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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문/기행문

제목 수학여행을 다녀와서
글쓴이 조예리
지겹도록 수학여행을 많이 다녀 보았으니 준비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을 거라는 생각을 하고 늦은 저녁때가 되어서야 주섬주섬 옷가지를 챙기고 세면도구를 찾느라고 수선을 떨었다. 그래도 명색에 마지막 수학여행에 고등학교 친구들과 처음으로 함께 가는 여행이고 또 난생 처음 가는 제주도여행이라 그랬는지 이것저것 챙길게 많아 새벽까지 잠 못 이루고 여러 준비물을 챙기기에 여념이 없었다. 몇 시간 숙면을 취하지 못했음에도 기대되는 마음을 가득 품고 버스에 올라탔다. 배를 타고 가는 그 짧은 여정 속에서도 가끔 봐왔던 풍경들을 다시 스치듯 보면서도 왠지 모를 신선함을 느꼈다. 배를 타고 가면서 멀미를 느끼지 않는 나였지만 선상에서의 짧은 사진 촬영이 끝나자 서서히 항해의 무게가 엄습해와 남은 1시간 30분을 실내에서 조용히 보냈다.
힘든 배에서의 생활이 끝나고 처음 제주도 땅에 발을 들여놓았을 때는 ‘여기가 제주도가 맞나? 그냥 전라도 외진 곳에 소풍 온 것 같은데.’라는 생각이 들면서 제주도 내음이 와 닿지 않았다. 버스를 타고 이동하면서 지루할 법도 하건만 기사 아저씨의 제주도에 관한 작으면서도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들으면서 피곤하지 않게 갈 수 있었다.
우리가 처음 찾아가는 곳은 제주도 향토 감을 느낄 수 있는 자연사 박물관이었다. 관람을 시작하면서 봤던 성산일출봉 축소판을 보면서 제주도에서 경치가 가장 빼어나다는 그곳을 꼭 올라가겠노라고 내 자신과 약속을 했다. 바닥에 있던 사람발자국 화석을 따라 걸어보기도 하면서 동심의 세계로 돌아간 듯 즐기다가 다양한 조개화석을 보고는 생뚱맞게 조개구이가 먹고 싶기도 했고 돌의 종류를 구분하는 일이 새삼 힘들다는 것을 느꼈으며 현미경으로 자세한 단층을 관찰하면서 놀라움을 표출하기도 했다. 또 소박하고 아기자기한 장신구에서 제주도인의 성품과 전통을 머릿속과 가슴으로 느낄 수 있었다.
자연사 박물관에서의 짧은 시간을 뒤로하고 용두암으로 향했다. 용머리와 비슷한 그 형태를 보면서 ‘난 바다에 갇혀 나가지 못하는 용이 아니라 하늘로 승천하는 용이 될 거야’라는 생각도 해보면서 용머리와 함께 예쁜 포즈를 취하고 버스로 돌아왔다. 중간에 먹을거리의 유혹이 너무 많았지만 지금 먹어서 배가 부르면 앞으로의 관광이 힘들어질 거라는 생각이 들어 유혹을 뿌리치고 앞으로 직진했다.
그리고 드디어 텔레비전에서 보고 그 신기함에 놀라 꼭 가보고 싶었던 신비의도로, 일명 도깨비도로로 갔다. 분명 아저씨께서 차의 시동을 껐음에도 불구하고 앞으로가는 버스에 감탄했고 시동이 꺼진 후 승차감이 더 편하다는 생각도 했다. 착시현상으로 오르막길을 오르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 과학적으로 맞는 설명이겠으나 나는 그냥 도깨비가 우리를 재미있게 해주려고 장난을 치는 거라고 생각하고 싶었다.
지나가는 길에 할머니들께서 길가에서 무언가를 널고 계셨는데 우리 할머니가 생각나는 정겨운 풍경이라 잊을 수가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한라수목원에 도착해서도 따뜻한 마음을 품고 모든 것을 바라볼 수 있었던 것 같다. 안의 전시실보다는 밖의 나무들, 꽃들, 풀들을 보며 거니는 것이 훨씬 자유로운 느낌과 시원시원함, 정신이 맑아지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눈으로 봤을 때와는 달리 사진기 렌즈를 통해 본 식물들 또한 상처가 잘 보이지 않고 깨끗한 감이 더 강해인지 색달랐다. 특히 까마귀쫑나무새덕이, 후박나무, 말오줌때 등의 이상하고 웃긴 이름들을 보면서 여유로움과 즐거움을 함께 즐길 수 있었다.
