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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단편소설] 비쥬블랑쉬(bijou blanche)
글쓴이 장효경
비쥬블랑쉬(bijou blanche)
↑"하얀보석"이라는 프랑스어




"비쥬블랑쉬."
과외 선생님이 알려준 프랑스어 이다.
발음하면 입안에서 맑은 샘물이 통통 튀는것같다.
참 예쁜 단어이다.




과외 선생님과 나는, 각별한 사이이다.
요즘 아이들은 과외 선생님이 그냥 공부만 가르쳐주고,
서로 친하지도 않다는데, 웬일인지 나는 과외선생님과 친하다.
활발한 내 성격 덕분이랄까? (훗!)




큼, 어쨌든간, 나는 과외 선생님이 좋다.
무엇보다 젊고, 긴 웨이브 머리에, 항상 파란 렌즈를 끼고 다닌다.
선생님의 눈동자를 보면 바다 속으로 하염없이 빠지는것 같다.
과외 선생님은, 진짜, 너무, 정말 예쁘다.




"다솔아~"
앗! 선생님이 오셨다.
"선생님~~~~!!!"
"자아, 숙제는 했어?"
"에에 선생니임~~당연히 했죠!!"




"다솔아, 이거 먹고 하자!"
"우왓! 이게 뭐예요???"
"선생님이 우리 다솔이 주려고 사왔지~!"
귀여운 선생님, 마이구미를 사오셨다.
"잘먹겠습니다아~"




마이구미 몇개를 먹고 다시 수업을 했다.
수학을 공부하는데, 조금 어려웠다.
"선생님, 이거 한번만 다시 설명해주세요~"
"허, 다솔이 공부 안했지?"
째릿, 노려보는 선생님.
"에에.. 했어요!!!"




"장난이야~ 장난! 이건 이렇게 저렇게 요렇게 하는거야!"
선생님이 웃으시며 설명을 해주신다.
선생님의 설명은 귀에 쏙쏙 잘 들어온다.
"다솔아, 선생님이 얘기 하나 해줄까?"
"네!! 해주세요!"




"흐음... 별빛초등학교에, 어떤 꼬마가 입학을 했어. 엄마의 손을 잡고 말이지.
그 꼬마는 솜사탕을 유난히 좋아하는 꼬마였어. 그래서 입학식날에도 엄마한테 솜사탕을 사달라 했어.
꼬마는 엄마한테 돈을 받아서 솜사탕을 샀어. 근데 돌아오는 길에, 어떤 키가 큰 아이가 꼬마의 솜사탕을 뺏어갔어. 꼬마는 엉엉 울면서 엄마에게로 갔어.
우는 꼬마를 보고 엄마가 무슨 생각을 했겠니?"
"속상해 했겠죠?"




"그래, 맞아. 엄마는 꼬마에게 자초지종을 들었어. 엄마는 속상했지만 꼬마가 걱정되기도 하고, 그거 하나 못지킨 꼬마에 대해서 약간 화가 나기도 했어. 입학식을 마치고, 엄마는 다시 꼬마에게 솜사탕을 사줬어.
이번에 꼬마는 엄마와 함께 있어서 솜사탕을 뺏기진 않았지. 꼬마가 세월이 흘러 흘러 초등학교 3학년이 되었어. 근데 그 키 큰 아이와 한 반이 되었어. 꼬마가 어땠겠니?"
"음.. 아마 무섭기도 하고 그럴거같아요."




"그 키 큰 아이도, 꼬마도 서로를 기억하고 있었어.
1학년때 겪은 일이지만, 꼬마는 아직도 그 아이가 무서웠고, 키 큰 아이도 꼬마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진 않았어.
꼬마는 학교가 끝나고 집으로 가서 엄마에게 이 사실을 말했어. 그런데 그 말을 듣고, 엄마의 표정이 굳더니, 그만 엄마가 쓰러져버렸어.
꼬마는 안절부절 못하다가 근처에있는 엄마의 휴대폰으로 119에 신고를 했어."
"꼬마가 정말 불쌍해요...."




"병원에서 들은 대답은, 엄마가 백혈병 말기라는 소식이었어. 그때는 꼬마는 백혈병이 뭔지 몰랐어.
다솔이는 뭔지 아니?"
"네..."
"그래, 다시 이야기를 해줄게. 꼬마의 아빠는 꼬마가 태어나기 전에 돌아가셨고, 꼬마는 그저 엄마가 잠깐 아픈건줄 알았어. 하지만 꼬마네 집은 돈도 없었고, 돈을 버는건 꼬마의 엄마였기 때문에 꼬마의 엄마는 몸도, 마음도 점점 아파가기 시작했어. 꼬마의 엄마는 병원비를 감당할 수 없어서, 퇴원해서 꼬마와 남은 일생을 같이 지내기로 했어."




"그런데 꼬마는 그게 뭔지 모르니까. 엄마가 왜 빨리 가야되는지 모르니까..."
선생님은 말을 잇지 못하셨다. 선생님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잠시만 렌즈 빼야겠다.."
선생님은 몇분을 우신후, 다시 이야기를 이었다.
"엄마가 밤마다 왜 아픈지, 아파하는지, 엄마가 왜 누워만 있는지 꼬마는 몰랐어.
그러던 어느날 새벽, 엄마가 갑자기 꼬마를 깨웠어. 엄마가, 꼬마에게 하얀 보석을 주면서 말했어. 꼬마야... 이거.... 잘 간직해... 사랑해... 라고 말이지. 그런 후 엄마는 눈을 감았어.
하지만 꼬마는 엄마가 죽은건지 몰랐지..."




