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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글쓴이 이민정

[그저 놀라운 책이라고 말할 수밖에]


논픽션이라면 사회과학과 인문학을 벗어나지 않다가 오랜만에 도전한 자연과학 도서다. 책 앞부분에 ‘올해의 책’이라고 평하는 수많은 추천사들을 넘기며 뼛속까지 문과 인간인 내 이력을 극복하고 이 책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지 적잖이 걱정스러웠다. 그리고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책은 나에게도 단연 올해의 책이 될 것 같다. 그리고 혹시 이 책을 읽을 거라면 다음 문단부터는 읽지 않길 바란다. 이 책은 반전을 포함하고 있고, 줄거리를 모르고 읽어야 더 재밌다. 


 (스포일러 포함) 


이 책은 한번도 보지 못한 전개로 읽는 내내 글쓴이의 마음을 궁금하게 했다. 과학 저널리스트인 저자 룰루 밀러는 여러 악재가 겹치며 방황하는 가운데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라는 인물에 대해 알아가게 된다. 얼핏 보면 이 책은 자신에게 닥쳐오는 온갖 역경 속에서도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가는 역사적 인물에 대한 전기 같다. 전진하는 힘을 잃은 글쓴이가 새로운 롤모델로 삼기에 딱 알맞은 사람이다. 하지만 그의 발자취를 좇아갈수록 저자가 닮고 싶어했던 그의 추진력이 다른 생명을 앗아가고, 자신의 문제를 덮어버리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이 책의 방향은 달라지기 시작한다. 


분류학자였던 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어려서부터 별과 들꽃을 사랑했고 학자가 되어 물고기들에게 이름을 붙여주어 존재를 드러나게 했지만, 언제부턴가 물고기들을 잡기 위해 웅덩이에 독을 풀고 있었다. 그는 생명체들에게 위계가 있다고 믿었고, 인간이 그 사다리의 가장 위에 있다는 신념을 지키기 위해 우생학자가 되었다. 더 나은 단계로 진화하기 위해서는 ‘부적합’한 사람들에게서 재생산 권리를 빼앗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저자는 우생학에 의해 불임시술을 당했던 장애인 시설의 생존자 애나를 만나고, 그가 어떻게 그 이후 살아갈 수 있었는지 이야기를 듣는다. 그리고 조던의 사다리 법칙이 아니라 애나의 민들레 법칙이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임을 깨닫는다. 이름 붙이지 않아도 생명은 존재하고, 대단한 존재가 아니라 하더라도 누군가에게 필요하며 서로 서로 돌보며 살아가면 된다는 것이다. 


사실 이 교훈은 크게 특별하지 않다. 다른 책에서도 많이 읽어본 말이다. 그러나 그 깨달음을 알기까지 저자가 알아낸 데이비드 스타 조던에 대한 방대한 자료들과 진실을 찾아가는 긴 여정 자체가 눈을 뗄 수 없었고 다음 이야기를 궁금하게 했다. 객관적인 증거들을 가지고 과학적으로 법칙을 증명해가는 과정, 그리고 그 결과가 철학적이라는 것까지도 흥미로웠다. 


에필로그의 저자처럼 나도 내가 정해 두었던 질서를 포기하고 가장 비참하게 떨어져 나왔던 순간 상상하지도 못했던 누군가를 만났다. 지금 내 모습이 내가 원했던 삶은 아니지만 그 어느때보다 행복을 느끼면서 살고 있다. 지금도 나를 편안하게 해주었던 것이 잘못된 것임을 알 때, 그것을 포기해야 하는 순간이 올 때가 종종 있다. 어떤 것은 아는 즉시 포기할 수 있었지만, 다른 것은 애써 외면하고 있다. 포기는 괴롭지만 자유를 줄 것임을 알고 있다. 가까운 날에 이 책을 다시 한 번 읽어야겠다. 


*이 도서는 (사)한국독서문화재단의 독서문화사업으로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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