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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소설

제목 진실, 그 모든 것 1
글쓴이 최자인
난 도혁이와 결혼을 하여 딸 아이를 하나 가졌으며, 도혁이는 회사에 나가서 일을 하고 나는 집에서 아이를 돌보며 집안 살림을 하였다.
어느 날, 도혁이와 나는 돈 문제로 싸우게 되었는데 그가 던진 물건에 잘못 맞았는지 나는 쓰러졌고 지금, 또 그 아이와 마주보고 있다. 나랑 똑같이 생긴 그녀.


"재밌었니, 경연아?"
"응, 그와 결혼도 했어. 아이도 가졌고 말야."
"넌 이로써 망상 익스프레스를 다 마쳤어. 인제 원래 세상으로 가야 해."
순간 머리가 멍해진다. 간신히 도혁이와 결혼을 했는데. 이게 무슨 말인가.
" 잠깐! 끝이라니! 그게 무슨 말이야! 힘들게 도혁이와 결혼까지 했는데!"
내가 울고불고 과음을 지르자 그녀는 징그럽다듯이 날 쳐다보더니 말을 이었다.
"언제까지 망상에만 매달리고 있을꺼야? 너가 있을 곳은 -"
"쳐..."
"뭐?"
"닥쳐...닥치라고....! 너가... 너가 나에 대해 뭘 알아? 내가 있어야 할 곳? 하하하하하하하-."
요란하게 웃은 뒤 동공이 작아지도록 눈을 크게 뜨며 입을 열고 말을 뱉는다.
"내가 애초에 있어야 할 곳은 없었어. 단지 내가 이 곳에 있는 이유는 내가 있고싶어서야. 여기 말곤 가고 싶은 데란 아무도 없어. 난 그저 내가 사는 이 세계에서 행복을 추구하며 도혁이와 즐겁게 살아가면 되는거야. 그래, 너무나도 간단하잖아? 너는 그냥 평소에 하던대로 나에게 즐거운 에피소드만 요리해서 넘기면 되는거야. "


그녀는 손으로 머리카락을 빙빙 돌리며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왜 사냐듯이 날 보았다.
"정말로 가여워. 무지 무지 가여워. 안아주고 싶을 만큼 가여워. 이렇게나 가여웠다니-.."
그녀는 나에게로 다가와 내 무릎을 쳤고 내가 쓰러지자 발 끝으로 내 턱을 들더니 얼굴을 들이내밀었다.
"가엽다는 건 알고있었다만 이렇게 까지 가여울 줄 몰랐어. 내가 너무 얕잡아 봤군. "
"추억 살리기 익스프레스라 생각해"
"퍽-"
아, 이번엔 또 뭘로 맞은걸까. 도혁이에게 접시 맞은 곳을 한 번 더 후려치더니 나는 또 다시 쓰러졌다.


" 다녀오겠습니다-. "
문을 닫고 바람에 교복을 휘날리며 등교를 한다.
오늘은 중학교 입학식, 부모님은 아마 모르실 거다. 내가 얘기를 안 했기에 당연한 일이겠지만.
중학교에 오니 각자 나온 초등학교 출신이 조금씩 달랐다.
나, 친구들과 잘 지낼 수 있을까.
창가에 비친 내 모습을 보니 넥타이가 삐뚤어져 있었다.
내 마음도 이미 넥타이처럼 조금씩 삐뚤어져가고 있었다.


중학교에 입학한지 어느덧 4달이 지나고, 나는 반장이 되었다.
선거에 나가지 않았지만 아무도 나가지 않기에 선생님이 날 뽑으셨다.
나, 조금은 눈에 띤 걸지도. 이런 생각에 가슴이 부풀어 올랐다. 기뻤다.
하지만 그건 내 착각이였다.
" 얘들아, 선생님이 한문 수행평가 이번 주 까지 내라고 말을 했잖니. 왜 않 내는 거야?
선생님이 않 보이면 반장한테 내라 했잖니-."
선생님이 한숨 섞인 잔소리를 하자 아이들이 웅성거리며 말을 하였다.
그리고 그 말들은 내 심장을 콕콕 찔러댔다.
"에-? 선생님. 우리 반에 반장이 있었나요? 전 누군지도 몰라서 못 냈는데..."
"저두요! 저희 반 반장이 누군지 기억이 잘 않 나서... 아니, 우리 뽑았었던가?"
"그니깐 말야, 뽑은 기억 조차도 흐릿한데-."
"저희 반 반장 지금이라도 뽑는게 어때요?"
선생님은 안경을 다시 쓰시고는 말씀을 계속 하셨고 그 말이 독이 되어 내 몸 안에 있는 혈관을 타 마비시키는 것 같았다.
"아차차, 우리 반에 아직 반장을 않 뽑았었지?"
공기가 된 기분이였다. 싸늘하고도 냉혈적인 공기.


