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처음 쓰기 시작할 때에는 이야기를 글로 써보는 것이 좋다. 이야기란 우리가 행동하였거나 겪은 일, 남이 한 행동, 주위에서 일어난 사건 그리고 옛날 일이나 고사들에 나타나는 사건을 들려주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는 우리의 살아가는 모습을 전해 주는 것이기에 누구나 말하기를 좋아하고 또 듣기를 즐긴다. 그런 이야기 중에 우선 한 토막을 말로 하듯이 적어 가면 짤막한 글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짧은 이야기를 글로 써보는 것은 글쓰기의 첫걸음이자 터닦음이다.
첫 단계에서는 아무 이야기나 한 토막을 골라서 적어 보는 것이 좋다. 이야기 중에는 긴 것과 짧은 것이 있고, 뜻이 깊거나 옅은 것도 있으며, 재미가 있는 것도 있고 그렇지 못한 것이 있다. 글을 처음 쓰는 이는 우선 그런 내용의 가치나 수준을 가리지 말고 자기가 겪은 일들을 있는 그대로 짤막하게 적어 가는 것이 좋다. 마치 일기장에 그날 있었던 일, 한 일, 누구를 만나서 대화를 나눈 일 가운데 일부를 자유롭게 적어 두는 것과 같이 가벼운 마음으로 써 보는 것이다. 처음부터 뜻깊고 재미있는 이야기만 골라서 쓰려고 하다가는 글쓰기가 머리무거워지고 쓸 거리가 얼른 잡히지 않아서 머뭇거리게 되고 마침내 붓을 잡지 못하고 마는 수도 있다. 따라서 되도록 그런 부담감을 갖지 말고 아무 이야기나 생각날 때 한 토막의 글이라도 써버릇하기 시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다음 이야기는 고등학교 3학년에 다니는 학생이 그날 시험을 치르고 나서 무거운 발걸음으로 집에 오는 이야기 가운데 한 부분이다. 이런 정도의 이야기는 아무나 손쉽게 쓸 수 있을 것이다.
[보기 9.1]
집 대문 앞에 도착했을 땐 대체 어머니께 무어라 변명을 덧붙여야할지 참 난감했다. 그렇다고 여기에서 머뭇거리고 고민한다고 해결 될 일이 아니기에 살며시 대문 안으로 발을 들여 놓았다. 현관을 들어서자마자 어머니께서는 기다리셨다는듯이 "응, 창근이 왔니?" "네." "그래 시험은 잘봤니?" "...." 난 당연히 말문이 막혔고 눈치 채신 어머니는 더 묻지 않으셨다. 옆의 초롱이는 남의 속도 모르고 뭐가 그리 좋은지 조그만 꼬리를 흔들며 혀를 낼름거리는게 얄미웠다. 겨우 한시름 놓인 나는 방으로 들어왔다. -- 박창근, "다시 한번" 중에서
이런 글은 자기가 겪은 이야기를 말 대신 글로 적었을 뿐이다. 하기야 말로 하는 이야기보다는 조금은 더 가다듬어져 있지만 이런 글을 쓰기란 말로 나타내는 것과 별다른 차이가 없을 것이다.
다음 이야기는 외국에서 보고 들은 이야기 가운데 한 토막이다.
이 글의 본문은 상당히 긴 것인데 이 한 부분만으로도 우리에게 많은 것을 느끼게 한다.
[보기 9.2]
어떤 사람이 아침에 출근하려다 보니 자동차 옆구리가 긁혀 있고, 와이퍼에는 메모적힌 명함이 한 장 꽂혀 있더란다. "운전 미숙으로 차를 긁어서 미안하다. 이 전화 번호로 연락하면 변상하겠다."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문을 열려다보니 문틈에도 명함이 꽂혀 있고 명함 뒤에는, "어젯밤 어떤 차가 당신 차를 긁는 것을 보았다. 이 번호로 연락하면 그 차의 번호를 가르쳐 주겠다. 필요하면 법정 증인 되어줄 수도 있다." 이런 내용의 메모가 있더란다. 만화가 이원복 교수가 전하는 독일 이야기이다. 그의 말에 따르면 "독일인은 국민 모두가 경찰관"이다. 이러니 헛짓을 못한다. --이윤기, "미국인들 '고자질'은 시민 의식" 중에서
다음 글은 1960년대의 영화 관객들이 보였던 순진한 모습을 회상하는 이야기 중의 한 토막이다.
[보기 9.3]
어린 시절 영화를 보다가 가장 신났던 대목은 의로은 주인공이 부당한 권력 때문에 갖은 고난과 고초를 겪다가 드디어 죽음의 막다른 골목에 딱 갇혀 오도가도 못하고 그만 꼭 죽게 생겼는데 그때 어디선가 "암행어사 출두야!" 소리가 들려 오거나 일본놈을 무찌르러 달려오는 독립군의 말발굽 소리가 이랴창창 들려오는 바로 그 대목이 아니었던가 한다. 60년대의 영화관객들은 어찌나 순진했는지 "암행어사 출두야!" 소리나 독립군의 말발굽 소리가 들리면 애 어른 할 것없이 벌떡 일어나 박수를 쳤고 더 심한 사람은 두 팔을 번쩍 들고 "만세!만세!"를 외치기도 했다. 암행어사 출두는 그렇게 하늘의 뜻이 땅에서 이루어지는 원초적 쾌감을 주었다. -- 김승희, "암행어사 출두야" 중에서
이런 이야기는 그저 들려 주기만 해도 그 시절의 경험을 가진 이는 그 때의 흥분이 되살아날는지도 모른다. 이야기란 이처럼 말로 하나 글로 하나 우리의 관심을 끌며 감동을 일으키는 수가 많다.
이야기를 글로 쓰는 것은 글쓰기의 첫걸음이자 종착점이기도 하다. 어떤 내용의 이야기를 어떤 솜씨로 쓰느냐 하는 차이는 있을지언정 한 편의 글을 이루기는 마찬가지이다. 평범한 일상사를 적은 글에서 소설 작품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엮어지는 이야기 글은 대부분 값진 "삶의 조각"들이기에 어느 시대 어디에서나 우리의 흥미를 불러 일으킨다.
이야기를 쓰는 글은 흔히 서사문(敍事文)이라 부른다. 이는 사건이나 행동을 서술한 글이라는 뜻이다. 서사문이니 서사법이니 하고 어렵게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이야기를 글로 쓰면 서사문이 되는 것임을 알고 가벼운 마음으로 많이 써 보면 어느 새 글솜씨는 향상 될 것이다. 그러다 보면 한다는 소설가 못지 않은 글 솜씨를 자랑하게 될 날이 다가오고야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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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야기 쓰기와 서사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