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에서 단락의 구조 유형을 설명할 때 단락의 짜임새는 두괄식, 미괄식, 양괄식, 중괄식, 무괄식 등이 있음을 풀이한 바가 있다. 여기에서는 주로 서술법의 유형에 속하는 단락을 짓는 요령을 자세히 익히고 확실히 다지도록 한다.
(1) 두괄식의 이야기 단락
두괄식의 이야기 단락은 이야기의 내용을 집약한 소주제문이 단락의 맨처음에 놓이는 것이다. 곧 이야기가 지닌 핵심적 의미를 나타낸 문장을 단락의 첫머리에 놓고 뒷받침하는 단락이다. 이런 두괄식의 이야기 단락을 이루려면 대체로 다음과 같이 하는 것이 좋다.
(가) 먼저 이야기의 내용을 검토하고 그것이 드러내는 의미나 요지 따위를 필자 나름으로 파악한다. 그러자면 그 이야기가 우리에게 주는 의미가 무엇인가를 여러 모로 깊이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다.
(나) 그 다음에는 필자 나름으로 파악한 이야기의 의미를 되도록 간결하게 한 문장으로 나타낸다. 그것은 필자가 파악한 그 이야기의 소주제문이 될 것이다. 이것을 단락의 첫머리에 내세우면 두괄식의 시발점이 된다.
(다) 이렇게 소주제문을 내세운 다음에는 그것을 뒷받침하는 이야기를 엮어서 늘어 놓는다. 이때 중요한 것은 그 이야기 중에 소주제문과 관련이 깊은 것만 집중적으로 선택하여 제시하는 일이다. 그렇다고 이야기 내용을 사실과 다르게 바꾸라는 것은 아니다. 이야기를 되도록 사실대로 들려 주되 필요없는 군더더기나 중요한 것이 아닌 사항은 제외하는 것이 낫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이야기를 소주제문을 효과적으로 뒷받침하도록 다시 엮어서 통일적으로 서술해야 한다는 것이다.
두괄식 이야기 단락은 다음과 같은 예문에서 볼 수가 있다.
[보기 9.18]
무슨 일이건 빨리 서두를수록 좋다고 생각하는 민족은 어쩌면 이 세상에서 우리뿐 아닌가 한다. 외국에 가끔 가보는데 홍콩이나 대만 같은 데서는 식사 때 원탁에 둘러앉아 한 가지의 음식을 종업원이 손님 각자에게 덜어주고 그 다음 음식을 다시 가져오고 하여 10여 종류의 음식이 차례로 나오게 된다. 그런데 한국 사람이 가면 한꺼번에 음식을 몽땅 가져다 준다. 이유는 한국사람들은 한가지 음식이 나오기가 무섭게 빨리빨리 가져오라고 성화대서란다. 이곳에서는 미국 같은 데서와 마찬가지로 식사를 즐기면서 2시간 이상 먹는데 우리는 그저 빨리만 먹어 10분도 채 안걸린다. 밥 뿐인가? 돈도 빨리 벌려니 문제가 생기고 출세도 빨리 하려다 문제가 생긴다. 차도 빨리 가려다 사고가 난다. 그렇다고 게으름을 피라라는 것이 아니다. 모두가 질서가 있고 순서가 있는 법이다.
--이 사무엘, "여유있는 마음," <기독교신문> 1992 11 29
맨 첫머리에 소주제문을 내걸고 그 뒤에 그러한 실제 사례들을 이야기해 줌으로써 뒷받침하고 있다. 곧 글의 요지가 먼저 제시되고 뒤에 그 요지를 떠받드는 사건이나 행동을 이야기하는 두괄식이다. 이 경우에는 물론 묘사나 설명이 아니라 사건이나 행동의 서술로 소주제를 뒷받침하여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만 서술법의 두괄식이 되기 때문이다.
