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사법에서 행동이나 사건을 이야기할 때는 몇 가지 관점이 있다. 관점이란 글쓰는이가 이야기 속의 행동자와 어떤 관계에 서서 서술하는지를 말해 주는 것이다. 글쓰는이가 이야기 속의 행동자와 동일 인물처럼 이야기하는 수도 있고, 제3자의 관점에 서서 이야기하는 수도 있다. 가령, 교통 사고가 났을 때에 사고 버스에 탔던 사람이 자기가 겪은 것을 이야기할 때는 행동자 또는 사건 관계자가 직접 이야기하는 서사법이 된다. 그런데 이 사건을 자세히 취재한 사람이 그 경위를 제 3자적 관점에 서서 이야기할 수도 있다. 앞것은 "1인칭의 관점"이라 하고, 뒷것은 "3인칭의 관점"이라 한다. 서사법의 관점은 이 두 가지로 크게 나누어 볼 수가 있다.
(1) 1인칭의 관점
1인칭의 관점은 필자가 자기가 직접 겪은 실제 이야기를 쓴 글에서 흔히 볼 수가 있다. 소설 따위에서도 주인공을 일인칭으로 만들어 필자가 직접 행동하고 겪은 것처럼 써나가면 일일칭 관점이 된다. 이런 것은 일인칭 소설"이라 부르는 수가 있다.
일인칭의 관점에서 글을 쓸 때에는 행동이나 사건에 관계한 사람이 직접 이야기해 나가는 경우가 된다. 이럴 때에는 행위자와 필자가 일치된다. 이런 이야기에는 "나" 또는 "우리"라는 대명사가 주로 쓰인다.
[보기 9.47]
퇴근 시간의 종로통은 군중들의 물결로 하여 거의 밀리어 다니다시피 걷게 된다. 어느날 그런 인파 속에서 K박사를 만났더니 내일 그 댁에 모임이 있으니 초대한다고 하면서 "꼭 오셔야 합니다." 했다. 나는 무심코 헤어지는 인가겸으로 "네! 고맙습니다. 틈이 나면 가겠습니다." 한즉 K박사는 가려다 말고 대뜸 돌아서서 정색을 하며 하는 말이 "시간이란 남는 것이 아니요, 쪼개 써야 하는 것이니꼭 틈을 만들어 주셔야 합니다." 순간 나는 무엇에 얻어 맞은 기분으로 그 진리로운 언어와 우정에 위압되어 "네! 꼭 가겠습니다. 시간은 있어요. 없어도 만들어야죠." 하고는 다시 군중에 휩싸여 버렸다. 사람 속에 섞여서 둥둥 떠 다니면서 귀가길에 K박사의 말을 다시 되뇌어 본다. "참으로 시간이란 할애해 쓰는 것이지 남는 것은 아니렷다." [중략]
아무리 과학이 발달되어도 시간만은 어쩔수 없는 것이렷다. 언젠가 트루먼은, "인간이 대자연을 거의 모두 정복하였다. 하늘을 정복하고 물을 정복하고 ... 그러나 아직 시간만은 정복 못하 고 그 앞에서 무릎을 끓지 않을 수 없다."라 하였지만 인간은 지혜가 아무리 초비상으로 발달한다 해도 시간의 우주 섭리만은 극북할 수 없는 것이다.
-- 김지용, "시간은 할애하는 것"중에서
위 글에서 보듯이 "나" 곧 필자가 행동자가 되어 실제로 보고 듣고 생각하고 행동하고 말한 것을 적어 가고 있다.
1인칭적 관점도 세부적으로 따져 보면 몇 가지로 구분될 수가 있다. 우선 [보기 8.5]에서처럼 이야기하는 이가 그 이야기 속의 주행동자(또는 주인공)나 그에 가까운 자리에 있는 사람일 경우가 그 한 가지이다. 이야기 속의 여러 사람 가운데 필자인 "나"가 가장 중요한 행동자로서의 행동을 보이면서 자기 행동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엮어 가는 것이 서사법이다. 많은 자서전적 이야기나 자기의 경험담이나 겪은 일을 말하는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소설 작품 가운데서도 이런 관점에서 쓰여진 예는 많다. 예를 들면, 다니엘 데포의 "로빈슨 크루소," 헤밍웨이의 " 무기여 잘 있거라," 이 상의 "날개," 김동인의 "배따라기" 따위 이다. 이런 관점을 "1인칭-주행동자의 관점"이라 한다.
