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사법 또는 예술적 기술법은 지식이나 정보를 전달하기보다는 생생한 느낌이나 현실감을 불러일으키는 점이 그 특색이다. 묘사법은 대상을 있는 그대로 객관적으로 드러내 보인다는 점에서는 실제적 기술법과 다름이 없으나 단순한 사실의 기록에 그치지 않고 아름다운 느낌을 불러 일으킬 수 있도록 배려를 하는 것이다. 언어 표현의 감성적인 면을 충분히 살려서 그 대상에서 어떤 특색이 있는 정감을 맛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묘사법이다. 이런 묘사법은 문학적인 표현에서 많이 쓰여 온 것이다. 특히 사실주의 문학 작품에서는 이 묘사법이 주무기로 쓰였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다음에서 우리는 실제적 기술과 묘사법의 두드러진 차이를 알 수가 있다.
(1) 빗방울이 유리창에 부딪친다.
(2) 벌써 유리창에 날벌레떼처럼 매달리고 미끄러지고 엉키고 또그르르 궁글고 흠이 지고 한다.<정지용, "비"에서>
(1), (2)는 동일한 사물에 대한 객관적인 기술인데, (2)가 풍기는 느낌은 (1)과는 사뭇 다르다. (1)은 "비가 유리창에 부딪친다"는 사실의 정보를 전해 주는 외에 별다른 감흥을 일으키지 않는다. 이와는 달리 (2)는 그러한 정보 전달보다는 그 광경을 바라보는 데서 일어날 수 있는 아름다운 정서를 최대한도로 불러일으키는 효과를 내고 있다. 묘사법이란 (2)의 경우처럼 독자에게 어떤 감흥을 유발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런 묘사법의 솜씨를 닦으려면 다음과 같은 점에 유의하여 수련을 쌓아야 한다.
첫째로, 묘사법을 닦는 데는 예리한 관찰과 언어적 감각을 길러야 한다. 어떤 대상을 인상 깊게 기술함으로써 실감을 불러일으키는 묘사법의 솜씨를 닦는 데는 우선 사물에 대한 예리한 관찰력이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위의 예 (2)와 같은 기술이 될 수 있었던 것은 필자가 빗방울이 떨어지는 모습을 예리하게 관찰하고 그러한 감수성을 지닐 수 있었기 때문이다. 빗방울이 떨어지는 것을 아무 생각없이 피상적으로 보는 사람은 (1)과 같은 기술이 고작일 것이다.
비록 예리한 관찰과 감각을 지녔다 하더라도 그것을 언어로 표현하는 기법이 세련되지 않으면 인상적인 글이 생겨날 수가 없다. 아무리 깊이 느낀 풍부한 정감이나 심상(이미지)이라도 그것을 언어로써 표현하지 못하면 효과를 거둘 수가 없다. 따라서 묘사법에서는 언어 표현 감각을 예리하게 다듬는 수련이 필요하다. 가령, 어떤 특정한 소리에는 어떤 언어로 나타내는 것이 가장 실감있게 느낄 수 있는가를 여러 가지로 시도해 보아야 한다. 또 빛깔, 냄새, 모양, 움직임, 진행 과정 등을 나타내는 데도 어떤 언어로 나타내는 것이 참신한 느낌과 아름다운 정서를 불러일으킬 것인가를 궁리해 보아야 한다. 이런 노력을 통하여 언어 감각이 예리해지며 점차 세련된 예술적 표현이 다듬어진다.
이태준(李泰俊)의 <文章講話>에는 설명과 감각적 표현의 차이를 다음과 같이 보여 주고 있다.
설 명 감각적 표현
바람이 몹시 차다. 바람이 칼날처럼 뺨을 저민다.
소리가 몹시 크다. 소리가 꽝 터지자 귀가 한참이나 멍멍했다.
석류꽃이 이쁘게 폈다. 석류꽃이 불덩이처럼 이글이글한 것이 그늘진 마당을 밝히고 있었다.
이처럼 감각을 날카롭게 기르고 그것을 또한 그대로 표현할 수 있는 언어 감각을 가다듬도록 노력하여야만 묘사력이 향상 될 것이다.
다음 보기는 특히 "소리"에 대하여 예리하게 느끼고 정감 깊게 표현하는 묘사법으로 쓰인 글이다.
