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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문/기행문

제목 음성 꽃동네 사랑의 연수원을 다녀와서
글쓴이 이예은
음성 꽃동네 사랑의 연수원을 다녀와서







나는 음성 꽃동네에 가기 전에 노인전문요양원에 배정받았다. 치매나 중풍에 걸리시거나 너무 고령이셔서 혼자서는 의식주를 해결하실 수 없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생활하고 계시는 곳이다. 꽃동네에 가기전에는 대소변 치우는 일처럼 어려운 일을 시키지 않을까 싶어서 내심 걱정도 했다. 그래도 꽃동네에 놀러간것이 아니라 봉사활동을 하러 간 것이 었기 때문에 가서 정말 봉사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봉사활동을 하고 다녀와야 겠다고 다짐했다.



입소식때 꽃동네에 처음 발을 들였을때의 느낌은 생각 보다 참 크구나 하는 것이었다. 꽃동네는 오웅진 신부님이 자신도 걸인이면서 다른 몸이 불편한 걸인들을 먹여살리시던 최귀동 할아버지를 만나게 되면서 ‘얻어먹을 수 있는 힘만 있어도 그것은 주님의 은총’이라고 깨달은 뒤, 당시 주머니돈 1300원으로 시작 되었다고 한다. 평소에 많은 사람들이 평소에 남을 돕지 못하는 이유가 ‘부자가 아니기 때문에, 돈이 없어서’ 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이 아니다는것을 최귀동 할아버지를 통해 깨달았다. 진실로 남을 돕고자 하는 사람이 있다면 자기가 가진것이 작을지라도 내어 놓고 함께 나누는 것이 참 사랑임을 느꼈다.



봉사활동을 가기전에 수녀님의 강의를 듣고 좋은 가정이란 자녀가 중심이 되는 가정이라는 것을 배웠다. 서로 서로 배려하면서 아껴주는 가정이 행복한 가정이라는 것을 새삼 다시 느꼈다. 버스를 타고 대강당에서 조금 떨어진 노인 전문요양원에 도착했다. 맨처음에 봉사활동을 하러 가기 전까지만 해도 많이 무서웠지만 그곳에 막상 도착해 보고 나니 그곳에 계신 자원 봉사자 분들이 봉사하시는 일에 비하면 나가 가서 봉사하는 일은 정말 작은 일이었다. 점심시간이 되어 식사를 하시게 되는 분들의 식사를 돕는 일을 했다. 대부분의 분들이 소화기관이 약해지셔서 제대로 된 밥을 드시지는 못하고 주사기로 먹는 묽은 미음이나 영양죽 등을 드셔야 했다. 2번 정도 그 분들이 식사하시는것을 도와 드렸는데, 한입 한입 넘기시는것도 힘이 겨우셨던지 온 인상을 찡그리고서야 한 입을 겨우 넘기셨다. 90세가 넘으신 분이었는데 겨우 숨만 쉬고 계시던 그 할머니, 지금껏 17년간 살아오면서 그렇게 갈비뼈가 다 드러나고 팔다리가 바짝 마른 고목처럼 말라붙은 사람을 실제로 본적은 그때가 처음이었던 것 같다. 그 분들을 보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나도 저렇게 늙게 되는 날이 있을까? 그때는 누가 내 옆에서 이렇게 날 도와 줄까? 하고 생각하니 인간이란 언젠가 저렇게 나약해지는 존재구나 하는 생각이 새삼 들었다. 평소에 살갑게 잘 대해드리지 못했던 할머니가 생각이 났다. 언제까지 건강히 사실지도 모르는데, 건강하실때 조금더 신경 써 드리고 잘 해 드려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노인전문요양원엔은 치매에 걸리신 분들만 계신줄 알았는데, 막상 가보니 정신은 온전하신데 중풍으로 고생하시고 싶은 할머니를 만났다. 할머니의 성함은 위정자 할머니. 내 나이때인 16세때부터 중풍으로 걷지도 못하고, 혼자서 생활하기가 무척이나 힘드셨다고 한다. 할머니의 팔다리는 짧았고, 그 작디 작아보이던 손은 안으로 굽어 있었다. 하지만 그 할머니의 얼굴이란. 나는 그 할머니의 얼굴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한 알, 한알 묵주를 굴리시며 눈을 가만히 감고 계시던 그 얼굴. 살면서 세상에서 정말 한번도 보지 못했던 가장 편안하고 고운 모습이었다. 어쩌면 그렇게 편안한 표정을 지을수가 있을까. 할머니의 얼굴은 참 고왔다. '천사같다'라는 말은 그 할머니에게 가장 어울리는 말이었다. 그곳에 머무는 동안 그 할머니와 이야기를 나누었을 때가 가장 감명깊었다. 물론 신체 거동은 불편하신 분이었지만 참 행복해 보이셨다. 노인 전문 요양원의 시설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좋았고 봉사자 분들도 많이 계셨다.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전세계에서 질병과 버림받음으로 길거리에서 그 누구의 관심과 사랑도 받지 못한채 죽어가는 사람들도 많이 있는데, 그래도 이곳에 계시는 분들은 꽃동네에 와서 참 행복하신 분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꽃동네는 외국에도 많이 나가 있다고 들었는데,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꽃동네와 같은 사회 복지 기관을 많이 도와 사랑을 받지 못하고 외롭게 길거리에 질병과 마음의 상처를 가지고 어렵게 살아가시는 분들을 많이 모셔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꽃동네에서 봉사활동을 마친 뒤, 낙태와 생명에 대한 꽃동네 수녀님의 강의를 들었다. 낙태 수술을 하는 동영상을 보면서 낙태가 '낙태 수술'이 아닌 '명백한 살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낙태를 하는 과정은 마냥 눈뜨고 볼 수 없을만큼 징그럽기만 했던 것이 아니었다. 나에게 충격을 주었던 동시에 많은 것을 깨닫게 해주었다. 신이 아니고서야 인간인 우리가, 명백히 하나의 생명체이며 우리와 똑같이 심장이 뛰고 있는 태아를 죽일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있을까? 낙태는 정말 비인간적이고 잔인한 살인이다. 막 수정되어 착상한 그 조그마한 수정란도 하나의 생명이다. 하지만 요즘 사람들은 너무나 낙태를 쉽게 생각하는 것 같아서 씁쓸하다. 낙태를 선택하는 산모들 중 성폭행에 의해서라던가, 하룻밤의 실수로 아이를 가져서 아이를 지우려고 하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들보다 미혼모에 대한 사회적 보장과 법적인 제도가 미흡하다고 들었다. 사생아가 생기면 여자만 아이를 책임지는것이 아니라 남자측도 같이 양육을 하는것이 법적으로 통과 되었으면 한다. 꽃동네를 떠나오는날 4개월된 태아의 발 배지를 구입했다. 많은 사람들이 생명의 소중함을 깨달았으면 좋겠다.