1인칭적 관점의 또 한 가지 유형은 이른바 "1인칭-관찰자"의 관점이다. 이 관점은 말하는 이가 이야기 속의 주인물이지만 주인공은 아닌 입장에서 이야기를 전개하는 방식이다. 예를 들면, 김동인의 "광화사"에서 1인칭 화자인 "여"가 주인공인 "화공"의 이야기를 하는 경우, 또 주요섭의 "사랑 손님과 어머니"에서 여섯살 난 어린애 "박옥희"가 주인공인 어머니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따위이다. 이런 방식에서는 이야기하는 이도 그 행동이나 사건에 참여하는 관점을 취하지만 그것은 주요 인물의 행동이나 성격을 이야기하는 보조자적 관점이 될 뿐이다. 소설의 경우가 아니더라도 아들의 관점에서 아버지의 됨됨이를 이야기하는 경우, 학생의 눈과 입을 통해서 선생의 행동을 이야기할 경우 등에 쓰일 수가 있다. 또 어떤 이의 일생을 다루는 전기적인 글에서 필자가 그 사람과 사귀고 같이 행동하던 일을 중심으로 엮어 나갈 때도 이 관점의 글이 된다.
또 1인칭적 관점 중에는 의인화된 것도 있다. 동물이나 식물 따위를 의인화에서 그런 관점에서 이야기를 하는 경우이다.
[보기 9.48]
친구들 안녕? 나는 낙엽이야. 처음에는 내 이름도 잘 몰랐는데 사람들이 나를 낙엽이라 불러서 내 이름이 낙엽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 지금 나는 연못 옆에 서 있는 단풍나무 가지에 매 달려 있어. 그것도 연못에 떨어질 듯말듯 말야.
친구야, 나는 이런 일을 한단다. 새벽에는 나에게 사뿐이 앉아 떨어질 것같이 잠자는 고추잠자리를 깨우고, 또 나 몰래 떨어진 이슬을 받아 마신다. 아침이 되면 바람에 잔잔히 흔들리는 물결을 감상하면서 물고기들과 재미있는 이야기를 나눈단다.
-- 지소담, "나는 낙엽이야" 중에서
(2) 삼인칭의 관점
3인칭의 관점은 행동이나 사건에 직접 참여하지 않은 제 3자로서 이야기를 펼쳐 가는 경우이다. 이 관점도 세부적으로 따지면 여러 가지로 구분될 수가 있다. 그중 대표적인 두 경우를 보면 "전지적 관점"과 "제한된 전지적 관점"으로 나누어 볼 수가 있다.
전지적 관점은 이야기하는 사람이 행동자들의 모든 것을 다아는 관점에 서는 경우이다. 작중 인물들의 용모, 행동, 동기, 성격, 배경 등을 모두 다 아는 처지에서 이야기를 엮어 나간다. 그러나 이 방식은 소설과 같은 창작적인 글에서 주로 쓰인다. 여러 인물을 설정하고 그들이 생각하고 행동하면서 살아가는 내용을 작가가 꾸며서 이야기하는 경우이므로 작자는 모든 것을 알 수밖에 없다. 이런 관점의 글에서는 작자는 어느 부분도 모를 것이 없이 다 알고 이야기를 펼치게 된다.
전지적 관점은 역사적 사건이나 자서전적인 서사문에서도 쓰인다. 이 방식이 주로 쓰이는 것은 창작적인 글의 경우이지만, 역사적 사실이나 어떤 분의 과거 삶은 과거사에 속하므로 그 내용을 충분히 아는 작자는 전지적 관점에서 이야기를 써 나갈 수가 있는 것이다. 이럴 때에는 물론 작자가 모르는 문제가 있을 수 있을 것이며, 그것을 의문점으로 보류하면서 아는 범위 안에서만 전지적 관점에서 다룰 수가 있을 것이다.
