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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장도서

아직도 시간은 있다

지은이
게르하르트 슈뢰더
출판사
생각의 나무
페이지수
352
대상
이 책은 개혁적 신좌파노선으로 유럽에 새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게르하르트 슈뢰더 독일총리. 이른바 '제3의 길'로 불리는 그의 정치철학을 담은 책이다. 또한 우리에게 미국 중심의 세계화, 미국 중심의 자본주의에 대한 반성의 기회도 제공한다. 미디어 서평 : `세계화라는 표현은 국경통제소를 삼켜버리고 국가라는 건축물을 허물어버리는 사나운 물결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합니다. 세계화 시장에서 초국가적 자유주의는 개별 국민국가의 자율과 경제정책적 행동반경에 명백하게 불리한 방향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위르겐 하버마스) `국민국가에 대한 중요성 약화가 곧장 국가 정책의 의미상실로 이해하는 태도는 반대합니다. 당신이 지적하는 세계화가 개별 정부의 영향력을 약화시키거나 무력화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게르하르트 슈뢰더) 위의 논쟁을 당시 독일 언론들은 `철학과 정치 또는 정신과 권력의 대화`라고 칭했다. 지난해 독일 총선의 열기가 달아오르던 당시 프랑크프르트 학파의 마르크스주의자 하버마스와 현 독일 수상 슈뢰더가 벌였던 `세계화와 민주주의`에 관한 논쟁이다. 우리가 주시해야 할 제3의 길로써 `독일모델`을 다각도로 검토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는 슈뢰더의 <아직도 시간은 있다>출간돼 화제다. 이 논쟁에서 슈뢰더와 하버마스는 오늘의 세계를 규정짓는 `경제의 세계화`에 대한 의견을 유감없이 피력하고 있다. `빌 클린턴이나 토니 블레어는 파산 처분을 받은 기업을 어떻게든 다시 살려내려는 유능한 매니저로 자처하면서 이제 변할 때가 됐다는 아무런 의미도 없는 구호에 매달려 있습니다. 이는 이른바 세계시장체제라는 이름으로 개별국가의 정당한 관점, 개인의 민주적 의식을 무력화 시키는 작태들입니다` 라고 서구 정치의 전망부재와 무기력을 질타하는 하버마스. `개인은 사회로부터 받을 뿐 아니라 사회에 대해 주어야 합니다. 모두가 밀접한 공동체의식을 지녀야 합니다. 그래야 비사회적이고 비연대적인 엄혹한 팔꿈치사회(경쟁사회)에서 벗어나 사회의 개인화와 파편화를 막을 수 있습니다`라며 참여민주주의형 사회라는 대안을 제시하는 슈뢰더. 현재 유럽에서는 슈뢰더를 비롯 영국의 토니 블레어, 프랑스의 리오넬 죠스팽 등 이른바 중도좌파 `제3의 길` 기수들이 부각하면서 다른 바야흐로 `사회적 시장주의`, `사회민주주의` 로 그 줄기가 잡혀가고 있다. 고려대 강수돌(경영학) 교수는 `유럽을 이끄는 이들 세 지도자는 모두 중도좌파의 큰 범주에 들어가지만 각각의 노선에 차이를 보인다. 조스팽은 시장경제의 논리를 수용하지만 실업.복지 등에 국가의 개입을 강조해 셋 중 가장 좌파적이며 반면 블레어는 시장경제와 개인의 영역에 비중을 둬 가장 우파적인 인물. 슈뢰더는 그 중간에 있다`고 분석한다. 또 강교수는 `유럽의 사회민주주의는 미국식의 시장만능주의에 이의를 제기하는 긍정적 측면이 있는 동시에 자본주의 내에서 자본주의 결점을 보완하려는 한계성도 함께 지닌다`고 덧붙인다. 하버마스와 슈뢰더의 논쟁 외에 <아직도…>에는 저자가 사회학자 울리히 벡, 전 대통령 리하르트 폰 바이체커 그리고 노조운동가. 실업여성 등 다양한 계층에게 보낸 편지 형식의 글이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따라서 석학과 정치가의 논쟁 뿐 아니라 사회민주주의를 원칙으로 한 슈뢰더의 정치철학을 폭 넓게 읽을 수 있다. <중앙일보 99/03/11 신용호 기자> 보험금을 노리고 애비가 어린 자식의 손가락을 가위로 자르거나 자기 발목을 철길에 묶어 자르는 악몽 같은 일들이 구제금융기의 한국사회를 가위누르고 있다. 이런 일들은 한국사회가 얼마나 인간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사회인지 보여준다. 