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심이 분명한 글을 쓰려면 무엇보다도 먼저 그 소주제를 작정하여야 한다. 초보자는 소주제를 확실히 정하지 않고 글을 쓰는 일이 있는데 그것은 마치 방향을 정하지 않고 길을 떠나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렇게 되면 이것 저것 집적거리다 말게 되기 십상이고 요지가 분명한 글을 이룰 수가 없다. 그런 단락의 글이 독자에게 별로 줄 것이 없음은 더 말할 것도 없다. 글쓰는이 자신도 확실히 모르고 있는 핵심 내용이 독자에게 전달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소주제를 정하는 과정에서는 여러 가지로 시도할 수 있을 것이다. 우선 자기가 쓰고자 하는 이야기가 지닌 가장 중요한 뜻이 무엇인가를 살펴야 한다. 가령,
(가) 어떤 잘못된 행위나 습관에 따라 무슨 일을 했을 때에는 자연히 자기 나름대로 반성하는 생각이 떠오를 수 있을 것이다. 이럴 때에는 그것이 소주제로 여겨질 수가 있을 것이다.
(나) 자기가 하는 아침 운동의 한 대목이 건강에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깊이 느꼈을 때에는 그러한 점을 소주제로 삼아 딴 사람에게도 널리 알리려는 마음이 일어날 수도 있을 것이다.
(다) 남의 이야기나 행동에 관하여 듣고 감동 받은 대목이 있으면 그것을 소주제로 삼아 그 들은 이야기를 엮어서 펼칠 수 있을 것이다.
(라) 더 나아가 옛날 고사나 이야기의 한 토막을 들어 보고 그것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나 의미가 무엇인지를 자기 나름대로 깨닫는 바가 있을 때에는 그런 것을 소주제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소주제를 마련해 가는 수순이나 절차도 몇 가지가 있을 수 있다. 이를테면,
(1) 자기가 다루고자 하는 쓸거리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몇 가지로 떠오르는 주요 의미들을 낱낱이 적어 두고 그것을 서로 비교해 보고 그중 마음에 드는 것을 소주제로 작정하는 수순을 밟을 수 있을 것이다.
(2) 그런 수순을 밟고도 만족할 만한 것을 작정할 수가 없을 때에는 그 중 한 두어 가지를 골라 그것을 소주제로 삼아 토막글을 써 본 다음에 마음에 드는 것을 가릴 수도 있을 것이다.
(3) 특히 글을 처음 써 보는 이는 이런 궁리와 시행 과정을 몇번이고 되풀이하여 솜씨를 익히는 일을 게을리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 때에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소주제 자체의 가치보다는 그런 소주제가 그 이야기의 내용에서 필연적으로 드러날 수 있는지를 면밀히 따지는 일이다. 다시 말하면, 자기가 작정한 소주제가 이야기의 핵심 내용으로서 타당성이 있는지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소주제가 그 자체로서는 아무리 훌륭할지라도 전체 이야기 내용에 맞지 않는 것이어서는 절대로 안 된다.
다음의 보기는 먼저 소주제를 정하고 그것을 펼쳐 가는 단락임이 분명하다.
[보기 9.13]
나는 오늘도 잘못에 대하여 반성하였다. 학교에 가서 첫 시간부터 졸려서 혼이 났다. 선생님의 말씀이 아스라이 들려 오는둥 마는둥 눈이 슬슬 감겨서 견디기가 힘들었다. 아무리 내 살을 꼬집으면서 정신을 차리려고 해도 막무가내로 졸음이 쏟아졌다. 선생님의 야단치는 소리를 듣고 눈을 뜨니 일은 벌어져 있었다. "너 이놈 어제 밤에 무엇을 했길래 수업 시간에 잠을 자는거야!?" 야단 맞아 쌌다. 간 밤에 그 친구들과 노느라고 밤 늦게까지 잠을 안 잤으니 그럴 수밖에 없지 않은가?
"자업자득"이란 이를 두고 한 말일 것이다. 다시금 새로운 각오를 가지고 유혹에 빠지지 말기로 다짐하였다.
위 글의 소주제는 "잘못에 대한 반성"임을 누구나 금방 알아 차릴 수가 있다. 그것을 첫 문장으로 나타내 보이고 있을 뿐더러 그것을 중심으로 글을 펼쳐나갔기 때문이다. 이런 정도면 초보자의 글로서는 별로 나무랄 데가 없다고 할 만한데, 그것은 무엇보다도 소주제를 확고히 정하고 그것을 중심으로 글을 펼쳤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글은 무엇보다도 소주제가 분명히 떠오르지 않는다. 읽어 보고 그 원인을 따져 보자.
