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법은 본디 설명법과는 다르지만 설명의 효과를 내는 일이 많다. 예를 들어, 위 [보기 9.9]의 경복궁에 관한 기술은 경복궁을 모르는 이에게 좋은 설명의 구실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사진이나 그림이 설명의 효과를 내는 것과 마찬가지 이다. 필자가 자기 나름으로 해석하는 표현을 하지 않지만 기술된 내용은 독자가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주고 있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기술법은 그 효과 면에서 설명법과 밀접한 관련을 가진다. 기술법의 이런 설명적 효과는 설명법의 글에 이용되는 수가 많이 있다. 설명법의 글에 그림이나 사진이 곁들여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기술법이 설명 목적으로 활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설명법에 기술법이 곁들여져서 이루어지는 글을 "설명적 기술법"이라 부른다. 이런 글은 설명적 표현이 제시되고 그것을 뒷받침하기 위한 기술법이 따르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우선 예를 보이면 다음과 같은 것이다.
[보기 10.16]
(1) 남편의 서재는 그미에게는 큰 골치덩어리였다. (2) 크고 작은 책들은 책상 위에, 의자 위에 또는 방바닥 위에 널려 있었다. (3) 쓰레기 통은 넘쳐 나 있었고, 담배 꽁초들은 재털이나 종이 쪽지 위에 흩어진 채였다. (4) 방 한쪽 귀퉁이에는 녹슬은 골프채들이 세워져 있는가 하면, 유리창의 틀 위에는 망치와 못들이 놓여져 있었다. (5) 깔끔한 그미에게는 이런 혼돈의 광경은 얼굴의 주름살을 더욱 흠이 지게 하곤 했다.
윗 글의 문장 (1)은 소주제문인데 설명 문장이다. 필자의 판단을 나타낸 것이기 때문이다. (2) - (4)까지의 문장들은 모두 기술법으로 쓰여지고 있다. 서재의 어지러진 모습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 보여 주고 있다. 이들은 (1)의 소주제문을 뒷 받침하는 구실을 효과적으로 해내고 있다. 이런 공간적 상황을 보여 주는 데는 기술법이 알맞기 때문이다. 마지막 문장 (5)는 (1)을 풀이한 내용으로서 역시 설명 문장이다. 필자의 견해 또는 판단이 개념적으로 드러나 있기 때문이다.
다음 글은 설명적 기술법으로 쓰인 것인데 설명법과 함께 아름다운 정서를 불러 일으키려는 묘사법의 효과를 내려는 의도도 다분히 엿보인다. 말하자면 설명이 곁들인 묘사적 기술법이라 할 만하다.
[보기 10.17]
날이 갈수록 내 눈은 도자기에서 떠나지 못하고 그 신비한 매력에 빠져 들어갔다. 이윽고 어느날 거기에서 어떤 새로운 "우주"를 발견한 듯이 느껴지기도 하였다. 짙은 담갈색의 밑 부분은 대지요, 그것이 차츰 엷어지면서 뿌우연 허공이 펼쳐 지고 그 위로 점차 담청색 창공이 높이 솟아 올라 끝 닿은 데를 몰라 보겠다. 높고 낮게, 강하고 여리게, 짙고 연하게 , 파도처럼 굽이치는 유려한 자태 속에 삼라만상이 응축되어 꿈틀거리고 있지 아나한가. 바라보고 있노라먼 대지 위로 불쑥 붉은 해가 솟아 오르는 듯도 하고 지평선 너머로 낙조가 물든 듯도 하다. 이름 모를 새들이 허공을 가르며 떼지어 날아가고 창공은 푸른 밤 바다가 되어 대지 위로 밀려 드는 것도 같다. 나는 이 한 점의 도자기에서 온갖 아름다운 자연을 두루 볼 수 있으며 혼탁한 세상을 잠시나마 잊을 수가 있다.
--이정자, "도자기"
위 글의 처음 두 문장과 마지막 문장은 설명적인 것이고 그 나머지 문장들은 주로 기술법을 써서 표현하고 있다.
다음 글은 대부분 묘사법으로 쓰였으나 마지막 문장만 설명법의 글이다. 곧 소주제만 설명법으로 나타낸 것이다.
[보기 10.18]
굽어 보면 크고 작은 험준한 윤산(輪山)들에 안기어서 검고도 푸른 천지의 물이 아득히 절벽 아래 성낸 파도를 일으키고 있다. 흰 구름이 물결 위로 곤두박질쳐셔 휘매가다가 망천후의 흑갈색 절벽을 타고 하늘로 솟구쳐서 올라간다. 깊이를 모르는 화구에 담긴 검고 푸른 물은 신비와 장엄의 상징처럼 구비친다. 뭉클뭉클 뿜어 나오는 물 위의 안개는 걷혔다 덮였다. 무궁의 변화를 보여 준다. 참으로 웅대한 자연이다.