피곤한 마음에 일찍 잠이 들고 나서 처음으로 향한 곳이 산굼부리였다. 들어가기 전 입구문의 천장에 있는 그림이 내 시선을 사로잡았다. 철쭉으로 둘러싸인 올라가는 언덕과 돌담 너머 보이는 길이 참 멋있었다. 돌담이 호위하고 있는 무덤이 인상적이라 왜 그렇게 해 놓았는지 궁금했었는데 방목해서 키우는 소와 말이 무덤을 훼손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 산담이라고 불리는 담을 쌓아 놓은 것이라고 했다.
다음은 제주도의 민속적인 정취를 느낄 수 있는 성읍민속마을이었다. 민속마을이라고 하면 초가집, 기와집 섞여 있던 것을 신물 나게 봐왔던 나인지라 이번엔 누가 뭐라고 하지 않아도 별 기대도하지 않고 갔다. 하지만 다른 지방의 민속마을과는 다르게 마을입구를 장승이 아닌 돌하르방이 지키고 있었고 바람으로 인해 낮은 곳에 짓는다는 집이 인상 깊었다.(아쉽게도 우리가 갔을 때는 보수공사로 인해 낮은 곳이 아닌 비교적 높은 곳에 집이 지어져 있었다.) 또 독특했던 점은 관청의 역할을 했던 것으로 추정되는 기와집이 다른 것과는 다르게 화려함 보다는 그 속에서 소박함을 더 많이 발견했다는 점이었다. 이런 저런 곳에서 제주도의 소박함과 아담함을 볼 수 있어서 참 좋았던 시간이었다.
제주도에는 이국적인 곳이 많다고 하는데 특히 일출랜드가 그러했던 것 같다. 신혼부부가 야외촬영장소로이곳을 정하고 한 바퀴 돌면 사진이 수 십장도 더 나올 것 같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풍경이 아름다운 곳이었다. 일출랜드 안에 있는 미천굴에서 물이 계속 떨어져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소원 성취 탑에서 소원 빌기도 하고 들어갈 때는 못 보았지만 나올 때는 볼 수 있었던 벽화를 즐기기도 하면서 제주도의 정취를 마음껏 즐겼다.
성산일출봉을 처음 딱 봤을 때는 ‘지금 아니면 올라갈 기회가 없을지도 모른다.’는 마음으로 한 번 더 정상을 훑어본 뒤 출발했다. 가파르게 보였었지만 막상 올라가보니 계단으로 돼있어 그렇게 힘이든 것도 아니었고 설월언덕으로 다져진 강철체력이라 그런지 남들보다 수월하게 올라갈 수 있었다.처음 올라갔을 때는 힘이 들어 숨을 고르느라 최고의 절경이라는 것을 실감하지 못했으나 차분히 보면서 분화구 형태의 신비한 형태와 사진으로 볼 때보다 직접 보았을 때 느낄 수 있는 생생함에 감탄했다.
꽃보다 남자를 보기 위해 저녁마다 달렸던 그 설렘을 안고 꽃남 촬영지였다는 섭지코지로 향했다. 성산 일출봉을 오른 뒤 피곤한 마음으로 도착해서 몸이 천근만근 무거웠지만 비교적 완만한 경사로 많은 힘을 들이지는 않고 가 우뚝 솟아있는 그림 같은 등대도보고 재미는 없었지만 미로도 거닐면서 이틀째 되는 날의 즐거운 하루의 기운을 모두 쏟아 부었다.
가장 사진을 찍을 것이 많을 것 같았던 셋째 날을 위해 사진기 배터리를 아껴놓으려고 했으나 그 전날부터 너무 많은 소진으로 인해 오늘은 할 수 없이 핸드폰과 병행해가며 찍을 수밖에 없었다.
모든 것을 작게 만들어 놓아 세계여행을 하루 만에 할 수 있는 소인국파크에서는 재미는 있었지만 빠듯한 시간이라 여유롭게 살피지는 못했고 아는 것이 나오면 아는 채 하면서 지나치기도 하고 모르는 것은 한번이라도 더 보기 위해 애쓰면서 출구로 향했다.
