이론적 성찰을 보다 발전시켜 만화의 흥미를 전제한 대중적 글로 연결해 나간다면, 일반 독자뿐만 아니라 만화를 연구하려는 전문가· 학생들에게도 훌륭한 지침서로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중앙일보 97/10/12 정형모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