집으로 가면 이 공기, 이 분위기가 그대로 있다.
"다녀왔습니다-."
아무도 반겨주지 않는 집.
분명히 엄마와 아빠는 계시지만 말 소리 하나 없이 조용하다. 엄마와 아빠 구두가 신발장에 없었다면 부모님이 계신 것 조차 모를정도로 집 안은 고요하다.
무엇이 슬프냐고 구지 묻는다면, 이런 정적이 나에게 너무나 익숙하다는 것. 아무도 반겨주지 않는 게 당연하게 느껴지는 것.
엄마는 그저 열 번도 넘게 본 잡지를 천천히 보고 있고, 아빠는 컴퓨터를 하고 있을 뿐이다.
방에 들어가 옷을 갈아입고 잠자리에 든다.
그리고 눈물을 한 방울 두방울 흐르며 작은 목소리로 속삭인다.
" 내일은 제발 달라지길-."


이런 공기 같은 생활을 보낸지 3년이 다되갈 쯤, 중학교 3학년인 내가 자주 가는 곳은 도서관.
어슬렁 어슬렁 돌아다니다가 우연히 발견한 곳.
인적이 드물기에 도서관 안에도 사람이 적다.
난 여기서 책 속의 세계에 푹 빠진다. 공기란 존재가 잊혀질 만큼 빠진다.
여기서 읽은 책들 중에서, 난 연애 소설이 제일 좋고 그 다음으론 공상과학 이라든지 청춘 소설이 좋다. 내 취향을 완전히 저격했달까. 헤드 샷 하나 맞은 느낌이다.
오늘 읽은 책은 매일 마다 멸망하는 지구를 구하는 한 소녀의 이야기다. 마지막에 소녀는 죽음을 맞이하게 되고 지구는 평화로워 진다. 아아, 정말로 멋진 이야기다. 날 희생해 모든 사람들을 구하다니. 분명히 지구에 사는 사람들은 그 소녀를 위해 눈물을 흘리고 기도를 하며 매일 같이 그녀를 생각하고 느낄 것이다. 정말로 부럽다. 많은 이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니. 나에겐 어림도 없는 얘기다.
한 가지 더 말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난 여기 사서 분과 조금, 아주 조금 친하다.
자주 와서 얼굴을 보니 도란도란 이야기 하는 정도 사이다.
내가 주로 하는 얘기는 내 일상생활에 대한 애기다. 내가 마지막으로 급식을 받을 차례일 때, 이미 당번들은 정리를 하고 있었던 일. 수행평가를 검사하는데 선생님이 날 보지 못하시고 지나친 일. 시험을 치는데 시험지가 않 와서 내가 직접 가져 간 일. 좀 있음 열릴 체육대회 행사에서 각자 맡을 업무를 정하는 데 나에게는 아무 담당이 없는 일.
오늘은 또 가다가 지나가는 여학생 발에 걸려 넘어졌는데 여자아이들은 주위를 두리번 거릴 뿐 가던 길을 마져 걸어갔다.
사서는 내 얘기를 조용히 들어주시고 아무 얘기를 하지 않는다. 난 그런 점이 좋다. 내 얘기를 과묵히 들어주는 점. 정말로 자상한 분이신 것 같다.
하여튼 책을 빌리러 사서 분께 갔는데 그가 먼저 입을 열어 얘기를 하였다.
"넌 내가 봐도 정말 존재감이 없는 아이야. 솔직히 얘기하자면 난 니가 나에게 책을 빌리러 올 때 빼곤 니가 여기에 있는지도 잘 모르겠어. 그만큼 그래. 주위에게 영향 하나 주지 않는 사람. 너도 그런 니가 싫지?"
고개를 끄덕인다.
" 현실을 도피하고 싶을꺼야. 나는 왜 살까. 아무런 영향도 못 끼치는 난 살 가치가 있을까.
차라리 죽는 게 훨씬 더 낮지 않을까. 아니, 내가 죽어도 아무도 몰라주겠지. 내가 아얘 살고 있다는 걸 모르는게 아닐까. 난 그냥 유유히 사라지는 것 밖에 못 할까. 난-"
"그만...그만......그만해 주세요..... 흑......"
눈물이 나온다. 그가 심하게 말해서 우는 게 아니다. 단지, 그의 말이 너무나도 옳다는게 슬프다. 틀린 점 하나 없다는게 너무나도 아프고 짜릿하다.
사서는 처음으로 미소를 지은 뒤 나에게 얘기한다.
"그러니 현실 대신 너만의 세계에 사는게 어떨까, 경연아."
그의 말이 도서관 전체에 울려퍼진다. 이 공간엔 지금 그와 나 밖에 없다. 그런 자리에서 그가 내뱉은 말이 내 머릿속에 맴돌고 자리를 잡는다. 내 세계, 나의 세계, 나만의 세계, 그건....


"망상 속에서 자유롭게 사는거야, 현실을 도피하는거야. 행복을 추구하는거야."

이것은 그와 내가 마지막으로 나눈 대화.
마지막으로 내가 현실에 있었을 때 나눈 대화.
이것으로 난 현실로부터등을 돌리고 망상의 세계에 발을 뻗었다.
마침내 지금의 내가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