[보기 9.19]
부끄러운 일이지만 필자의 가장 뼈아프고 슬픈 단점 중의 하나가 바로 이 마무리에 약하다는 것이다. 중간까지는 어지간히 일을 끌고 가는데 끝판에 가서는 힘도 빠지고 귀찮다는 생각이 들어서 흐지부지해 버리고 만다. 그렇게 함으로써 일을 차라리 시작하지 않았던 것만도 못하게 만들어 버린다. 더러 외국에 가서 훌륭하고 유능한 인사들을 사귀었건만, 귀국 후 제 때에 편지 쓰는 일이 귀찮아서 그 사람들과의 인연을 무위로 돌림으로써 필자 자신의 손해는 말할 것도 없고 국위마저 손상시켰던 일이 몇 번이었던가.
-- 성찬경, "마무리 1 %의 승리" 중에서
위 글은 설명법의 성격을 보이고는 있지만 서사법의 두괄식으로 볼 수가 있다. 주로 행동 면을 들추고 있기 때문이다.
(2) 미괄식의 이야기 단락
소주제문이 단락의 끝 부분에 놓이는 것은 미괄식 단락이라 함은 앞에서 이미 언급한 바가 있다. 앞 부분에 이야기를 늘어 놓은 다음에 그 의미를 끝에 가서 간추려 제시하는 방식이다.
이런 미괄식의 이야기 단락을 이루는 요령은 앞의 두괄식과 실질적으로 같으나 다만 소주제문을 끝에 제시하는 것만 다르다. 이야기 내용을 검토하고 그것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가 무엇인지 파악해서 한 문장으로 나타내어 소주제문을 만드는 과정은 앞의 두괄식과 다를 바 없다. 다만 그 소주제문을 맨 뒤에 적어 놓는 점이 다를 뿐이다. 또 이야기 내용을 제시할 때에 그 소주제문에 맞도록 엮는 점도 두괄식과 마찬가지이다. 그 한 보기로 앞의 [보기 9.18]의 두괄식 단락을 미괄식 단락으로 고쳐 본다.
[보기 9.18']
외국에 가끔 가보는데 홍콩이나 대만 같은 데서는 식사 때 원탁에 둘러앉아 한 가지의 음식을 종업원이 손님 각자에게 덜어주고 그 다음 음식을 다시 가져오고 하여 10여 종류의 음식이 차례로 나오게 된다. 그런데 한국 사람이 가면 한꺼번에 음식을 몽땅 가져다 준다. 이유는 한국사람들은 한가지 음식이 나오기가 무섭게 빨리빨리 가져오라고 성화대서란다. 이곳에서는 미국 같은 데서와 마찬가지로 식사를 즐기면서 2시간 이상 먹는데 우리는 그저 빨리만 먹어 10분도 채 안걸린다. 밥 뿐인가? 돈도 빨리 벌려니 문제가 생기고 출세도 빨리 하려다 문제가 생긴다. 차도 빨리 가려다 사고가 난다. 그렇다고 게으름을 피라는 것이 아니다. 모두가 질서가 있고 순서가 있는 법이다. 그런데 그처럼 무슨 일이건 빨리 서두를수록 좋다고 생각하는 민족은 어쩌면 이 세상에서 우리뿐이 아닌가 한다.
곧 미괄식은 두괄식에서 맨 앞에 놓인 소주제문을 맨 끝으로 옮겨 놓는 방식이 된다. 이야기가 앞에 놓이고 그것을 마지막에 간추려서 요지를 나타내는 방식으로 하면 미괄식이 되는 것이다.
다음 단락도 위 글의 필자가 쓴 미괄식이다.
