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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언어가 삶이 될 때
글쓴이 이명희


이 책의 제목만 보고 선택한 이유는 언어적 소통을 잘하기 위한 스킬 비슷한 이야기를 할 것 같았지만, 전혀 다르게 외국어를 배우는 초보자를 응원하고 도와주는 조언서 같은 에세이다. 

외국어를 배우는 목적은 비슷하겠지만 학창시절 교과목으로 성적을 위해 본격적으로 접하는 환경에서 자란 나는 졸업 후에 일상생활에서 입 벙긋 못하고 초급 실력도 안된다. 영어도 일본어도 그렇다.


작가 김미소는 다문화가정에서 자라고 그 환경의 덕을 본 것은 아니지만 영어와 일본어에 능숙하여 일본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교수이다. 많은 것이 그렇지만 특히 외국어 배우기를 좋아한다는 것이 나와 다르다. 그렇지만 유창하게 잘하고 싶은 마음은 같다. 그런데 그녀와 나는 왜 이렇게 전혀 다르게 되었을까?

책을 다 읽고 나니 목적이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외국어를 잘해야겠다는 소망은 있으나 왜 잘해야하는지 뚜렷한 목적이 없다. 왜 그럴까? 한국에서 태어나 떠나서 살은 경험이 없으니 불편함과 필요성이 없었던 것이다. 다만, 부끄러움이 있을 뿐이다. 국어에 대해서도 제대로 모르면서 영어를 해낸다는 것은 포기해도 무방한 장벽 같은 것이었다. 그런데 나이가 들어 갈수록 영어는 꼭! 할 줄 알아야 하는 생필품 같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성인이 제2언어를 통해 만들어가는 세계는 아이의 세계만큼 친절하고 말랑말랑하지 않다. 성인이 될수록 언어를 배우는 게 힘들어지는데, 단순히 발음을 잘할 수 없거나 문법에 능숙하지 않은 게 문제는 아니다. 성인은 이미 모국어로 구축해 놓은 정체성과 사회관계망이 단단하기 때문에 그 벽을 깨고 제2언어로 새로운 세계를 구축하는 게 큰 도전이 된다. -P34


나는 모국어 세계라는 곳에서 편안하게 살고 있었던 것이다.


작가가 교수가 되고 가르치면서 경험했던 에피소드들도 있다. 아이들에게 글쓰기를 가르치면서 주눅들었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쓰고 싶은 이야기는 많았지만, 이야기가 정돈이 되지 않아서 중구난방이 되고는 했다. 한번은 함께 글을 쓰고 있던 교수님께서 “미소야, 너의 문제는 영어가 제2언어라서가 아니야. 네 글쓰기에 대해 코멘트를 해서 미안하지만, 너의 생각을 더 간결하고 명료하게 제시해야 해”라고 말하셨다. 그 이후엔 혼자서 글쓰기를 붙들고 끙끙대는 습관을 버리고, 글더미를 챙겨 들고 학교의 글쓰기 센터에 가거나 친구들끼리 글쓰기 모임을 만들어서 초고부터 수정에 수정을 거듭하는 데 노력을 쏟았다. -P48


동기부여를 위해서는 주변 사람들과 함께 공부하며 처참한 자신의 실력부터 드러내야 실력도 올라가는 것이다. 내가 겪은 불안함, 불편함, 그 느낌이 자신의 성장점이 될 것이라고 한다.


언어와 문화는 떨어질 수 없다. 영어 교실은 좋게 말하면 다문화의 광장이었지만, 달리 말하면 다문화의 격전지였다. 학생과 교사가 갖고 오는 문화, 학교 또는 학원의 문화, 교재가 담고 있는 문화와 현지의 문화가 모두 모양을 달리한 채 한 교실에서 둥둥 떠다녔다. -P48


서로 다른 문화를 갖고 있는 언어를 이해와 관용으로 넓혀 갔다면 나의 세계도 더 넓어졌을 것이다.


영어 말하기라는 여정을 시작할 때는 이 두 가지를 꼭 기억하고 출발했으면 좋겠다. 언어는 대상이 아니라 매개체라는 것, 이제 막 태어나는 내 외국어 자아에게 친절해지는 것. 언어는 스파르타로 정복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나와 새로운 세계 사이에서 관계를 이어주는 매개체다. 내 말랑말랑한 영어 자아는 채찍질이 필요한 게 아니라 따스한 양육이 필요하다. -P229


이쯤되면 자아비판은 멈추고 자신에게 자양분을 공급해주어야 한다는  측은지심이 들게 된다. 출퇴근 시간동안 스트레스로 뒤섞인 뇌를 쉐도우 학습으로  채워 시선을 돌려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먼훗날일지라도 언어 실력이 성장해 있을 것이다.


곧 반백살이 되는 지금 굳이 언어전공자가 될 욕심은 없다. 하지만 목적없이 힘들게 반복적인 삶이 진절머리가 날 정도로 지쳤고 새로운 자극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번 기회에 언어가 삶이 되도록 용기 내어 보는 것도 특효가 될 것이다.


이 도서는 (사)한국독서문화재단의 독서문화사업으로 지원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