2박 3일동안 꽃동네에서 내가 봉사하고 간 것보다 훨씬 많은 것을 배우고 온것 같다.

내가 지금까지 살면서 내 자신이 처한 상황이나 모든 것들에 불평 불만을 가지고 살때가 많았는데, 꽃동네에 다녀오고 나서 나는 얼마나 행복한 존재인가 하는 것을 다시한번 깨닫게 되었다. 행복은 상대적인 것이라는 것. 내가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서 내 삶이 행복해질수도 있고 불행해질수도 있다는 것을 배웠다. 그렇다고 꽃동네에 살고 계시는 분들이 나보다 건강도 더 좋지 않고, 더 어렵게 살아간다고 해서 나보다 불행할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막상 꽃동네에 가보니 그것도 아니었다. 그 분들중에서도 자신이 가진 작은 것에 감사하며 나보다 더 행복한 얼굴로 살아가시는 분들이 계셨다.

내 스스로 행복해지기 위해, 항상 주어진 상황에서 열심히 살아서 내 스스로 행복해져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꽃동네에서 강의 시간에 수녀님이 우리들에게 물어본 것이 있다. "무엇이 너에게 있으면 가장 행복 해질것이라고 생각하니?" 한 학생이 "돈" 이라고 말했다. 살아가는데 돈은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그것이 나의 삶을 온전히 만들어 줄수 있을까? 돈은 반드시 살아가는데 필요하지만, 그것이 나의 삶의 목표가, 가치가 되어 나만 알고 살아가는 것은 불행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 자신의 처지에 감사하고, 작더라도 내가 가진 것을 남과 나누는 삶이야 말로 우리에게 정말 가치있는 삶, 행복한 삶을 가져다 줄 것이다.



꽃동네에서의 인사말은 "사랑합니다" 이다. 사랑. 그것은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행복하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사랑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기 때문이다.



옷 한벌.

밥 한끼.

건강.

숨쉬는 공기.

따스한 햇빛.

나에게 가족이 있다는 것.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

이 모두가 감사의 조건이다.



우리에게 너무 당연한 것들로 느껴지는 이런 사소한 것들조차

누군가에는 정말 절실한 것임을 알아야 한다.



사랑은 나누어야 하고, 우리가,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을, 정말 가치 있게 살아가려면,

정말로 가치 있는 삶을 살려면 우리가 가진 그 작은 것들을 함 께 나누어야 한다.

"아프도록 사랑하면 아픔은 없고 더 큰 사랑만 있다"는 테레사 수녀의 말처럼 진정으로 사랑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