[보기 9.20]
아버지는 딸들이 어떻게 사는가 궁금하여 큰딸집에 갔다. 과연 경비가 삼엄하고 높은 담에 철조망까지 두른 고관대작의 관저에 살고 있었다. 딸은 아버지에게 한숨섞인 소리로 "아버지 저는 하루도 마음 놓을 날이 없습니다. 남편이 권좌에서 밀려날까, 경쟁자가 나타날까, 불안해서 견딜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심장병에 신경병에 …" 아버지는 둘째딸에게 찾아 갔다. 둘째딸의 집은 정말 으리으리 했다. 그런데 얼굴은 수심, 근심, 걱정이 가득했다. "아버지, 남편은 늘상 바람이나 피고 사업이다 회의다 해서 외박과 출장으로 집에 얼굴 보기가 어렵고…" 아버지는 셋째딸 집에 찾아갔다. 그런데 살림살이도 집도 가재도구도 별로 좋은 것이 없었다. 그러나 얼굴에는 웃음꽃이 피어있었다. "아버지, 저는 부러울게 없습니다. 남편의 사랑은 뜨겁고 자녀들은 화목하고…" 그렇다면 행복이란 무엇인가? 스위스의 철학자 칼 힐티(1833-1909)는 <행복론>이란 책을 썼는데 "인생 최대의 행복은 하나님 곁 가까이에 있는 일이다"고 말했다.
--이 사무엘, "영원한 평화" <기독교신문> 1992.11.10
다음 보기도 미괄식으로 쓴 이야기 단락이다.
[보기 9.21]
필자에게 있었던 실화 한 토말을 소개하겠다. 약 십여년 전에 필자의 친한 친구 한 사람이, 새 차를 샀으니 시승(試承) 겸해서 놀러 가자고 제의해 왔다. 물론 기꺼이 응했다. 그런데 차가 가다가 약간 급하게 정거를 했다. 이때 필자가 타고 있던 운전석 옆 자리의 '해가리개'가 뚝 떨어지며 필자의 이마를 가볍게 스쳤다. 그 바람에 이마의 살점이 벗겨지고 피가 흐르기 시작했다. 그 상처는 지금도 남아 있다. 플라스틱이 접합된 '해가리개'의 모서리가 마치 면도날처럼 예리했던 것이다. 사포(砂布, 샌드페이퍼)같은 걸로 몇 번만 문지르면 되는 끝마무리를 생략한 결과이다.
-- 성찬경, "마무리 1%의 승리" 중에서
우리는 이렇게 마무리를 소홀히 하는 결합이 있음을 스스로 격은 이야기를 통해서 서술하였다.
(3) 양괄식의 이야기 단락
양괄식 단락이란 소주제문을 단락의 첫머리와 끝에 내세우는 것을 말한다. 소주제문을 먼저 내걸고 두괄식으로 전개한 다음에 끝에 가서 소주제문을 다시 한 번 제시하여 다짐하는 방식이다.
[보기 9.22]
정말이지, 이 나라에선 못난 서민들이 사람다운 대접을 받고 산다는게 너무 어렵다. 짐짝버스, 통조림 지하철이야 그렇다 치고, 택시의 횡포 역시 세월 지난 풍월인지 오래다. 손님인지 죄인인지 기사 눈치 보느라 날마다 주눅이 들어서, 도대체 내 돈 주고 내가 왜 이런 천대, 박대를 감수해야 하는가 싶은 모멸감과 억울함조차 이젠 들먹이는게 새삼스럽다. 관공서를 가건 병원을 가건 다를 바 없다. 책 제목마따나 "왜 작은 일에만 분개하느냐" 말할 지 모르지만, 어쩌랴, 가난한 서민들은 작은 일에서조차 최소한의 사람 대접을 못받고 사는 게 이 나라의 현실이니 말이다.
--임철우, "사람대접," <조선일보>? 1993. 3. 13
맨 끝의 소주제문은 앞 머리의 것과는 표현 형식만 다르고 내용적으로 동일하다. 사실, 이처럼 앞 뒤 소주제문은 내용적으로만 동일하고 표현 형식은 달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형식적으로도 동일한 문장을 반복하는 것은 모양이 안 좋다. 다만, 형식을 달리하더라도 내용적으로는 동일하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 단락의 소주제 파악에 혼선을 주기 때문이다.
