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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소설

제목 월그 3
글쓴이 최자인
고 3인 내가 수능 보다 더 중요한 일이 생겼다.
그것은 먼 옛날 과거에 잊혀졌던 것. 절대로 기억하고 싶지 않던 것.
그것을 난 지금 다시 되찾고 있는 중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찾았다. 이거야."
먼지 뭍은 서류들이 내 코를 간지럽힌다. 이 서류들은 부모님께서 증거 자료들을 수집한 것이다. 법정에서 우리 가족은 이겼고, 그 오빠는 사라져버렸다. 아마 어딘 가에서 벌을 받고 있겠지. 그 벌은 영원의 약속, 나를 더럽힌 죄의 결과다. 서류들을 바라보며 증오에 사로잡히고 말았다. 손엔 땀이 베였고 부들부들 떨렸다.
"이러면 안 돼.... 진정해, 진정하자. 우선... 기억을 더듬어 보자. 천천히..."



여긴 이사 오기 전 동네의 골목. 정확히 내가 오빠와 만났던 장소이다.
난 오빠와 얘기를 나눈 뒤 그의 손엡 붙잡혀 이끌려갔다.
"저기 끝까지 안내해줘, 부탁이야..."
'끝'까지란 곳에 도달했을 때 나는 야금야금 먹혀버렸다.
몸 깊숙히 여기저기에 어둠이 들어와 날 잡아 먹었다. 울부짖을려 해도 입마저 어둠에게 잡혀 소리는 머릿 속 안에서 빙빙 맴돌뿐이었다. 흐릿흐릿하게 오빠의 모습이 보이고...
그 뒤엔.... 무엇이....무엇이 날 바로보고 있지? 눈이 팽글팽글 돌아 시야가 흔들렸다. 그것은 분명 내가 아는 사람인데. 그는 누구인 걸까. 아무라도 좋아. 날 구해줘, 날 살려줘...!
눈물이 앞을 가릴 때쯤 그는 이미 없어져버리고 말았다. 그는 대체 누구였던걸까.



"그는 대체.... 누구지.... 분명히... 내가 아는 사람인데...."
서류들을 하나씩 하나씩 읽어보았다. 전부 어려운 용어들이 줄지어 적혀있었다. 인쇄가 번진 부분은 부모님의 눈물 자국 인걸까. 가슴 한 곳이 시큰하게 저려온다. 내가 울은 만큼 그분들도 많이 우셨겠지. 나보다 많이 아파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난 서류들을 가방에 쑤셔넣고 교통카드와 휴대폰을 손에 쥔 채 밖으로 나갔다. 이사 오기 전의 동네는 버스로 1시간 거리이다. 나 혼자서도 충분히 갈 수 있다. 속의 메스거림은 동네에 도착할 때 까지 내내 계속 됬고, 동네에 도착하자마자 머리엔 "무서워, 가고 싶지 않아."란 말이 메아리 쳤다. 심장은 이제 예전같지 않다.
골목을 향해 걸어가고 있는 도중 그 오빠가 다니던 고등학교의 교복을 입고 있는 남자들이 줄지어 걸어왔다. 다리가 저려왔고 입에선 올라올려 했다. 후유증이란 것이 이렇게 심한 것이였던가. 난 눈을 질끔 감고 골목 까지 다 달았다. 전봇대에 숨어 숨을 죽이며 토를 했다. 나란 존재는 덧없이 약하고 한심스러운 생물인 것 같다. 월그가 머릿속에 맴돈다. 보고싶다. 나의 또다른 그녀. 회색빛의 그녀. 분명 그 회색은 너와 나겠지.
골목 안으로 점점 들어갔다. 무섭지 않냐고 묻는다면 무서워 죽겠다. 하지만 포기하는 건 더욱 더 무섭고 싫은 일이다. 월그와 나를 위해서... 난.... 난.......!
"털썩"