[보기 9.14] 오늘 있었던 일
아침에 늦게 일어나는 바람에 까딱하면 지각을 할 뻔했다. 가까스로 교실에 들어 가니 벌써 선생님이 들어 오고 계셨다. 오늘 따라 수업 시간에 졸음이 와서 혼났다. 다른 애들도 그런 기색이 보였다. 가만히 생각하니 오늘이 월요일이었다. 오후에 점심을 먹고 잠깐 눈을 붙이고 나니 정신이 조금 들었다. 오후 시간에는 선생님이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준 덕분인지 정신이 말짱했다. 이런 수업 시간만 계속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위 글은 중심점이 없이 이런 행동 저런 느낌들을 그저 늘어 놓기만 하였다. 어느 한 가지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생각나는 대로 한 마디씩 보태고 있을 뿐이다. 이렇게 별로 관계가 없는 일들을 한데 모아 놓아서는 소주제가 뚜럿한 글이 되지 않는다. 그런 핵심 없는 글이 된 것은 무엇보다도 자기 생각을 정돈하여 분명한 소주제를 정하지 않고 글을 썼기 때문이다. 곧 소주제라는 구심점이 없이 쓰여졌기 때문에 독자의 머리를 어지럽게 만들 뿐이다.
[보기 9.14]와 같은 글을 바로 잡으려면 먼저 소주제를 정하고 나서 거기에 초점을 맞추어 다시 엮어 써야 한다. 가령, 위의 [보기 8.13]에서처럼 "잘못에 대한 반성"을 소주제로 삼고 그것을 이야기의 초점으로 삼는다든지, 아니면 "지각하는 버릇 고치기"를 소주제로 정하고 그것을 중점적으로 다룬다든지, 그렇지 않으면 "재미있는 수업 시간"을 소주제로 정하여 거기에 중점을 두어 이야기를 펼친다든지, 어느 한 가지를 소주제로 정하여 그것에 초점을 맞추어 글을 다시 써야 한다. 그 한 보기로 "지각하는 버릇을 고치기"를 소주제로 정하고 거기에 초점을 맞추어 위의 보기를 고쳐 써보면 다음과 같은 모습의 글이 될 것이다.
[보기 9.14'] 오늘 있었던 일
오늘 나는 지각하는 버릇을 고치겠다고 다시 다짐했다. 아침에 늦게 일어나는 바람에 오늘도 까딱하면 지각을 할 뻔했다. 가까스로 교실에 들어 가니 벌써 선생님이 들어 오고 계셨다. 선생님과 마주칠까 봐 허둥지둥 교실로 들어가니 숨이 가빴다. 다른 아이들은 일찍 와서 예습을 다하고 있는 것을 볼 때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조금만 더 일찍 일어 났더라면 이런 일이 없었을 텐데.... 더 늦어서 지각 대장으로 찍히기 전에 이 버릇을 고쳐야 한다고 단단히 결심하고 나니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졌다.
위 글은 "지각하는 버릇 고치기"를 소주제로 삼고 거기에 맞추어 그날에 일어났던 일과 자기의 반성과 결심을 배열하고 있다.
이렇게 소주제를 정하고 단락 쓰기를 시작하게 되면 이야기의 초점이 뚜렷이 드러나게 마련이다. 그 소주제를 핵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기 때문이다. 이럴 때에는 앞의 [보기 9.14]에서와 같이 졸음 이야기나 재미있는 수업에 관한 서술 따위는 섞이지 못 하게 된다. 그런 것들은 소주제와 관계 없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소주제를 정하고 단락을 쓰게 되면 자연히 그 소주제와 관계 있는 내용만 쓰이게 되고 그렇지 않은 것은 일체 쓰이지 못하게 되어 초점이 선명한 글이 되는 것을 확실히 알 수 있다. 이는 앞에서 말한 통일성의 원리가 지켜져 있기 때문이다.
글을 쓰는 초기 단계에서는 소주제 중심의 글을 펼치는 방법을 익히는 일에 최대의 역점을 두어야 한다. 처음부터 값진 소주제를 찾는 데 힘쓰기보다는 어떤 소주제이거나 정해서 그것을 뚜렷이 드러내는 요령을 익히는 일이 가장 긴요하다는 것이다. 물론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라고 좋은 소주제를 골라서 그것을 잘 펼치는 법을 익히는 것은 더 바람직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처음부터 값진 소주제만을 찾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평소에 상당한 폭넓은 교양과 사고력 훈련 등이 있어야 참신하고 멋있는 소주제를 찾아낼 수 있다. 그런데 이런 경지에 이르는 일은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글 쓰기를 갓시작하는 이는 그런 이상적인 소주제를 찾는 데 너무 많은 시간을 쓸 것이 아니라, 평소에 생각한 점이나 느낀 점 등을 일단 소주제로 삼아서 그것을 중심으로 글을 써보는 연습을 해서 글솜씨를 착실히 익히는 것이 중요하다.