[보기 9.49]
헐렁헐렁 소리를 내며 조 선달이 그날 산 돈을 따지는 것을 보고 허 생원은 말뚝에서 넓은 휘장을 걷고 벌려 놓았던 물건을 거두기 시작하였다. 무명 실과 주단 바리가 두 고리짝에 꼭 찼다. 멍석 위에는 천 조각이 어수선하게 남았다. 다른 축들도 벌써 거진 전들을 걷고 있었다. 약바르게 떠나는 패도 있었다. 어물 장수도, 땜쟁이도, 엿장수도, 생강 장수도 꼴들이 보이지 않았다. 내일은 진부와 대화에 장이 선다. 축들은 그 어느 쪽으로든지 밤을 새며 육, 칠십리 밤길을 타박거리지 않으면 안 된다. 장판은 잔치 뒷마당같이 어수선하게 벌어지고, 술집에서는 싸움이 터져 있었다. 주정꾼의 욕지거리에 섞여 계집의 앙칼진 목소리가 찢어졌다.
--이효석, "메밀꽃 필 무렵" 중에서
위 보기에서 보듯이 필자는 작중에 나오는 모든 인물과 행동, 상황 등을 전지적 관점에서 다루고 있다. 특히 이처럼 여러 사람의 행동을 한꺼번에 내려다보는 듯이 이야기하는 것을 "파노라마적 관점"이라 부르기도 한다. 전체적 양상을 한 눈에 바라 보면서 촬영하는 것과 같은 방식이기 때문이다.
다음의 보기처럼 옛날의 전설 등을 소재로 하여 이야기를 엮어나갈 경우에도 전지적 관점이라 할 수가 있다. 그 이야기의 자초지종을 다 알고 엮어 나가기 때문이다.
[보기 9.50]
옛날에 어떤 나이 많은 노장 스님이 꿀단지를 벽장 속에 감추어 두고, 동자 스님 몰래 혼자만 꺼내 먹고 있습니다. 동자 스님은 노장 스님이 몰래 꿀 먹는 시간에 맞추어 문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노장 스님이 벽장문을 열어 꿀을 떠 먹으려 하자 문을 와락 열었습니다. 당황한 노장 스님은 이렇게 거짓말을 하였습니다.
"이것은 너 같은 어린애가 먹으면 죽는다. 그래서 안 주는 거야."
그러던 어느날 노장 스님이 외출을 했습니다. 동자 스님은 벽장 속의 꿀을 다 퍼먹어 버렸습니다. 그리고는 빈 꿀단지 옆에 노장 스님이 아끼고 아끼는 벼루를 깨뜨려 놓고 스님이 오기를 기다렸습니다.
이윽고 노장 스님이 돌아와서 동자 스님에게 야단을 쳤습니다.
"이 벼루는 왜 깨뜨렸느나?"
"스님, 집안 청소를 하다가 잘못해서 스님의 벼루를 깨뜨렸어요. 스님이 아끼는 벼루를 깨뜨려서 차라리 죽으려고 애들이 먹으면 죽는다는 저 단지 안에 든 꿀을 모두 먹어 버렸어요. 그리고 이렇게 죽기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노장 스님은 아무 말도 못했습니다.
--김용덕, <연꽃초롱 꿈초롱 2> 중에서
다음 보기에서도 역사적 일화를 작자 나름으로 엮어서 이야기 하는 것이므로 전지적 관점에서 말한다. 다만 이런 경우에는 완전히 허구적인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얼마쯤 제약이 있다.
[보기 9.51]
어느 날 백제군이 쳐들어와서 억센 공격을 퍼붓게 되었다. 그 기세에 눌려 신라군은 전의를 상실하고 달아날 궁리를 하기에 바빴다. 그야말로 신라군은 패색이 짙게 드러나는 광경이 벌어 지게 되었다.
이 꼴을 보다가 참지 못한 비녕자라는 신라 사람이 자기 집 종 합절을 불렀다.
