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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소설

제목 월그 4
글쓴이 최자인
잊고 싶었던 기억을 다시 기억해냈을 때 기분을 당신은 아는가.
괴롭기 짝이없는 기억을 다시 기억해냈을 때 기분을, 당신은 정말로 아는가.
모른다면 난 말해주고 싶다. 죽고 싶은 심정을 그럼 아냐고 말이다.



" 하..하..하하... 하하하하하...너 지금 뭐 하는거야... 당장 그만 해."
"싫어, 나 때문이잖아. 나 때문에 이렇게까지 된 거잖아. 난... 난....흑...."
더럽기 짝이없다. 지금 나한테 감성팔이라도 하고 있는 건가? 웃긴다. 죽여버리고 싶다.
" 너가 질질 짜면서 나한테 감성팔이나 해봤자 달라지는 건 없어. 왜? 지금이라도 죗값을 치르고 깨끗하게 살고싶니? 포기해. 너나, 나나 영원히 더럽게 살아야 돼."
난 지금 미쳐가고 있다. 이성은 포기한지 이미 오래다. 아아, 괴로워. 옛날 기억들이 하나 하나씩 떠올라 날 광기에 사로잡히게 만든다. 무섭고 외롭고 두렵다. 아프다.
"죽여버리기 전에 이거 놔."
" 싫어.... 싫어..... 이젠.... 놓치기 싫어...... 여름아...."



이젠 정말로 놓치기 싫다는 말을 시윤이는 계속하여 반복했다.



더운 여름 날 이었다.
난 학교를 마치고 전통 과자가 맛있다는 집이 있다길래 찾아 가고 있었다.
난생 처음 가보는 길거리라 방황하고 있을 때 어느 골목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살려달라고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목소리가 나의 귀를 간지럽혀 왔다.
조금 더 걸어가 소리가 나보는 곳에 가보니 그곳엔 여름이가 있었다. 그리고 그 곁엔 모르는 오빠가 있었다. 오빠는 여름이를 잡아먹었다. 야금야금 씹어먹고 또다시 씹어먹었다. 오빠의 몸 사이로 여름이의 눈이 보였다.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눈빛이였다. 난 그 눈빛에 사로잡혀 곧바로 경찰서를 찾기 위해 달려갔다. 하지만 쉽게 찾을 수 없었다. 처음 온 동네라 어디가 어딘지 모르는 곳이였다. 주위 사람들에게 물어가보며 간신히 경찰서를 찾아냈을 땐 이미 해가 어둠에 가라 앉고 있었다. 경찰 아저씨들과 다시 그 골목에 갔을 땐 아무도 없었다. 경찰아저씨들은 정말로 본 것이 맞냐고 캐물으시고 난 거기에 맞서 대항했다.
시간이 흐르고 수색은 종료되었다. 여름이도 오빠도 어디 갔는진 아무도 몰랐다. 그렇게 사건은 굳게 잠궈졌다고 난 생각했다. 정신을 차렸을 땐 여름이는 전학가고 난 뒤였다.
난 생각한다. 내가 본 일은 확실하다는 것을. 내가 아직 모르는 진실이 있다는 것을.