다음 보기에서는 소주제를 미리 정하고 거기에 따라 약간의 설명을 곁들이면서 뒷받침을 함으로써 초점이 선명한 단락을 이루고 있다.
[보기 9.15]
나는 최근 부모님의 사랑을 더욱 깊이 느낄 수 있었다. 부모님의 사랑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크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동안 부모님에게 특별히 고마운 마음을 깊이 느끼지는 않았었다. 그런데 얼마전 나는 심하게 앓아서 누운적이 있었는데 그때 부모님이 보여주신 사랑에 감동을 받았다. 눈을 떠 보니 어머니는 내 옆에 온종일 앉아 눈물을 흘리면서 간호를 하고 계셨다. "내가 너 대신 앓는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한다. 내가 아픈 것보다 네가 아프면 나의 고통은 몇 배나 크단다." 하면서 어머니는 눈물만 흘리고 계셨다. 아버지도 회사일로 출장갈 일조차 미루고 내 병을 걱정하여 수십 번씩 전화를 걸었다고 한다. 저녁에는 퇴근하자마자 집으로 와서 내 머리를 짚어 주며 그날 밤을 꼬박 세웠다. 나는 나보다도 이런 부모님을 위해서 빨리 병이 나아야 되겠다고 고통을 참으며 힘을 내었다.
-- 조성룡 "고맙고 고마운 일들" 중에서
위 글에서처럼 소주제문을 맨 앞에 내세우고 이야기를 전개하면 그 요지가 선명하게 드러나게 된다. 그 소주제문이 없더라도 요지가 쉽사리 파악될 만한 글이지만 그것이 나타남으로써 핵심 내용이 훨씬 강하게 부각되고 있다.
다음 보기에서도 첫 문장으로 나타나는 소주제문이 미리 정해져 있어서 그 단락의 핵심이 더욱 확고히 다져진다.
[보기 9.16]
건국 이후 역대 장관이나 정치인들중 가장 청렴한 인사로 대개는 일석 변영태(逸石 卞榮泰)를 꼽는다. 1949년 대통령 특사로 필리핀에 갔다 돌아온 그가 여비 사용 명세서와 함께 남은 돈 10달러를 대통령에게 반납한 일화는 유명하다. 이밖에도 그는 해외 출장에서 돌아오며 수백 달러에서 많게는 3천달러에 이르는 여비를 국고에 반납했다. 여행중 그는 세탁비를 아껴야 한다며 옷을 직접 빨아 입었고 끼니때마다 싸구려 중국집을 찾아 다니며 밥값을 아꼈다. 그의 신분을 알아 차린 식당 주인이 일국의 특사가 이런 데서 식사를 하느냐고 묻는 바람에 나라의 체통을 생각해서 비싼 요리를 시켜 먹었다는 수행보좌관이던 김용식(金溶植) 전 외무장관의 술회도 있다.
위의 글처럼 일화나 사건을 소재로 하는 글에서는 그 이야기만을 들려 주고 그 의미는 독자가 헤아리게 할 수도 있다. 그런데 이야기의 첫머리에 사건의 의미를 필자 나름으로 해석하여 소주제문으로 제시해 주면 이야기의 핵심이 훨씬 명확히 드러날 수가 있는 것이다.
다음 보기는 길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광경들을 무심코 지나치지 않고 필자 나름의 성찰을 통하여 소주제를 떠올리고 있다.
[보기 9.17]
길에서 손이 없는 사람을 만났다. 키가 우리의 절반밖에 안되는 난장이 아가씨도 보았고, 정신 나간 듯이 혼자서 히주히죽 웃고 있는 어떤 청년도 보았다. 육교의 난간에서 잘 팔리지도 않는 작은 물건들 앞에서 외로이 쪼그리고 앉은 어느 아줌마도 보았다. 매일 길을 가며 여러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데 그 중엔 돌아서도 이내 잊혀지지 않는 슬픈 얼굴들도 많다. 그들의 아픔 앞에 무력한 나, 돌아와서 내 생활을 반성해 본다. 이웃의 존재는 나를 흔들어 깨우는 종소리와 같은 것임을 깨닫게 된다.
--이해인, "일상의 길목에서" 중에서
위 글은 길거리에서 보는 여러 슬픈 광경들을 바탕으로 "이웃이 주는 깨우침"이라는 소주제를 순리적으로 부각시키고 있다. 이렇게 소주제가 중심이 되어 글이 쓰여질 때 글의 가치는 한결 돋보이게 된다. 그런 글에서는 우리도 필자와 같은 느낌이나 사상에 동참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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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이야기 단락의 소주제를 정하는 방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