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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소설

제목 스웨터
글쓴이 김률희
어느 숲 속에 나무로 만든 주택이 크게 어우러진 나무들 사이에 있었는데 그 집 안에는 한 할머니가 혼자 살고 계셨다. 그 할머니는 하루 동안 지내는 시간 중에 스웨터를 만드는 시간이 대부분이었다. 스웨터를 만드실 때에는 누구보다도 활짝 웃는 얼굴이셨고 내가 스웨터 만드는 것에 관심을 가지거나 스웨터에 관한 얘기를 하면 좋아하셨다.
처음엔 엄마 때문에 이 집에 오게 되었다. 이사 온 지 얼마 되지 않았던 가을이었을 때 이 곳을 산책하다 혼자 사시는 할머니를 보시고는 엄마가 따뜻한 당근스프를 만들어 주셨었다. 할머니는 말을 한마디도 하지 않으셨지만 웃는 얼굴로 고개를 꾸벅 숙이며 고맙다는 뜻의 인사를 하셨다. 말을 못하실 수도 있다고 생각하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이 마을은 먼 시골이라 어린 애는 나밖에 없어서 심심할 줄 알았는데 할머니가 말은 하지 못하시더라도 내 애기를 들어주시고 집에서 가져온 동화책을 읽어주면 눈을 감고 귀 기울여 주셨다. 그런 나를 위해 보답으로 직접 짠 스웨터를 주시겠다고 하셨다. 할머니가 지금도 짜고 계신 아직 완성 되지 않은 스웨터를 보고 있자 나를 위해 직접 짜주신다고 생각하니 얼른 입어보고 싶었다. 흰 스웨터는 겨울과 아주 잘 어울렸다.
집에 와서 엄마에게 이 얘기를 했더니 좋겠다고 하시면서 널 아껴주신다며 더 잘해드리라고 하셨다. 나도 그래야겠다고 생각했다.
오늘은 할머니가 분홍 리본 머리띠를 내 머리에 둘러주셨다. 예쁜 머리띠가 마음에 들었다.
"고맙습니다, 할머니! 이 머리띠를 줘도 되는 거예요?"
할머니는 고개를 끄덕이시며 미소를 지으셨다.
할머니는 의자에서 일어나시고 화장실에 들르셨다. 화장실을 들른 틈을 타 할머니의 방을 구경하기 위해 발소리가 들리지 않게 몰래 방 문을 열었다. 할머니 방이라면 뭔가 특별한 게 있을 줄 알았는데 우리 엄마 아빠 방처럼 평범하게 침대가 있었고 맞은 편에는 흰 3단서랍장이 있는 것도 비슷했다. 우리 집 서랍장이랑 비슷하게 생긴거라면 속옷, 양말, 티셔츠, 바지가 들어있겠지. 할머니는 치마를 입으시니까 긴 치마도 있을 것 같았다. 서랍장 위에는 액자가 있었다. 할머니 집은 보통 집과는 달리 사진이 액자에 걸려 있지 않아 사진 찍을 때는 어떤 모습인지 알 수가 없었다. 사진 찍을 때도 웃으실까, 눈을 깜밖여 모로고 눈을 감고 찍으셨을까. 예쁜 모습으로 찍지 못해서 창피하기 때문에 사진을 큰 액자에 걸어놓지 않으신 걸까.
흰 3단서랍장과 어울리는 화려한 연분홍 틀에 하트 모양이 달린 예쁜 액자 속에는 어떤 사진을 담았을까.
놓여져 있는 액자를 들고 사진을 보는데 할머니가 아니라 내 나이 쯤 되는 초등학생 여자 아이가 긴 검은 머리카락에 솔방울만한 큰 눈동자가 예쁜 아이였다. 그런데 순간 액자를 떨어트리고 말았다. 깨진 유리를 손이르 주워 담으려고 했을 때 할머니가 오신 거였다. 액자 유리를 깨트려서 많이 화가 나신 것 같았다.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해요... 할머니...."
할머니는 빗자루로 쓰레받기에 유리를 쓸어 담으셨다. 유리를 버리려 가셨다. 놀라 모르고 깨트릴 수 밖에 없었다. 액자에 있던 사진에 있는 여자 아이는 나랑 비슷했다. 똑같다고 해도 못알아볼 정도로. 게다가 사진 속의 여자 아이는 머리에 쓴 연분홍 리본 머리띠는 지금 내가 쓰고 있는 것과 같았고 옷은 흰 스웨터를 입고 있었다. 그녀의 뒤에는 어떤 사람의 형체가 같이 찍혀 있었던 것이었다. 할머니 어렸을 때의 사진일까? 손녀일 수도 있겠다.
할머니가 다시 방으로 오셨다. 내게 이 한 마디 말을 하셨다.
