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단락"이란 우리가 흔히 말하거나 듣는 이야기를 글로 서술한 토막글을 말한고 했다. 여기서 "이야기" 란 주로 우리의 행동이나 사건, 옛날에 벌어졌던 일 따위의 경과를 차근차근 말하여 주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글로 나타내면 흔히 서사문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그 한토막에 해당되는 것이 이야기 단락이다. 이야기 단락은 대개 긴 이야기글의 한 부분이기도 하지만 그 자체로서 일정한 짜임새를 갖춘 "이야기 속의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우리는 이런 이야기 단락을 이루는 법을 먼저 익히고 그것을 확대하여 큰 이야기글 곧 일반 서사문을 이루어가는 요령을 익히도록 할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가 "이야기 단락"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은 이야기를 좀더 짜임새있게 엮음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단락(또는 문단)이란 글의 단위 조직체로서 그 자체가 하나의 작은 글의 조직을 갖추고 있는 것을 말한다고 함은 앞에서 여러 차례 지적하였다. 흔히 글 전체의 핵심 사상을 주제라 하는데 단락은 그 주제의 일부를 핵심체로 하는 글 속의 글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야기 단락이라는 것은 이야기를 그러한 글의 한 단위 조직체로 엮은 것임을 일컫는 것이다.
앞에서 우리는 이야기를 글로 쓰는 예들을 살펴 보았다. 곧 자기나 남의 이야기, 옛날 이야기 또는 외국 등지에서 보고 들은 이야기들을 적어 놓으면 한 토막의 글이 됨을 알았다. 이미 글 솜씨를 갖춘 이들은 더 말할 것도 없으려니와 처음 글쓰기를 시작한 이들도 관심 깊고 부지러한 이들은 웬만한 이야기 솜씨는 다 익히고 있으리라 믿는다.
이제 우리는 핵심이 분명한 이야기를 엮어가는 솜씨를 세련되게 닦아 보도록 한다. 같은 값이면 다홍 치마라 했듯이 기왕이면 핵심이 뚜렷한 이야기를 엮어서 펼쳐 보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 내용이 아직은 그렇게 깊고 가치있는 것은 못 되더라도 무엇인가 요점이 잡히고 초점이 있는 이야기를 써 버릇해야 하는 것이다. 결국 우리의 목표는 이야기를 들려 주는 데 그치지 않고 그 핵심이 무엇인지를 독자의 머리 속에 강하게 심어 주는 글을 쓰도록 수련을 쌓아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만 알맹이가 있는 이야기요 뜻이 분명한 글이 되기 때문이다.
이야기를 좀더 "뜻이 있고 핵심이 분명한 것"으로 엮어 펼치는 방법을 익히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우리가 말로 이야기를 할 때에는 그것이 어떤 중요한 뜻이 있는지 미처 깊이 생각을 안 해 보고 주위 사람에게 말해 버리는 경향이 있다. 또 우리의 관심을 끌 만한 내용의 이야기인데도 그 핵심을 상대방에게 충분히 이해시킨다는 의식이 없이 두서 없이 털어 놓아 버리는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의 이야기를 글로 써서 독자가 관심 깊게 읽어 보도록 하려면 필자 자신이 먼저 그 이야기가 가진 뜻을 찾아내서 마음 속에 정리하고 그것을 핵심으로 해서 누구나 그 요지를 잘 파악할 수 있도록 다시 엮어서 표출하는 과정이 필요하게 된다. 그렇지 않으면 두서 없는 이갸기 글이 되기 십상이고 그 핵심이 상대방에게 명확히 전달되지 않는 것이 예사이기 때문이다.
어떤 이야기거나 우리의 관심을 끌 경우에는 중심되는 "뜻"이 있게 마련이다. 그 이야기가 주는 별난 느낌이라든지, 일깨움이라든지, 깨닫고 배워야 할 교훈이라든지 하는 의미나 가치가 있게 된다는 것이다. 그 정도의 차이나 가치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무엇인가 우리의 관심을 불러 일으키는 바가 있다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의 의미를 필자가 자기의 관점에서 파악하여 정리하여 글의 핵심으로 삼게 되면 그것이 주제가 되는 것이다.
