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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문/기행문

제목 ‘공정한 재판’을 위한 곳 을 다녀와서
글쓴이 정영학
서울 고등법원은 서울시 서초구 서초동에 있다. 아침 8시 30분에 버스를 타고 출발했는데 눈이 많이 와서 늦지 않을까 하는 걱정과는 달리 너무 일찍 도착했다. 오전 10부터 서울 고등법원의 견학 시간이어서 주변을 둘러보고 시간이 되어서 들어갔다. 먼저 법원을 안내해주시는 가이드 선생님으로부터 법원에 대한 소개와 하는 일에 대해서 듣고 동영상도 보았다. 고등법원의 견학을 위한 전시 공간을 관람하며 법원의 역사와 하는 일에 대해서 좀 더 자세히 알게 되었다. 가장 인상 깊게 남는 것은 법원을 쌍둥이 빌딩으로 지었는데 그것은 어느 한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는 공정한 재판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했다. 재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공정함’ 이었다.
그리고 법정은 의석차이에 따라 소법정, 중법정, 대법정이 있는데 우리는 소법정에서 실제 재판을 방청했다. 방청석은 34인석이었다. 법정에는 판사, 검사, 변호사, 피고인 있었고 기록을 하는 두 사람도 있었다. 또 소란을 피울 때는 밖으로 내쫓을 수 있는 법정 경원도 한명 있었다. 가상 재판이 아니라 실제로 재판하는 것이어서 절대 정숙해야하고 모자도 쓰면 안 되었다. 무겁고도 엄숙한 분위기가 법정에 감돌았다.
첫 번째 피고인은 초등학교 2학년에 중퇴하고 고생 끝에 운전면허를 취득한 후 30년간 택시 운전을 한 50대 아저씨였다. 검사의 진술에 의하면 이 피고인은 살기가 힘든 어느 날 경관에게 폭행한 죄를 저질러서 법정에 서게 되었다. 변호사는 그동안 피고가 어려운 가운데서도 열심히 살았고 잘못을 뉘우치고 있으니까 정상을 참작해 달라고 했다. 판사가 2주후에 다시 법정에 나오라고 하며 최종판결은 미루어졌다. 고개를 푹 숙이고 나가는 모습이 좀 불쌍해보였다. 불현듯 빅토르 위고의 ‘장발장’이 스쳐갔다.
두 번째 피고인은 부동산 경매를 하는 30대 초반의 남자였다. 그는 국정원을 사칭하며 피해자(여자)를 속이고 약 2천 만 원의 돈을 갈취한 죄로 법정에 오게 되었다. 뻔뻔하게 얼굴을 들고 판사에게 피해자에게 일부의 돈은 변제했고 나머지 돈도 갚으려고 했다며 자신은 억울하다는 듯이 말했다. 사지는 멀쩡하게 생겨서 정당치 못한 방법으로 인생을 살아가는 그의 모습은 반면교사가 되었다.
세 번째 피고인은 일본 국적을 가지고 있으며 고물상을 위탁 판패하는 50대의 일본 여자였다. 죄목은 횡령죄였다. 그녀는 피해자 이모씨에게서 천만 원 시가의 ‘통일신라금동불상’을 받아서 일본에 가서 팔아주기로 했다. 그런데 물건도 돈도 주지 않아서 피해자가 고소한 경우이다. 여기서 방청시간이 다 되었다고 밖으로 나오라고 해서 판결이 궁금했지만 나올 수 밖에 없었다.
강당에서 행정 5부에 계시는 이형근 판사님과의 질의&응답 시간이 있었다. 우리가 질문을 하면 판사님께서 답변을 해주셨다. 첫 번째로는 가장 어려웠던 재판은 법정에 와서도 싸우는 경우라고 했다. 그 때는 조용히 시키고 나서 재판을 시작해야 해서 시간도 오래 걸리고 힘도 많이 든다고 했다. 두 번째 외국인을 재판 해 본적이 있냐고 했는데 요즘은 그런 경우가 굉장히 많고 그 때에는 통역이 필요하다고 했다. 언제 판사의 꿈을 키웠냐는 질문엔 중학교에서 고등학교 갈 때 쯤이라고 했다. 시골에서 공부를 잘해서 부모님께서 법대에 가길 원하셨고 그때부터 법조인의 꿈을 키우셨다고 했다. 재소자에게 협박을 받은 경우는 있냐고 했는데 아직까지는 없었고 우리나라는 그런 경우가 거의 없다고 했다. 판사가 되려면 뭘 잘해야 되냐고 했더니 여러 방면의 다양한 독서를 강조했다. 무엇보다도 꿈을 가지고 열심히 노력하면 어떤 분야이든지 자신의 길을 갈 수 있다고 했다. 정말 진중하고 자세한 답변에 감사한 마음이 절로 들었다.
법원은 왠지 으스스하고 살벌한 분위기라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가보니 꼭 그렇지는 않았다. 잘못한 사람은 재판을 통해 처벌을 받고 억울한 사람은 변호사를 통해 법 앞에서 억울함을 풀수 있는 곳이었다. ‘법 앞에서는 만인이 평등하다’는 재판의 공정함을 실현하는 곳이었다. 그리고 그 곳에서 열심히 일하시는 판사님을 보며 나도 내 꿈을 위해서 최선을 다해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