(4) 무괄식의 이야기 단락
소주제문이 겉으로 안 나타나고 잠재되는 것은 무괄식 단락이라 부른다 하였다. 이런 단락에서는 소주제문이 은근히 암시되도록 펼쳐진다. 앞의 [보기 8.18]과 같은 경우에 맨 처음에 소주제문을 덧붙이지 않으면 무괄식의 단락이 된다. 이렇게 이야기 단락에서는 소주제문이 없이도 그 단락의 요지를 잘 알 수 있으면 구태여 그것을 안 나타내는 일이 많다.
다음 단락은 이렇다할 소주제문이 표면화되지 않고 쓰였다. 소주제문은 이야기 안에 잠겨 있게 해서 독자가 그것을 스스로 알아차리게 하는 것이다.
[보기 9.23]
섬진강을 사이에 두고 지리산을 바라 보며 자리잡은 백운산길은 호젓하기만 하였다. 그다지 유명하지 않은 산에서 등산로마저 제대로 나지 않은 코스를 택한 덕택에 입안이 들적하도록 머루랑 다래랑 한껏 따먹고 있자니 고려 가요의 "청산별곡"이 저절로 떠오른다. "멀위(머루)랑 다래랑 먹고 청산에 살어리랏다." 눈이 시도록 푸른건 쪽빛 하늘이고 산은 단풍들어 붉게 물들어 가니 청천 홍산 별곡이라 해야 할까? 물컹하면서 사르르 녹아 넘어가는 다래의 속살과 넣어 물면 시큼 새콤 흘러나오는 머루의 즙을 생각하면 지금 까지도 입안에 침이 돌곤 한다.
-- 이유미, "靑天紅山別曲" <광주일보>
위 글은 "산속 머루를 먹는 낭만"을 실감있게 느끼게 하는 대목이다. 그러나 필자는 그것을 행동으로만 보여 줄 뿐이고 소주제문으로 요약하여 보이지 않았다. 이런 정서적인 느낌을 위주로 표현하려는 수필류에서는 소주제문이 안 나타나는 무괄식 단락이 많다.
그렇지만 무괄식 단락은 자칫 소주제가 무엇인지 얼른 파악되기 어려운 경우가 있다. 특히 그 소주제를 정하지 않고 이것저것 늘어 놓거나, 있더라도 그것을 중심으로 뒷받침하지 않으면 그 요지가 무엇인지 파악하기 어렵게 되는 것이다. 가령, 다음과 같은 글에서는 소주제가 뚜렷이 부각되지 않는다.
[보기 9.24]
이른 아침에 자주 집앞 산길로 나섰다. 금선사 가는 길을 발견하기 전까진 혼자가니까 어디까지라고 작정할 일이 없었다. 가다가 가기 싫으면 그자리에서 돌아서 왔으니까. 산에 오른다고 할 것 없는 그저 산책이다. 금선사 길을 발견하곤 이제 거기까지 간다. 그 절집에 약수터가 있길래 배낭에 물병 세개를 넣고 간다. 오르는데 삼십분, 그 절집 개랑 노는데 삼십분, 물 떠갖고 내려오는데 삼십분, 합해서 한시간 반 정도이니 아침 산책으로 알맞다.
-- 신 경 숙, "물 떠오는 길에"
윗 글은 필자가 뚜렷한 주제 의식이 없이 여행 중의 이야기를 적어 갔다. 그렇다고 해서 의미가 없는 글이라고는 할 수 없겠지만 이 부분만으로는 뚜렷한 소주제가 얼른 떠오르지 않는다. 이렇게 볼 때에 무괄식 단락이라고 해서 소주제 없이 무심코 쓰는 것이어서는 더욱 안 된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소주제문도 표면화되지 않으니 그 요지 파악이 더욱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
HOME > 
4. 각 유형의 이야기 단락을 짓는 요령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