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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문/기행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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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정지은
어느 집안이나 조상님은 있다. 물론 없어진 집안도 있고 새로 생긴 집안도 있지만 말이다. 나의 조상님 중에서 존경하는 인물은 다산 정약용이다. 조선 후기 학자 겸 문신이다. 사실적이며 애국적인 많은 작품을 남겼고, 한국의 역사 · 지리 등에도 특별한 관심을 보여 여러 책들을 남기셨고 수학과 과학에도 능통하셔서 서학을 통해 서양의 과학 지식을 도입하기에 이르신 분이다. 수원 화성을 축성할 때 많은 힘을 쏟으신 분이기도 하다. 이번에 우리 가족은 우리 조상님이 만드셨다는 수원 화성에 가 보기로 했다.
사전에 수원 화성에 대한 조사를 조금 해 보았다. 화성은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와 장안구에 걸쳐 있는 길이 5.4킬로미터의 성곽이다. 길이가 긴 것은 알았지만 실제로 보니 훨씬 어마어마했다. 높고 넓게 펼쳐져 있는 화성을 보니 뜨거운 햇살이 내리쬐어도 막을 수 있었다. 우리는 먼저 안내소에서 지도를 보고 ‘화성열차’를 타고 수원 화성의 반을 돌고 다시 걸어 돌아오는 것으로 코스를 정하였다.
열차를 타러 갔는데 사람이 정말 많았다. 휴일이라서 그런가 더 많았다. 결국 열차의 표는 한 시간 후의 것을 예매하고 기다리면서 잠깐 휴식을 취했다. 한 시간 후에 열차에 탔는데 열차의 앞부분은 용모양이였다. 열차의 앞부분에서 사진도 한 장 찍고 출발했다. 주변을 둘러보고 있는데 설명이 나왔다. 화성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곳이다. 그 이유는 최초로 설계를 하고 지은 건물이고 그 커다란 건물을 원래 계획보다 빨리 완공한 것이라고 한다. 최초로 설계를 한 사람이 정약용이라는 말이 나왔을 땐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걸쳐졌다. 우리 조상님을 칭찬하는 말 같이 들려서 그런 듯하다.
열차가 서자 모두 내렸다. 우리 가족은 다시 차가 있는 곳으로 돌아가기 위해 걸었다. 걷는 도중에 수원화성박물관에 갔다. 온몸이 아이스크림 녹을 것처럼 더웠는데 박물관 안은 시원해서 너무 좋았다. 야외에서는 거중기와 녹로를 비롯한 화성축성에 사용된 과학 기자재를 볼 수 있었다. 거중기는 정말 컸고 녹로는 더 커서 마음에 들었다. 더불어 정약용 조상님이 자랑스러웠다. 박물관 안은 화성축성실과 화성문화실로 나누어져있었다. 가이드와 함께 다니면서 설명을 들었다. 화성과 세계의 건물을 비교하는 말들도 있었고 거중기에 대한 자세한 설명도 있었다.
그 중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거중기에는 돌들이 정말 많이 쓰였는데 그것이 어디서 나왔는지를 설명하는 것이었다. 산에 돌맹이에 구멍을 뚫어서 마른 나뭇가지를 넣고 물을 부어 나뭇가지의 부피가 늘어나는 것을 이용한 것이라고 한다. 조선 후기에 그런 원리를 이용한 사실이 놀라웠다. 또 화성을 축조할 때는 백성이 했는데 일당을 주면서 했다고 한다. 그 전까지는 그냥 노역으로 일당 없이 했는데 확실히 돈을 주니 일도 빨리 끝났다고 한다. 또한 그 인부의 이름을 머릿돌에 새겨서 3년 안에 그 구간이 무너지면 그 인부가 책임을 지게 했다고 한다. 그러니 견고하고 단단한 화성이 완성 될 수 있었다고 한다. 나는 여기서 참 머리를 잘 썼다는 생각을 했다.
이번 화성 답사는 나에게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해 주었다. 정조는 정약용과 함께 화성을 계획했다. 아무리 정약용이 대단했어도 정조가 인정하지 않았다면 그는 빛을 발하지 못했을 것이고 정조 역시 정약용 같은 인재가 없었다면 화성을 만드는데 있어서 힘이 많이 들지 않았을까, 아니 아예 시작도 하지 못했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다. 사람을 잘 만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조와 정약용은 서로에게 ‘수어지교’같은 사이라고 생각된다. 수원화성이 자랑스런 문화재로 빛날 수 있는 것은 정조와 정약용의 명콤비 작품이라 생각된다. 또 나는 정약용이 우리 조상님이란 것이 자랑스럽다. 나 역시 후세에 남게 될 훌륭한 인물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기 위해서 나는 언제나 노력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