선생님의 눈에 또 눈물이 고였다.
"꼬마는 그저 하얀 보석이 예쁘고 좋았어. 엄마가 자는줄만 알았어. 그래서 엄마에게 이게 뭐냐고 물어볼려고, 엄마를 흔들었어.
그런데 엄마가 아무리 흔들어도 일어나지 않았어.
그제야 꼬마는 119에 전화를 했고, 의사선생님은 아무것도 모르는 꼬마에게 엄마가 죽었다는 소식을 알려줘야했어."




"그제야 꼬마의 커다란 눈에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어.
그 눈물 방울은 하얀 보석에 떨어졌어. 꼬마는 하얀 보석을 가슴에 꼭 안았어.
꼬마는 엄마의 장례식을 치르는 동안에도 하염없이 울었어.
꼬마는 친척집에 맡겨지고, 학교도 전학을 가게 되었어."




"꼬마는 또 자라고 자라서 고등학생이 되었어. 이젠 A라 부를게. 그런데, 그만 그 키 큰 아이와 같은 반이 되었어. 물론 그 아이는 A를 기억하지 못했지.
A는 그 키 큰 아이때문에 엄마가 죽은것 같았어. 그래서 계속 그 아이만 보면 눈물이 흐르고, 그 아이를 보면 피하고 싶어졌어. 밉기도 했고 말이야."
"아..."




"그러던 어느날... 그 키 큰 아이가 A에게 준비물을 빌리러 갔어. 하지만 A는 고개를 푹 숙이고 입술을 꼭 깨물고만 있었어.
키 큰 아이는 어이가 없어서 A를 한번 건드렸어.
그러자 A는 그만 엎드려서 울고 말았어. 수업을 하고 있던 담임선생님, 그 키 큰 아이, 반 친구들 모두가 당황했지."




"하지만 A는 그걸 말할 수 없었어. 말하면 또 그 슬픔이 밀려올까봐... 그래서 결국 A는 겨우겨우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교에 갔어."
"A는 지금도 대학생인가요?"
"응, 지금 대학생이야. 그리고 과외 선생님이기도 하지."
"어, 선생님도 과외 선생님인데, A도 그런가봐요!"




"후후, 그렇지. 그런데 A가 몸이 너무 아파 병원에 갔는데, 백혈병이라는 소식을 들었어.
A는 엄마가 생각났어. 그렇게 아파했던 엄마가...
A는 무서웠어. 자기도 그렇게 엄마처럼 죽을까봐... 아플까봐...
하지만 A는 말기가 아니었어. 수술을 잘 하면 고칠수도 있었어. 그래서 일상생활도 가능했고, 지금도 대학을 다니고 과외를 하고있어."
"헐..."




"그래서 A는 오늘이 수술날이야. A는 수술을 잘 마치면 나을수 있지만, 수술이 실패하면 다시는 이 세상 땅을 밟을수 없어... 이게 이야기의 끝이야."
"선생님, 왜 이렇게 슬픈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선생님은 내 말을 듣고 눈에 눈물을 흘리시더니,
주머니에서 하얀 보석을 꺼내셨다.




"선생님..!!"
그랬다. 모든것이 이해가 됬다. 선생님이 아프다 해서 과외를 안한 일도, 선생님이 과외를 하던 도중에 그냥 집으로 간것도...
"자, 이건 우리 엄마의 하얀 보석이야. 이건 다솔이가 가지고 있어. 선생님은 엄마도 없고 아빠도 없고 동생도 없고 언니도 없으니까... 선생님은 다솔이가 좋아. 정말 좋아."
"선생님.. 이거.. 제가 받으면 안되는거 같은데.."




"선생님을 진심으로 좋아해 준 사람은, 우리 다솔이야. 그리고 그 키 큰 아이는 다솔이 언니야. 미안해서 그런거고, 좋아해서 그런거고, 날 기억하라 해서 그런거니까 받아, 다솔아. 미안해.. 진작 말해주지 못해서. 이거 볼때마다 선생님 생각해. 그리고 선생님 위험한 수술 받는건 맞지만, 아직 죽는거 아니니까."
우리 언니라고? 그 아이가?? 선생님은 대체 그런 슬픔을 어떻게 안고 과외를 하신걸까...
나는 하얀 보석을 받았다. 주머니에 꼭 넣었다.




"선생님, 이제 수술하러 가야되거든... 다솔아, 선생님 수술 잘 마치면 다솔이한테 먼저 올게..."
"선생님, 사랑해요..."
나도 울었다. 정말 눈물이 없는 내가 울었다.
선생님이 문을 나섰다. 우리 언니랑 선생님이 같은 나이인건 알고 있었지만...
선생님, 사랑해요. 진짜, 정말 사랑해요.




일주일이 지났다.
지났다....
지났다고?
연락은 오지 않았다.
나한테 먼저 온다던 선생님도 오지 않았다.
그랬다. 그런거였다.
나는 알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교에 가면서, 나도 과외를 하게 되었다.
나랑 똑 닮은 아이와.
"다솜아, 선생님이 이야기 하나 해줄까?"
"네!"
나는 주머니의 보석을 꼭 쥐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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