--유달영 "백두산 천지에서"
다음 보기는 첫 문장과 끝문장에 설명법이 곁들여진 묘사 단락이다.
[보기 10.19]
산 밑에서 오묘하게 보이던 사자평 가장 자리 부분이 점점 더 다가오며 신비감을 증폭시켰다. 중세 유럽을 배경으로 한 영화에서나 보던 형상이었다. 툭 건드리면 와르르 무너질 것 같은 기암 괴석들이 사자평을 떠받들고 있는 것이다. 쭉쭉 뻗어 내리다가 소라 모양으로 뭉치기도 하고 시루떡처럼 촘촘이 쌓인 바위 덩어리가 파도처럼 일렁이기도 했다. 장엄하고도 섬세한 암능미에서 이국적인 풍취를 느낄 수 있었다.
-- 신 향 식 "무지개를 잡아온 아내"
다음 글도 설명이 곁들여진 기술법의 글이다. 또 이 글은 설명적 묘사법의 성격도 띈다고 할 만하다.
[보기 10.20]
수돗거리 뒤편 한 깊은 골목에 정환형이라고 먼 친척 형님이 한 분 살고 있었다. 남농과 쌍벽이라는 소송 문하 제자였는데 그 때 스무살쯤 청년으로 가늘고자그만한 몸집, 희누르고 갸름한 얼굴에 긴 리젠트머리를 기름발라 단정히 빗어넘기고는 단벌 정장을 언제나 반듯이 차려 입고 옆구리엔 커다란 그림판, 꼭 다문 작은 입, 눈은 잔득 내리깐 채 옆도 안 돌아 보고 아침이면 똑같은 시간에 북적대는 수돗거리를 천천히 지나서 시내로 들어가곤 했다.[중략]
--김지하, "나의 회상:모로 누운 돌부처"중에서
위 글의 앞 부분은 설명법이 쓰였고 기운 글씨체가 기술법으로 쓰인 것이다. 그 뒤에는 서사법의 글이 따르고 있다. 이처럼 기술법 또는 묘사법은 설명법 등과 어울려 쓰는 일이 많다.
기술법은 윗 글처럼 설명법과 어울려 쓰이는 경우가 많을 뿐 아니라 정서적인 표출에 역점을 둔 묘사법의 성격을 띠는 일을 흔히 볼 수 있다. 단순한 사실의 전달이란 설명에 그치지 않고 기왕이면 읽을 맛이 나는 글을 지어서 독자의 심미감도 충족시키려는 의도 때문이다. 그래서 기술문은 순수한 기술법만으로 일관된 경우는 오히려 드물다. 그것은 기술법으로 쓰인 글의 의미(주제)를 한층 더 명확히 전달하는 효과와 함께 정서적인 면을 부각시키려는 의도에서이다. 그 한 대표적인 보기는 다음과 같은 것이다.
[보기 10.21]
철쭉은 진달래과에 속하는 키작은 나무(관목)이며 겨울이 되면 잎을 떨구는 낙엽성식물이다. 봄이 시작되면 철쭉은 피묻은 화살촉처럼 붉고 뾰족한 꽃봉오리를 살며시 열며 피어난다. 결코 서두름이 없이 충분히 무르익은 봄에 싶작되므로 꽃 샘취위에 해를 당하는 일은 결코 없다. 꽃은 한가지 끝에 두 성이부터 일곱송이까지 여러송이가 모여 달린다. 꽃이 한껏 피어나면서 꽃잎은 솜사탕처럼 부드러운 연분홍빛이되고 다섯 갈래로 갈라져 벌어지면서 제모습을 드러낸다. 그러나 철쭉은 이 갈라진 꽃잎의 아랫부분이 함께 붙어 있는 통꽃이다. 꽃잎은 마치 깔때기처럼 유연한 곡선을 그리며 이어지고 그 사이로 꽃잎보다도 길게 나와 있는 한개의 암술과 열개의 수술은 마치 갈고리처럼 한 방향으로 휘어진다. 수술의 길이는 조금씩 다르다. 꽃잎의 안쪽, 수술이 맞닿을 곳에는 자주빛 선명한 반점이 점점이 박히어 소녀의 주근깨처럼 애교스럽다. 꽃이 피면서 함께 자라기 시작한 시작한 철쭉의 잎은 주걱처럼 길쭉하게 둥근잎을 잎자루없이 한가지 끝에 다섯장쯤 원을 그리며 매어 다는데 잎끝은 약간 오목하게 들어가 있다. 이러한 꽃과 잎을 매어단 가지는 어릴때 녹색이었다가 나이가 들면서 회색으로 변해간다. 연두빛 잎새들이 싱싱한 초록빛으로 변해가 무렵 꽃이 진다. 시든 꽃잎은 한장 한장 떨구지 아니하고 보기 싫은 모습이 되기전 앙증스런 깔때기 모양의 통꽃잎이 한번에 떨어 진다. 아니 그대로 빠져버진다는 표현이 적합할 듯 싶다. 봄비라도 내리고 나면 그 고운 분홍빛을 아직 그대로 간직한 꽃잎들이 바닥에 어질어 지고 가지끝에는 아직 암술이 홀로 남아 매달려 있는 모습은 철쭉꽃이 봄에 가져다 주는 또하나의 서정이다. -- 이유미, "철쭉"
위 글은 "철쭉"을 기술한다기보다 설명하면서 아름다운 정서를 한껏 느낄 수 있도록 적절한 비유법 등을 써서 아름답게 묘사하였다.
