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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장도서

전설속의 거장

지은이
조희창
출판사
황금가지
페이지수
499
대상
지휘자 푸르트 뱅글러부터 피아니스트 굴드까지 클래식 연주자의 음악 세계와 인생 역정을 담은 20세기 클래식음악가 26명 열전. 저자가 책에서 특유의 미문으로 다룬 25명의 거장들도 단순히 기교만 뛰어난 연주 기술자가 아니다. 혹은 20세기 전반의 정치·사회·문화적인 격변을 겪으며, 혹은 끊임없이 다가서는 개인적인 고난을 이겨내며 예술가의 꿈을 이루기 위해 끝까지 싸워온 사람들이다. 미디어 서평 `예술억압`과 맞대결 20세기 클래식 천재들 국제통화기금(IMF) 체제로 불황에 빠진 문화·예술계가 수렁에서 헤어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연주 회장과 공연장은 한산하고 음반 판매량은 줄었으며, 출판은 출판대로 빈사 상태에 빠져 있다. 경제난으로 어려워진 가계에서 문화비가 가장 우선적인 `구조 조정`의 대상이 됐기 때문이다. 레코드사의 클래식 음반 기획자를 거처 공연 전문 잡지 `객석`의 음악 담당 기자 생활을 했던 조회창씨의 `전설 속의 거장` (황금 가지)은 세상의 이런 추세를 거스르는 책처럼 보인다. 이런 때에`20세기를 매혹시킨 클래식의 천재들`을 찾으며 음악을 이야기하는 것이 보기에 따라서는 사치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저자는 책을 통해 이렇게 반문한다. '문화가 고사한 채 이룬 물질적인 축적 만으로 풍요로운 삶이 가능한가. ' 저자가 책에서 특유의 미문으로 다룬 25명의 거장들도 단순히 기교만 뛰어난 연주 기술자가 아니다. 혹은 20세기 전반의 정치·사회·문화적인 격변을 겪으며, 혹은 끊임없이 다가서는 개인적인 고난을 이겨내며 예술가의 꿈을 이루기 위해 끝까지 싸워온 사람들이다. 지휘자 푸르트뱅글러는 나치를 피해 망명했으면서도 친 나치로 고발돼 전범 재판을 받아야 했으며, 유대인인 지휘자 브루노 발터와 피아니스트 클라라 하스킬은 나치가 들어서면서 연주 활동을 각각 금지 당한 채 살기 위해 쫓겨 다녀야 했다. 지휘자 오토 클템페러는 뇌종양으로 인한 반신불수에 고혈압과 싸우면서도 지휘봉을 놓지 않았다. 첼리스트 재클린 뒤 프래는 다발성 경화증으로 끝내 첼로를 놓고 40대 초반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거장을 낳고 기른 나라의 시민들도 이들 못지않았다. 베를린 시민들은 폭격으로 집이 불타버렸으면서도 푸르트 뱅글러의 연주 회장을 찾았다. 독일의 포위망에 둘러싸인 페테르 부르크의 시민들은 쥐를 잡아 연명하면서도 브라빈스키의 음악을 들으며 서로를 감싸 안고 위로했다. 그리고 이것이 그들을 다시 일어서게 한 저력이기도 하다. 우리는 과연 무엇으로 스스로를 위로하며 미래를 준비하는가.'문화비를 우선 떼놓은 뒤, 덜 먹고 덜 쓰는 방향으로 가계비 구조 조정을 하는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많았으면 좋겠다.' `전설 속의 거장`은 IMF체제로 소득이 줄었음에도 자기가 좋아하는 음악을 위해 식비와 생활비를 절반 가량으로 줄였다는 한 작가의 말을 생각케 하는 책이기도 하다. <문화일보 98/8/20 김종락 기자> 반파시스트, 반나치주의자였던 아르투로 토스카니니. 그는 평생 타협을 몰랐다. 무솔리니 정권이 파시스트 당가(黨歌)를 연주해달라고 하자 ‘이따위는 음악이라고 할 수 없다’고 잘랐다. 독일에서의 공연도 거부했다. 나치가 유태인을 박해한다는 이유에서였다. 1938년 잘츠부르크 음악제에서 ‘탄호이저’ 공연을 준비하던 그는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합병 소식을 듣고 불같이 화를 냈다. 분을 못이긴 그는 연습을 하다말고 지휘대에서 내려와 대기실 책상을 걷어차고 악보를 내팽개쳤다. 낭만주의자였던 빌헬름 푸르트벵글러. 그는 히틀러를 싫어했다. 그는 나치의 간섭에 줄곧 저항하며 버텼다. 하지만 전시에도 독일에 남아 음악을 계속했던 그는 이런저런 오해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가 전범법정에 섰을 때 증인들은 말했다.“제3제국 지배하에서, 살아야 할 이유를 가르쳐준 사람은 오직 한 사람 푸르트벵글러였다. 그의 연주회가 있는 한 절망할 수 없었다.”연합군의 폭격으로 집이 불타버린 베를린의 시민들은 그의 연주회장을 찾으며 말했다. “지금 푸르트벵글러의 음악을 듣는 것 외에 달리,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1933년 그는 나치에 입당했다. 지휘자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서였다. 첫번째 아내와도 이혼했다. 아내의 몸 속에는 유태인의 피가 흐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카라얀은 현대가 요구하는 모든 덕목을 갖추었다. 신기술에 대한 흡인력, 정치적 유연성, 권위와 자기선전, 대중성, 사업적인 감각…. 70년대에 더 이상 평정할 분야를 찾지못하던 그는 수익사업에 주력했다. 그가 죽은 뒤 두 딸과 아내에게 남긴 유산은 1천7백50억원. 그가 떠난뒤 사람들은 말한다.“나로서는 카라얀에게 반대하는 게 아무 것도 없다. 그러나 만일 음악이 카라얀이 생각한대로 흘러간다면 음악은 끝날 것이다…”(브루노 마데르나). “카라얀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지겨운 사람이지. 음악을 들을 줄 아는 귀가 없는 사람이야. 뛰어난 장사꾼이긴 하지만.” “그렇지만 세계적으로 유명한 이름인데요.” “그건 코카콜라도 마찬가지 아닌가….”(첼리비다케와 슈피겔지의 인터뷰) 황금가지에서 펴낸 <전설 속의 거장>. 20세기를 매혹시킨 클래식의 거장, 스물세 명의 음악과 생애를 더듬으며 이 궁핍한 시대에 예술이란 또 무엇인가, 하는 물음을 던진다. 스피노자를 공부하다 음반계에 뛰어든 조희창씨. 그에게선 마니아의 열정이 넘친다. 스피드와 테크닉의 발전을 음악의 발전이라고 할 수 있는가, 음악이 주는 여백과 느림의 깊이는 외려, 현대에 들어 퇴보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에서 책을 집필하게 됐다고. 각 장마다 수록된 ‘명연주 명음반’은 그 자체가 별책. <동아일보 98/08/25 이기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