"름아....름아...! 여름아!"
"앗!"
그런가. 다시 이 세계에 들어온건가. 절로 한숨이 나왔다.
"하.... 바보 같은 짓을 해버렸어.... 쓰러지고 말았네."
월그가 눈물을 글썽이며 말하였다. " 여름아, 그렇게 까지 무리하지 않아도 돼! 왜 그렇게 까지.. 흑.....나 때문에...."
난 가녀리게 우는 월그의 뺨에 손을 슬며시 가져갔다. 눈물이 손등을 적셨다.
" 널 위해서인 동시에 날 위해서야. 월그. 끝을 낼려면 이런 일은 금방 헤쳐나가야 해. 그치만 걱정 끼치게 해서 미안해. 인제 무리 하지 않을께. 걱정마. "
"흑...흐흑....진짜야....?"
"응, 약속이야."
눈물을 그친 월그를 보고 그 뒤에 날 노려보는 회색 꽃들을 보았다. 날 원망하는 것이겠지.
" 인제 가볼께, 월그. 이만 가야겠어."
"벌써? 좀 더 놀다가지 그래?"
난 월그에게 웃어준 뒤 원래 세계로 돌아갔다.
시야가 아직 뿌옇다. 그러다 눈 앞에 흐릿한 물체가 보였다. 낯설지 않은 형태, 예전에 본 적이 있다. 그렇다. 저 사람은.... 그니까....
"너..설마... 여름이니?"
시야가 밝아지고 눈을 크게 떠보니 내 앞엔 그녀가 서 있었다.
" 여름이니? 그래, 여름이야! 나 기억 나? 시윤이야. 너랑 같은 초등학교 다녔던 시윤이! "
" 아아.. 시윤이...응, 오랜만이야.... 그래.. 기억 나. 잘 지냈어?"
"응! 그나저나 괜찮아? 쓰러져 있었잖아. 빈혈이니? 괜찮으면 우리 집에 가지 않을래?"
해리포터 처럼 동글한 안경을 쓰고 명랑한 목소리를 내는 그녀는 시윤이가 맞는 것 같다.
그리고 시윤이는......



"여기가 우리 집이야."
꽤나 넓은 집이였다.
"갑자기 찾아오게 되서 미안하네. 실례할께."
시윤이는 홍차와 과자를 가져와 나를 데리고 자기 방에 들어 갔다.
" 방이 조금 어지럽혀 있지? 요새 푹 빠진 소설 시리즈가 있어서 읽는다고 정리하는 걸 잊었지 뭐야, 하하하하."
하이톤의 목소리가 약간의 성질을 긁는 것 같다.
"그렇구나..."
곧바로 정적이 흘렀다. 몇 년 동안이나 안 봤으니 어색한 건 당연한 거다. 그치만 역시 낯간지러운 건 사실이다.
"저기.... 여름아....."
"응."
그녀는 갑자기 어두운 낯빛을 하고 하이톤인 목소리를 낮췄다.
" 괜찮은거야....? 지금은....? "
머리가 또다시 어지럽다.
" 정말로.... 정말로 괜찮은거야.....? "
식은 땀이 나도 웃으며 말하였다.
" 뭐가? 잘 모르겠는데? "
그녀는 나를 빤히 쳐다보더니 포니테일로 묶은 머리를 풀었다.
'보기 싫어.'
가르마를 탔던 앞머리를 원래대로 내렸다.
' 보기 싫어. 역겨워. 더 이상은...! '
마지막으로 안경을 천천히 벗었다.
그녀가 싸늘한 목소리로 말하였다. 그 때 그 모습으로.
" 괜찮은거야, 여름아.....? "
' 죽여버려. 죽여서 나와 똑같이 만들어. '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래, 시윤이는 그 때 그 사람이다. 내가 어둠에 잡아 먹혀 머릴 때 멀리서 바라보기만 하고 가버린, 날 구해주지 않은 그 사람인 거다.
" 아아아아아아악! 죽어버려! 너도 나랑 같이 잡아 먹혀버려! 어둠에 야금야금 씹혀먹어버려! 더럽고 추잡한 것! 내가.. 내가 얼마나 널! 내가 얼마나 널 증오했는지! 죽이고 죽이고 죽이고 죽이고 싶어서 미쳤던 난 널 모를거야. 모를거야!!! 죽어버려!!!!! "
저쪽 세계의 월그가 날 부르는 것 같다. 하지만 돌아가지 않아. 끝을 내야해.
" 그대로였구나... 괜찮지... 않았던거구나..... "
그녀는 고개를 푹 숙인채 말하였다.
내가 경멸스러운 눈빛으로 " 죽어버려, 죗값을 치뤄란 말야!"라고 외칠동안 그녀는 눈물을 닦더니 나에게 달려와 안아줬다.



그리고 나에게 말해주었다.
몇 년동안 그녀에게서 듣고싶었던 말. 늘 중얼거렸던 말.



" 미안해, 여름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