"스웨터 다짰다."
다 짠 스웨터를 가지고 펄럭이며 보여주시고 내게 건내셨다.
할머니가 말을 할 줄 아셨다니.... 말 하실 줄 알았으면서 왜 이태껏 내게 말 한 마디도 하지 않으셨던 걸까.
"할머니! 왜 말을 안하셨어요! 제다 말동무가 되어드릴 수고 있고 노래도 가르쳐 줄 수 있었는데...."
할머니는 몸짓으로 내게 여기서 스웨터를 한 번 입어보라고 하셨다. 스웨터가 딱 안맞으면 짜주신 게 헛고생 하신 거나 마찬가지일텐데 입어 보고 맞지 않으면 억지로라도 끼워 넣어야겠다. 티셔츠를 입은 채로 스웨터를 입었다. 너무 딱 맞아서 할머니께서 싸이즈도 알고 만드신 것 같아 신기했다.
"할머니! 저 어때요? 잘 어울리나요?"
할머니가 웃으시며 고개를 끄덕여주실 줄 알았는데 갑자기 주저 앉으시며 오열하는 모습을 보고 당황했다. 일으켜 세워드릴려고 반만 무릎을 꿇고 앉았는데 할머니가 날 꽉 껴 안으셨다. 놓아주시지 않고 몇 십년만에 본 가족인 것처럼 오랫동안 시간이 길게 느껴질 정도로 안으셨다.
"은미야.... 은미야... 여기 있었구나.... 은미야....."
'은미라니 이게 뭔 소리지? 내가 잘못 들은 건가... 내 이름은 이나인데.. 하이나...'
은미야... 할미가 얼마나 보고 싶었는지 아니...? 널 위해 스위터를 더 떴단다. 여길 보렴."
할머니가 방으로 들어가서 서랍장을 여셨다. 서랍장 안에는 흰 스웨터만 가득 쌓여 있었다. 봄부터 겨울까지 스웨터만 짜셨단 말인가. 이 집에서 나가는 게 좋을 거 같단 생각이 들어 확실히 내가 은미란 애가 아니란 걸 말해야 했다.
"할머니! 전 은미가 아니예요! 은미가 아니란 말이예요! 그리너까 이 스웨터를 가질 수 없어요."
할머니가 보는 앞에서 스웨터를 벗어 던지고 그대로 나가버렸다. 날 은미란 애로 생각하고 있었다니 내가 바보가 되어버린 것 같았다. 할머니에게 동화책을 읽어주고 같이 당근스프를 먹고 했던 추억들은 다 무엇이란 말인가.
난 할머니를 원망하며 엄마한테 다 이 사실을 말해야겠다고 생각하며 집으로 왔다.
"다녀왔습니다."
문 열고 들어가자 엄마는 없고 아빠 혼자 소파에 앉아 신문을 읽고 계셨다.
"아빠! 엄마는? 엄마 어딨어?"
"엄마? 방금 할머니 댁에 갔는데."
엄마를 당장 할머니네 집에 들어가지 못하게 해야 했다. 다시 할머니네로 갔다. 할머니네이 다 오기도 전에 엄마가 헐레벌떡 뛰어나오더니 내가 앞에 있다는 걸 보시고는 뛰던 다리가 풀리나 본지 헉헉 숨을 내뱉으며 말했다.
"이나야, 할머니 집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얘기해주겠니?"
뭔가를 알아차린 듯한 엄마가 내 눈을 지그시 바라보아 내가 얘기해주길 바라고 있는 듯 했다. 오늘 할머니 집에서 있던 일을 다 털어놓았다. 그랬더니 엄마가 이제 다시는 할머니 집에 가지 말라고 하셨다. 왜냐고 물어도 대답을 해주지 않았다. 이후 할머니 집에 가지 않고 집 안에서만 놀아야 했다. 밤이 되서 침대에 누워 자려고 했는데 엄마 아빠가 켜져 있는 주방에서 하는 얘기를 듣고 말았다.
할머니에게 딸이 하나 있었는데 나랑 나이가 비슷하다고 했다. 시내로 내려가 장을 봐야한다며 딸을 집에 놔두고 간 거다. 장 보고 왔을 때는 이미 딸이 죽어 있었다고 한다. 도둑이 할머니의 악세사리 중 비싼 것들로만 훔쳐 달아다녀 했는데 딸이 방에서 나오다 도둑과 눈이 마주쳤다고 한다. 증인을 없애기 위해 딸을 죽인 거라고 한다. 딸이 그 때 죽은 당시 분홍색 머리띠와 흰 스웨터를 입고 있었다고 하던데 할머니는 내가 그 여자 아이와 닮아서 착각했던 것일까. 그 여자 아이를 그리워하고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