[보기 10.13]
밤 깊어 뜰에 나서니, 날씨는 흐려 달은 구름 속에 잠겼고 음풍이 몸에 신선하다. 어디서 솰솰 소란히 들려오는 소리가 있기에 바람 소린가 했으나, 가만히 들어 보면 바람 소리만도 아니요, 물소린가 했더니 물소리만도 아니요, 나뭇잎 갈리는 소린가 했더니 나뭇잎 갈리는 소리만은 더구나 아니다. 아마 필시 바람 소리와 물소리와 나뭇잎 갈리는 소리가 함께 어울린 교향악인 듯싶거니와 어쩌면 곤히 잠든 산의 호흡인지도 모를 일이다. --정비석, "산정 무한" 중에서
다음 보기는 주로 빛깔에 관한 실감있는 묘사를 보여 준다.
이런 감각은 미술적 안목과도 관런된다 할 것이다.
[보기 10.14]
인가가 끝난 비탈 저 아래를 가로질러 흐르는 개천물이 눈이 시게 빛나고 그 제방을 따라 개나리가 샛노랗다. 개천 건너로 질펀하게 펼쳐져 있는 들판, 양털같이 부드러운 마른 풀에 덮여 있는 그들 한복판에 괴물 모양 기다랗게 누워 있는 회색 건물, 지붕 위로 굴뚝이 높다랗게 솟아 있고, 굴뚝 밑에서 노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 안원희, "조그만 일" 중에서
둘째로, 묘사법에서는 두드러진 인상을 표출해야 한다.
우리는 가끔 그 사람이나 물건에서만이 느낄 수 있는 독특한 인상을 받게 된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을 만나고 난 뒤에 우리는 가끔 다음과 같이 그 인상을 말하게 된다.
그 사람은 이마가 헌칠하고 키가 후리후리하다.
그 사람은 코가 크고 잘 생겼다.
그 여자는 얼굴빛이 하얗고 입이 야무지게 생겼다.
그 사람은 눈이 광채가 나고 날카로운 데가 있다.
또 어떤 사물을 보고 나서도 우리는 가끔 전체적으로 받는 인상을 다음과 같이 말하는 수가 있다.
저 집은 궁궐을 연상케 할 정도로 크고 우람하다.
저 자동차는 육중하면서도 재빠르게 보인다.
이 음식은 보기만 해도 침이 날 정도로 먹음직스럽게 생겼다.
이런 인상들은 그 사람이나 사물이 지닌 가장 두드러진 특징에서 비롯되는 것이 보통이다. 그 사람이나 사물이 지닌 가장 독특한 개성이 그런 인상을 우리에게 심어 주는 것이다.
이런 인상을 우리는 "두드러진 인상"이라고 부른다. 이런 두드러진 인상은 어떤 사람이나 사물을 식별하는 바탕이 되기도 한다. 가끔 어떤 사람이나 사물을 먼발치에서나 뒷 모습에서도 확인하는 수가 있는데, 그것은 그가 풍기는 두드러진 인상 때문이다.
묘사법은 이런 두드러진 인상을 중심으로 형성된다. 사람이나 사물의 모든 부분을 다 끄집어내서 기술하기는 번거롭기도 하려니와 쓸모도 없다. 그 사물이 나타내는 두드러진 인상을 부각시켜 기술하여야만 그 개성과 특징을 간결하게 파악할 수가 있다. 따라서 어떤 대상을 기술함에는 우선 그 두드러진 인상을 주는 요소를 파악하고 그것을 중점적으로 드러내도록 해야 한다. 이는 기술의 기본 원칙에 속하는 일이다.
다음 [보기 10.15]의 (1)과 (2)는 그런 두드러진 인상을 골라서 묘사한 것이다.
[보기 10.15]
(1)
설희의 비 맞은 타원형의 얼굴은 대리석처럼 하얗게 윤이 나면서 고운 이맛전 아래 쌍꺼풀진 눈이 그윽한 광채로 빛나고, 오똑한 코는 빚은 듯이 매끈하다. 또렷한 입모습을 둥그스름히 감싸고 있는 달걀같은 턱은 요염하기까지 하다.
-- 박화성, "고개를 넘으면"
(2)
그는 키가 189㎝이고 눈은 고리 모양으로 한 쪽이 치켜 올 라가 있다. 코는 매부리 모양으로 끝이 좀 굽어 있다. 얼굴은 까만 빛깔이며 머리칼은 물결 모양으로 심한 곱슬머리이다. 그의 손등은 매우 커서 왕두꺼비를 연상케 하고 발에는 놀랍게도 큰 신을 신었다. 그 신은 보트라 할 만큼 크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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