"지금 우리 나라가 위급한 지경에 놓였으니 내 가만히 있을 수 없다. 단신으로라도 적진으로 진격할 것이니 너는 부디 내 아들 거진을 보살펴라. 거진이 비록 나이가 어리나 아비가 적진에서 죽게 되면 그냥 있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부자가 함께 죽게 되니 가족을 먹여 살릴 사람이 없을 것이 아니냐? 또 내 아내를 누가 위로해 주겠느냐? 그러니 네가 거진의 행동을 말려서 집으로 데리고 가거라."
이런 당부를 하고 비녕자는 칼을 빼어 들고 적진으로 달려가 싸우다가 장렬하게 죽었다.
아버지의 죽음을 보자 그 아들 거진은 그 길로 달려 나가려 했다. 합절은 그 말고삐를 잡고 말렸다. 그 아버지의 말씀을 전하면서,
"아버님의 말씀을 따라 집으로 돌아가 어머님을 모시는 것이 효자의 도리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돌진을 못하도록 간곡한 만류를 거듭하였다.
그러나 거진은 막무가내였다.
"어버이가 죽은 것을 보고도 그대로 있는 것이 무슨 효도란 말인가?"
라고 말을 몰아 나가려고 했다. 그런데도 합절은 고삐를 잡고 놓지를 않았다. 거진은 칼을 들어 합절의 팔을 자르고 적진으로 돌진하였다. 그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싸우다가 아버지처럼 장렬한 전사를 하였다.
이 비참한 광경을 바라보고 있던 합절은 비분강개하였다.
"이 지경에 이르러 나 홀로 살 수 있겠는가?"
하고 피가 뚝뚝 뜯는 몸을 이끌고 남은 한 팔로 칼을 휘두르며 적진으로 달려 나갔다. 그도 역시 싸우다가 죽고 말았다.
제한된 전지적 관점은 이야기하는 이가 작중에 등장하는 일부 인물에 한정하여 초점을 맞추는 경우이다. 모든 작중 인물을 알고 전지적으로 다루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또는 한정된 몇 사람)만을 잘 아는 태도로 이야기를 펼쳐나간다. 이 때는 물론 그 밖의 작중 인물은 그 초점이 되어 있는 인물을 통하여 간접적으로 알아볼 수 있게 된다. 다음 예문과 같은 것이 그 보기이다.
[보기 9.52]
소변을 보고 돌아오는 대로 성만을 줄곧 방안에 죽치고 누워, 부엌에서 달그락거리고 있는 아내의 거동에 귀를 대고 있었다. 아내의 거동이 이날 밤따라 더욱 수상하여, 그는 갯제를 지내러 가자고 도출이가 부르러 왔지만 몸이 아프다고 도리질을 보낸 터였다. (중략)
아내는 마루에서 잠시 달그닥거리다가 부엌으로 갔다. 부엌에서 마루로 왔다. 더 오랜 동안 달그닥거리다가 부엌으로 갔다. 성만은 잠든 체하고 있었다. 어느 집에서 한밤중이 겨워야 지내는 차례를 아내는 벌써 차려 놓고 있었다. 일찌감치 지낸다고 흉허물을 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아랫 마음 사람들은 모두 초저녁에 차례를 지내기도 한다던 것이니 말이었다. 성만으로서는 이날 밤 내내 아내의 거동을 살피기만 하면 그만이었다. (한승원, "물아래 김서방")
위 보기에서 보듯이 성만이라는 작중 인물의 행동에만 초점이 맞추어져서 이야기가 전개된다. 딴 작중 인물인 "아내"는 성만의 행동과 생각을 통해서만 드러나고 있다. 이름을 부르지 않고 "아내"라고 한 점에서도 그것을 엿볼 수 있다. 아내는 성만이라는 프리즘을 통하여 간접적으로 비추어지고 있다. 요컨대, 윗 글은 작품에 등장하는 일부 인물에 한정하여 초점을 맞추는 "제 한된 전지적 관점"으로 펼친 경우이다.
|
HOME > 
8. 서사법의 관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