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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소설

제목 케이티의 전쟁-2
글쓴이 최효서
1편에 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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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까지 케이티 가족은 단 한 사람도 보지 못했으며, 집에서 10분 이상 걸리는 곳까지 나가지도 않았다. 그러나 4월의 첫 주가 되자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처음에 케이티는 꿈을 꾸고 있는 줄 알았다. 누군가 창문을 똑똑 두르렸기 때문이다. 케이티는 봄을 알리는 첫 봄비가 내리는 것이려니 생각했다. 그러나 똑똑 소리는 다시 들려왔다. 그녀는 이상하게 여기며 창문으로 달려갔다. 놀랍게도 턱수염이 덥수룩한 얼굴이 그녀를 바라보며 웃고있었다. 케이티는 아버지에게 손짓을 했고, 스티브는 놀란 얼굴로 잠시 일을 멈추고 다가와 문을 열었다. 웬 노인이 집 앞에 서 있었다.
"나는 이웃에 살고 있는 바헬 토른트입니다."
"스티브 레널드입니다. 반갑습니다."
스티브는 토른트라는 이름을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실례지만 어디선가 들어본 이름 같은데요."
"난 선생을 잘 알아요. 평소에 당신의 연구에 감탄하고 있었지요. 이웃 사람으로서 간단하게 인사차 들른 겁니다."
"이웃이요?" 스티브는 케이티와 눈을 마주쳤다. 플루처럼 외딴 곳에 이웃이라니. 이해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여기서 해지는 쪽으로 세 시간 정도 걸어가다, 첫 번째로 나오는 집이 우리 집이라오." 그가 설명했다.
그리고는 거실 안으로 한 발을 들여놓더니 메고 온 가방에서 갈색의 종이 꾸러미를 꺼냈다. "난 양을 치는 조카와 함께 살고 있어요. 양고기를 조금 가져왔는데.." 어머니 캐시가 다가와서 꾸러미를 건네받았다. 양고기로 말할 것 같으면 상류층에서는 맘만 먹으면 먹을 수 있지만, 고기를 못 본지 오래 된 케이티 가족에게는 굉장히 반가운 음식이었다.
"어머. 토른트 씨! 이렇게 귀한 선물을 받아도 될지 모르겠네요."
"받으세요, 부인. 이웃끼리 당연히 나누면서 지내야지요."
"들어오셔서 함께 식사라도 하고 가세요. 오신 길이 멀어서 피곤하시기도 하실 거구요."
"고맙습니다! 하지만 집으로 가야해요. 이웃에게 하루라도 빨리 인사를 하고 싶어서 온 겁니다. 관절염 때문에 꼼짝을 못해서...미안합니다. 이웃이면서 지금까지 인사도 못해서."
그는 세 사람의 손을 일일이 붙잡고 악수를 한 다음 돌아갔다.
플루에서 맞이한 아름다운 계절은 이 뜻하지 않은 방문으로 시작되었다. 플루에서 아름다운 계절이라고 해봤자, 다른 계절보다 약간 덜 습하고, 약간 덜 춥고, 약간 덜 어두운 계절에 불과했다. 옷들이 여전히 눅눅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아무튼 봄이 되자 케이티는 어려운책 읽기를 중단했다 그리고 플루의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는 야심찬 탐험을 시작했다.
그녀는 아침마다 붉은 빛깔의 당근껍질 주스를 한 잔 마시고 집을 떠났다가, 밤이 되어서야 흠뻑 젖고 더러운 얼굴에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하고서 돌아왔다. 매우 피곤해 보였지만 그녀의 눈은 그 어느 때보다도 반짝였다.
케이티는 우선 토른트 씨 집을 향해 여행을 했다. 그녀는 다섯 번이나 길을 잃고 헤매고 나서 세 마리의 거대한 양들을 만났다. 양들은 마침 집 안에서 코를 골며 자고 있는 중이었다. 케이티는 조카가 양을 친다는 바헬 토른트의 말을 떠올리며, 목적지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짐작했다. 마침내 토른트 씨의 집에 도착하니 한 청년이 문턱에 앉아있었다.
하지만 그는 케이티를 보더니 일어나서 소리 없이 사라졌다. 토른느가 집에서 나와 그녀에게 미소를 보내며 말했다.
"안녕, 꼬마 아가씨! 어떻게 여기까지 찾아왔니?"
아까 본 청년이 토른트 뒤에서 다시 나타났다. 토른트가 소개했다.
"이 청년은 내 조카, 슬럭이란다. 여긴 슬럭의 집이지. 친절하게도 늙은 삼촌을 몇 년 동안 돌봐주고 있단다. 슬럭, 소개하마. 이 소녀는..."
"케이티라고 해요. 반갑습니다." 그녀가 손을 내밀며 말했다.
"케이티 레널드란다. 내가 전에 말했지? 케이티는 유명한 학자인 스티브 레널드의 딸이다."
토른트가 말했다. 슬럭은 작은 소리로 웅얼거리더니 곧 집으로 들어갔다.
"슬럭은 벙어리란다. 10년 째 애벌레를 치고 있지, 26살이란다."
케이티는 그가 20살 정도 되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케이티는 배낭을 열고 비스킷을 꺼내 토른트와 나눠먹었다. 슬럭이 문으로 머리를 몇 번 내밀고 방문객을 빤히 쳐다보았다.
그러나 케이티가 그에게 다정한 손짓을 하면 마치 바람처럼 쏘옥 사라져 버렸다.
"젊은 친구, 몇 살이지?"
"열 살 이에요."
"음..꼬마 엘과 동갑이군."
"꼬마.. 누구라고요?"
"엘! 경계선 부근에 살지."
"경계선이라뇨?"
"미란가 족과의 경계선. 네 집에서 네 다섯시간 정도 떨어진 곳일꺼야."
케이티는 그날 밤 침대에 누워서 모닥불이 탁탁 튀는 소리와 어머니의 뜨개질바늘이 부딪치는 소리를 들으며 미란가 족의 신비한 실루엣이 커튼에 나타나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꼬마 엘이라는 이름을 떠올렸다. 외따로 떨어져 사는 외로운 10살짜리 소녀가 고작 4시간 거리에 자기 또래의 아이가 살고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케이티를 만나기 위해 무슨 짓이라도 하지 않을까!
그것이 바로 사랑의 마법이었다. 모든 아이들이 알고, 모든 연인들이 알고 있는 것.
그러나 그 멋진 날이 오기까지는 무려 한 달이라는 긴 시간이 지나야 했다,

그 날 솔직히 말해서 케이티는 길을 잃었다. 매일 경험하듯 잠깐 길을 잃고 헤맨 정도가 아니었다. 케이티는 5시간 정도를 헤맨 끝에 땀에 흠뻑 젖고 숨을 헐떡거리며 걸음을 멈추었다. 이제 나무의 형태도 구별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이미 몇시간 전에 이런 상황을 검토했어야 했다. 케이티가 처한 상황은 썩 좋지 않았다. 좀 있으면 해가 질꺼고, 부모님은 그녀가 어디에 있는지도 알지 못했다. 심지어 아버지 스티브는 집에서 3미터만 나와도 물웅덩이나 나무구멍 속으로 빠지는 사람이었다. 누군가 찾아와 주길 바란다는 것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할 일이었다.
"이제 난 죽었어."
넓은 세상에서 혼자가 된 케이티가 중얼거렸다.
====================3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