귀여운 곰돌이 인형이 살아 움직이는 듯 동적인 테디베어 뮤지엄. 인형을 많이 좋아하지는 않지만 소녀의 감성으로 귀여운 인형을 잔뜩 기대하고 갔던 나는 유리를 통해 보이는 왕 테디베어에서부터 눈을 뗄 수 없었다. 전시실을 돌아다니는 내내 만족해했으면서도 전시실의 끝자락에 오면 더 없나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예쁘고 귀여운 많은 인형들을 사고 싶었으나 광주에서도 살 수 있는 인형들이라는 생각에 마음을 꾹 접고 대신 사진을 제대로 찍지 못했던 모나리자와 채플린 엽서를 샀다. 작은 인형, 테디베어를 가지고 세계사를 비롯한 한국사, 그리고 여러 전통 등의 테마를 표현했다는 점에서 찬사를 보내고 싶었다.
밀랍인형박물관에서 짧은 시간을 보냈는데 진짜 사람처럼 정교해 한번 만져보고 싶었지만 만지면 안 된다는 수칙을 따르며 유명인들과 함께 ‘김치’를 하는 것으로 만족했다.
여러 공연을 한 번에 볼 수 있었던 퍼시픽랜드였지만 그 전에 너무 피곤해서 인지 일본원숭이가 공연할 때는 졸음이 밀려왔었는데 바다사자부터 정신이 돌아와 돌고래 쇼를 할 때는 돌고래를 키우고 싶다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흐리던 하늘이 제발 그 상태로 멈춰주기를 바랬건만 밀랍인형 전시관에서부터 기웃기웃하던 빗방울들이 결국에는 낙하해 부모님께서 꼭 가보라고 추천해주셨던 천지연폭포에 갈 때는 우산 속으로 까지 침투하기에 이르렀다. 비가 왔지만 그에 굴하지 않고 흐르는 폭포수는 흐르는 빗방울까지 포용하면서 그 웅장함을 더욱더 빛내고 있었다. 비는 내렸지만 내가 다녀갔다는 낙인을 찍기 위해 우산을 뒤로 젖히며 비를 살짝 씩 맞아가면서 사진 촬영을 했다.
즐거웠던 레크리에이션 시간에는 이제 마지막 수행여행이라는 것을 생각하면서 창피함도 잊어버리고 내가 즐기고 싶은 대로 놀았고 또 나이트클럽이라는 신선한 코너가 마련돼 있어서 지금까지와는 다른 더욱 신선하고 신나는 레크리에이션이었다.
돌아갈 날이 되었을 때는 집으로 가고 싶은 마음이 강하다가도 다시 현실로 돌아 가야한다는 생각에 제주도에서 유유자적한 삶으로 감귤농사를 지으면서 살고 싶다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마지막에 보았던 매직랜드가 끝나지 않았으면 싶었다.
비행기를 탄다는 설렘을 간직하고 있었으나 나흘 동안 제주도와 정이 많이 들었는지 떠나고 싶지 않았다. 비행기에서의 편안했던 짧은 시간을 뒤로하고 집으로 돌아가는데 내 나름대로 수학여행에 즐겁고 열심히 참여했다는 뿌듯함과 이제 가족의 품에서 쉴 수 있다는 안도감 등의 만감이 교차하면서 새삼스레 수행여행에서 있었던 일을 되짚어보고 있었다.
10대의 마지막, 내 인생을 통틀어 마지막이 될 수학여행이라는 사실이 좀 서글프기도 했지만 그랬기에 이 4일 동안 다른 어느 때보다도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었고 하나라도 놓치지 않기 위해 눈으로 마음으로 열심히 관광했던 것 같다. 물론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아 고생하기도 했지만 인심 좋은 웃음과 훌륭한 풍경을 보고 듣고 즐길 때면 함께 있을 때는 제대로 챙겨주지도 못했던 가족들이 생각나면서 같이 있다면 더 좋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린 아이들이 부모님과 손잡고 오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나중에 꼭 부모님, 동생들 손잡고 다시 와봐야지 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마지막이란 새로운 시작을 의미한다. 난 마지막 수학여행을 보냈고 그 일에 후회 없을 정도로 최선을 다했기에 새로운 날을 알차게 보내면 된다. 이제 내가 해야 할 일은 제주도의 푸른 밤을 기억하고 바다의 짭조름한 냄새를 기억하며 나무의 푸름을 기억하여 영원히 잊지 않고 가슴속에 그것을 품으면서 더 넓은 추억을 쌓을 줄 아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