최근 번역된 게르하르트 슈레더(55) 독일 총리의 <아직도 시간은 있다>를 읽으며 자괴감이 앞서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 책은 슈레더가 지난 98년 총선 몇 달 전에 독일 각계각층 인사 26명에게 편지 형식으로 쓴 글이다. 편지의 수신인은 전 독일 대통령 리하르트 폰 바이츠제거를 비롯해 작가 정치인 학자 경영자 노조지도자 등 저명 인사들뿐 아니라 처음 투표하는 젊은 유권자, 극우정당 지도자, 여성잡지 편집인, 동독지역의 실업 여성 등 다양한 `보통 사람들`까지 망라하고 있다. 슈레더는 노동 경제 외국인 외교 인권 유럽통합 급진주의 청소년 문화 예술 언론 환경 동서독화합 연금 국가비전 등 정치가로서 답해야 할 모든 문제들을 망라해 처방과 전망을 제시하면서, 편지글이라는 비교적 자유로운 형식에 힘입어 인간적 고뇌의 깊이를 행간에서 드러내고 있다. 그의 글을 읽으며 우선 느낄 수 있는 것은 그가 어떤 문제든지 `인간`을 중심에 두고 사고하고 있다는 점이다. 독일이라고 해서 지구화, 경쟁원리, 생산성과 효율성 제고 등의 문제를 피해갈 수는 없다. 그러나 이런 문제의 해결을 위해 인간을 희생양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는 원칙과 철학을 그의 글에서 확인할 수 있다. `경제를 창조적으로 파괴(혁신)할 수는 있겠지만 인간을 파괴해서는 안 된다`든가, `효율성과 인간 존중은 서로를 배제해서는 안 된다`, `시장에도 목표 방향 도덕이 설정되어야 한다`는 진술이 그런 예이다. 그에게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 한다`는 비난을 퍼부을 수는 있겠지만, 그건 비판이 아니다. 어느 나라 어느 시대나 문제는 늘 서로 모순하는 가치가 엉켜 있다. 제대로 된 정치란 서로 모순하는 가치를 유기적으로 결합해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는 데 본령이 있다. `경제성장만이 지고의 가치`라고 주장하거나, `분배정의만이 지고의 가치`라고 주장하기는 너무나 쉽기 때문이다. 슈레더는 분명 두 토끼를 한꺼번에 잡으려 들고 있다. 그러나 어정쩡하게 눈을 이쪽저쪽 굴리고 있는 게 아니라, `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확고한 원칙을 전제로 경쟁력 강화와 생산성 향상의 문제를 고민하고 있다. 그는 이를 `사회복지국가의 현대화`또는 `사회적 시장경제`라고 부른다. 임금정책을 예로 들자면 그는 `임금 억제만으로는 현명한 노동시장 정책이 될 수 없다`며,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임금 억제가 아니라 임금·경제·사회정책의 다양한 영역을 아우르는 포괄적인 새로운 사고`라고 말한다. 임금 억제란 기업의 경쟁력 강화에는 도움이 되겠지만, 노동자에게는 빈궁을 강요하는 비인간적 정책이기 때문이다. 그는 이런 `독일 모델`에 견주어 미국 모델과 동아시아 모델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특히 동아시아 모델은 `비민주적인 강력한 국가가 노동대중에게 그들이 이룩한 번영에서 차지해야 할 정당한 몫을 강제로 포기하도록 하는 데 근거하고 있다`며, `그 반대급부로 몇몇 개인과 독과점 기업에 엄청난 자본이 형성되고 그것으로 경제 발전을 추진하여 세계 경제의 전략 분야를 차지했다`고 혹평한다. 슈레더가 그 전형적인 예로 들고 있는 나라는 불행히도 한국과 인도네시아다. `(이들이 이룬)기적의 슬픈 종말을 우리는 지난 몇 달 간 서울과 자카르타의 거리에서 분명하게 보았다`고 그는 말한다. 그의 비판은 비록 소략하지만 우리가 아프게 받아들여야 할 구석이 있다. 슈레더의 글은, 신자유주의와 시장만능주의 등 미국 모델만이 지구화와 현대화의 모범답안이라고 여겨온 한국 사회에서, `인간`과 `효율`의 문제를 다른 각도에서 진지하고도 현실적으로 모색하고 있다는 점에서 읽어볼 가치를 지닌다. 자유주의라는 귤을 태평양이라는 회수를 건너게 해 히스테리적인 신자유방종주의와 시장만능주의라는 탱자로 변질시킨 이들의 눈에서 물고기비늘을 걷어내는 데 그의 글이 보탬이 되길 빌 뿐이다. <한겨레신문 99/03/09 이상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