실제로는 글 전체가 묘사법으로 쓰여지는 일은 거의 없으므로, 묘사문은 한 토막글이거나 아니면 한 문단 정도의 것이 대부분이다. 이를테면, 어떤 수필이나 소설이 아무리 사실적인 수법으로 쓰인다 할지라도 그 내용 전체가 묘사법으로 전개되는 일은 거의 없다. 따라서 묘사문은 묘사법만으로 된 짧은 글이거나, 딴 전개법으로 이루어지는 글 가운데 곁들여진 묘사법의 글이라 할 수 있다.
요컨대, 넓은 의미의 묘사문은 묘사법이 주로 쓰인 글이라 할 수가 있다. 글 전체로 보아 설명법이나 논술법 또는 서사법보다는 기술법이나 묘사법이 가장 두드러지게 쓰인 글은 넓은 의미의 모사문이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글 전체가 순수한 묘사법만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라 할지라도, 딴 전개법 보다 묘사법이 많이 쓰인 경우는 묘사문이 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다음 글에서처럼 다른 전개법이 군데 군데 쓰이고 있지만 전반적으로 보아 묘사법이 주조를 이루는 것은 묘사문의 범주에 넣을 수 있다.
[보기 10.22]
좋은 일기라도 하늘에 구름 한 점 없는--우리 사람으로서는 감히 접근치 못할 위엄을 가지고 높이서 우리 조그만 사람을 비웃는 듯이 내려다 보는 그런 교만한 하늘은 아니고, 가장 우리 사람의 이해자인 듯이, 낮게 뭉글뭉글 엉키는 분홍빛 구름으로서, 우리와 서로 손목을 잡자는 그런 하늘이다. 사랑의 하늘이다. 나는 잠시도 멎지 않고 푸른 물을 황해로 부어내리는 대동강을 향한 모란봉 기슭, 새파랗게 돋아나는 풀 위에 딩굴고 있었다.
이 날은 삼월 삼질, 대동강에 첫 뱃놀이 하는 날이다. 까맣게 내려다 보이는 물 위에는, 결결이 반짝이는 물결을 푸른 요릿배들이 타고 넘으며, 거기서는 봄 향기에 취한 형형색색의 선율이 우단보다도 보드러운 봄 공기를 흔들면서 내려온다. 그리고 거기서는 기생들의 노래와 함께 날아 오는 조선 아악(雅樂)은, 느리게, 길게, 유창하게, 부드럽게, 그리고 또 애처롭게--모든 봄의 정다움과 끝까지 조화하지 않고는 안 두겠다는 듯이, 대동강에 흐르는 시커먼 봄물, 청류벽에 돋아나는 푸르른 풀어음, 심지어 사람의 가슴 속에 봄에 뛰노는 불 붙는 핏줄기까지라도, 습기 많은 봄공기를 다리놓고 떨리지 않고는 두지 않는다.
--김동인, "배따라기" 중에서
윗 글의 줄친 부분은 묘사법이 아니고 설명법 또는 서사법이다. 그밖에도 순수한 묘사법이라 할 수 없는 부분("흔들면서 내려온다" 따위)이 있으나 대체적으로 묘사법이 주가 된 글이라 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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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설명적 기술법/묘사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