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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어느 늙은 아들의 효도
작성자 김영우 작성일 2003-05-07
작성일 2003-05-07
2003년 5월 4일 일요일 날씨 : 흐리더니 빗방울 톡톡

아빠와 함께 동네 목욕탕에 갔다.
온탕에 들어가서 아빠의 발가락을 간질이며 장난을 치고 있는데, 목욕탕 문이 열리며 노인 두 분이 들어오셨다. 연세는 두 분이 비슷해 보였으나 다른 한 분은 생김새가 좀 이상했다. 얼굴은 흉측하게 일그러졌고 입은 한쪽으로 치우쳤으며, 한쪽 팔과 다리는 뒤틀어져 있어서 거동하기에 매우 불편해 보였다.
나는 깜짝 놀라서, “아빠, 아빠! 저 할아버지......”하며 아빠의 옆구리를 찔러대다가 아빠한테 심한 눈총만 받았다. 나는 더 이상 물어보지 못했지만, 나중에 집에 돌아와서 그 할아버지가 뇌졸중(중풍)이라는 병을 앓고 계시는 분이라는 것을 알았다. 뇌졸중은 뇌혈관이 막히거나 파열되어 발생하는데, 혼수상태에 빠졌다가 깨어나지 못한 채 그대로 사망하거나, 설사 살아난다 해도 반신불수가 되는 무서운 병이라고 한다.

그런데 그 두 분은 생김새도 특이했지만 하는 행동은 더 이상했다. 왜냐하면 몸이 불편하신 할아버지가 같이 오신 다른 한 분을, 알아들을 수도 없는 말을 웅얼거리며 자꾸만 때리셨기 때문이다.
아니, 어쩜 저럴 수가? 자기 몸을 깨끗이 닦아주는 사람한테 고맙다는 말은 못할망정, 플라스틱 바가지로 온 몸을 사정없이 때리다니......?
그런데 더 이상한 건, 상대방 노인은 화를 내기는커녕 피하는 척하며 손으로 막기도 하고, 때론 그냥 얻어맞기도 하면서 그 할아버지를 열심히 닦아드리는 것이었다. 그렇게 말없이 한참 동안을 닦아드리기만 하던 분이, 드디어 말문을 열었다.
“아버님, 이제 시원하시죠? 조금 더 닦아 드릴까요?”
그 순간,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아버님이라니? 내가 보기엔 두 분의 연세가 비슷하신 것 같은데......

그랬다. 그 두 분은 부자지간이었던 것이다. 할아버지의 연세가 다된 아들이, 그보다 더 늙고 병드신 아버지를 모시고 목욕을 온 것이었다. 병든 아버지의 몸을 닦아 드리는 아들은, 그의 아버지가 아무리 매를 때리고 구박을 하셔도 절대 화내지 않고 원망하지 않았던 것이다. 아버지의 매 까지도 사랑으로 받아들이는 마음, 그것이 바로 진정한 효도가 아닐까?
난 갑자기 부끄러워져서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 나는 방금 전만 해도 아빠의 등을 밀어드리는 것조차 꾀가 나서 억지로 하지 않았던가? 아빠는 내 몸을 구석구석 깨끗이 닦아 주셨건만, 도대체 나는 아빠의 등을 어떻게 해드렸단 말인가?

이제 며칠 후면, 어버이날이 돌아온다. 우리는 부모님의 가슴에 꽃 한 송이 꽂아드리고, 선물하나 달랑 해드리는 것으로 부모님의 은혜를 다 갚았다고 생각한다. 이 얼마나 부끄럽고 창피한 일이란 말인가?
아까 목욕탕에서 본 늙은 아들처럼, 앞으로는 진정한 효의 의미를 깨닫고 부모님께 효도하는 착한 자식이 되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