" 경찰을 부르러 갔었어. 이미 돌아왔을 땐 아무도 없었어. 어디로 갔었던 거야? "
" 경찰을 찾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사실을 누가 알았을까. "
" 처음 온 동네라서 그랬어. 그땐... 난 전통과자집을 찾으러 가는 길이였어. 근데... 골목에서 널 봤고... 있는 힘을 다해 간신히 경찰서를 찾았어. 하지만 이미 늦었던 거야..."
책에서 보았다. 어떤 일에는 모르는 진실이 꼭 있기 마련이라고. 이 말, 믿어도 되는걸까.
시윤이는 천천히 팔을 내리고 침대에 풀썩 앉았다.
"난 너에게 용서를 받지 못해도 괜찮아. 날 죽여버려도 좋아. 내가 원하는 건, 너만은 깨끗해 지라는 거야. 난 영원히 더렵혀진채 죗값을 치르며 살아갈께. 그러니까... 그러니까....흑... 제발.... 흐흑.....예전의 너로 돌아와줘.....깨끗해져줘....."
월그와 똑같은 말을 한다. 이미 더러워져 버렸는데 더 이상 어떻게 깨끗해지라는 건가. 이미 시간은 흘러버렸는데 어떻게 옛날로 돌아가라는건가. 이해가 안 된다.
난 한참동안 허공을 바라봤고, 시윤이는 몸을 웅크린채 울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난걸까. 마침내 난 입을 열었다. 목구멍에서 천천히 한 글자씩 뱉었다.
" 깨끗해지라고 해도, 예전의 나로 돌아가라고 해도 난 그렇게 못 해. 난 이미 더렵혀졌고, 시간은 지나가버렸어. 난 너의 바램을 들어주지도 않을거고 용서하지도 않을거야. 지금처럼 너도 나도 더럽혀져 살아가는 거야. 내가 할 말은....그게 다야.... "
난 짐을 챙기고 일어섰다.
"만약... 그 때 내가 달려가서 그 오빠를 말렸다면.... 지금처럼 되진 않았을까... 여름아..."
난 뒤를 돌아보지 않고 중얼거렸다.
"글쎄... 그럴지도 모르지."




버스를 타고 집에 돌아왔다. 다행히 부모님은 아직 집에 안 계셨다.
여러가지 일이 있었던 탓인지 몸이 무척 피곤했다. 샤워를 하고 잠옷으로 갈아입은 뒤 잠을 청했다. 그리고 다시 나의 세게로 왔다.
" 어땠니. "
" 최악이였어... 그리고 최고였어. "
"후훗, 무슨 소린지 도통 모르겠는걸."
월그는 꽃을 만지작 거리며 수줍게 웃었다.
" 날 모른채 했던 아이를 만났고 아이와 실랑이를 버렸었어. "
"응, 최악이군. 그럼 최고는?"
" 사실 모른채 했던 게 아니고 도움을 청하러 경찰서에 간 거였대. 하지만 돌아왔을 땐 나도 오빠도 그 곳에 없었대. "
" 음... 그것도 최악 아닌 최고네. "
난 그녀 옆에 앉아 몸을 움츠렸다.
" 내가 좋아하는 작가 분의 책에서 봤어. 어떤 일에는 모르는 진실이 꼭 있기 마련이래. 이 말 믿어도 되는걸까?"
"너가 직접 그런 일을 겪었는데 믿을 만 하지 않아?후훗."
"믿기싫어! 그렇게 되면... 그 진실을 몰랐던 나는.. 더 더러워 지는거고, 그 아인 떳떳하게 깨끗해지잖아. 나만... 그렇게 나만 더러워지는 건 싫어... 싫단 말야.....흑...."
월그는 내 어깨에 살포시 기댔다. 이 아인 정말로 가볍다는 걸 슬며시 깨달았다.
" 내가 널 처음 만났을 때 넌 어떻게 생겼었나면.... 음... 솔직히 무서웠어. 온 몸이 검은색으로 얼룩졌었거든. 난 회색인데 쟤는 왜 검은색인걸까라고 생각했었어. 하지만 지금의 너는 나와 같이 회색 빛이 도지. 그리고 난 깨달았어. 우리가 왜 이 세게에서 검은색 혹은 회색을 가지고 있었는지 말야. 그것은 더러움이야. 자기 마음속의 더러움, 추잡함 말이야. 그러면 다시 돌아가보자. 예전의 너는 검은색이였지만 지금은 회색이다. 이것이 무엇을 뜻하는걸까?"
그렇다. 난 그 사실을 잊고 있었다. 확실히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아픔은 아프다는 사실에 변함이 없지만 예전보단 아주 조금 나아졌다. 그래서 내가 더럽다는 인식도 어렴풋이 잊고 있었다. 월그의 말처럼 난 조금이나마 깨끗해진 것이다.
난 한참동안 월그의 곁에서 여러가지 생각을 했다. 그 때 그 일로 부터 지금까지의 일까지.
"월그."
"응?"
" 오늘 우리 하루 종일 놀아볼까? "
" 진짜? 정말로 그럴꺼야? 나야 좋지! 지금 당장 놀자! "
"응, 많이 많이 노는거야. 잊지 못할 만큼..."



난 마지막이 될 월그의 모습을 망막에 새기고 또 새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