우리가 다루고 있는 짧은 토막글에도 물론 그런 주제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그것이 긴 글 속의 한 단락이 될 때 에는 "소주제" 또는 "화제"라고 해서 긴 글 전체의 주제와 구분하기도 한다. 짧은 글에서는 이 소주제가 바로 주제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한 단락의 토막글에서는 소주제로 불리는 주제가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가 철저히 익히고자 하는 것은 토막글 곧 단락을 이루는 기본 솜씨이다. 한 편의 글 전체를 이루는 글쓰기에 앞서 한 단락을 형성하는 원리와 방법을 먼저 익혀서 그것을 차차 쌓아 올리는 방식으로 긴 글을 이루는 전개법을 닦아 가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 나라의 많은 글은 이런 단락 형성의 요령을 닦는 기초 단계가 없이 긴글을 처음부터 펼치고 있어서 문제가 많고 글의 세부 조직이 허술한 경우가 많다. 그래서 우리는 그런 종래의 글짓기 방식을 지양하고 단락이라는 하부 조직체를 형성하는 방식을 먼저 몸에 익히는 기초 작업부터 튼튼히 다지고자 하는 것이다.
(1) 핵심 곧 소주제가 잠재되는 이야기 단락
이야기 단락에는 그 핵심인 소주제가 잠재되는 경우와 표면화되는 경우로 나누어 볼 수가 있다. 전자는 이야기만 들려 주고 소주제문을 따로 두지 않는 무괄식의 단락이다. 후자는 이야기를 들려줌과 동시에 그 이야기가 가진 핵심적 의미를 필자 나름대로 파악하여 한 문장으로 요약해 주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이야기 단락은 어느 경우나 그 핵심인 소주제가 있어야 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으나 그 소주제가 겉으로 안 나타나는 무괄식 단락과 그것이 겉으로 명시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서사법의 글은 본디 이야기만 들려 주고 소주제를 표면화시키지 않는 것이 예사이다. 특히 소설 따위에 많이 나타나는 서사법은 어떤 의미 있는 이야기 곧 필자가 특정한 의도로 일부러 엮어 넣은 이야기이면서도 그 의미를 전혀 일러 주지 않고 이야기를 그저 들려 주기만 한다. 이런 순수한 이야기 단락은 그 의미기 요약되는 소주제문이 안 나타남이 예사인 것이다.
이처럼 이야기의 소주제가 잠재되는 단락은 일반으로 쓰기가 어렵다. 그것을 말로 설명하지 않고 이야기 내용만 들려 주어도 그 뜻이 파악될 수 있게 엮어야 하기 때 문이다. 말하자면 이야기 과정을 통하여 아무 독자라도 필자가 전하고자 하는 소주제를 독자 스스로 쉽사리 느끼고 파악할 수 있도록 행동과 사건을 엮어서 연출(?)하여야 하니 그리 쉽지가 않은 것이다. 그래서 상당한 솜씨를 닦지 않고는 이야기만으로 핵심이 분명히 젖달되는 단락을 엮어 내기 어려운 면이 있는 것이다.
다음 글은 영국 여행 중에 겪은 이야기를 글로 쓴 것인데 그 한 토막만으로도 우리에게 생각하게 하는 바가 많다.
[보기 9.4]
영국 멘체스타에서 가까운 지역 신도시에서 운전 미숙으로 길을 잘 못 들어 아무리 헤메어도 방향을 잡을 수가 없었다. 차를 세우고 길을 물어 찾아가려고 한참 기다리니 멋지게 생긴 승용차 한대가 지나가기에 손을 들어 세워 우리가 찾아가는 지역의 방향을 알려 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흔쾌히 대답하더니 따라 오라는 것이었다. 인도하는 차를 따라가 보니 정반대 방향으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이렇게 자기가 가던 방향의 반대 쪽임에도 아무말 없이 수고해 주고 다시 안내까지 철저하게 해준다.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가르쳐 준 길로 방향을 설정하고 가려는 데 인도해 주던 차가 경적을 울려 주면서 잘가라고 손짓을 해준다. 그는 못 믿어워서 끝까지 우리가 가는 방향을 확인한 후에 반대 방향으로 되돌아 가는 것이었다. 우리는 차 뒷모습을 바라보며 참으로 감사한 마음을 가눌 수 없었다.
-- 신동우, "진정한 친절" 기독교신문 중에서
이 이야기는 그저 들려 주는 것만으로도 소주제가 명확히 드러난다. 모르는 영국인이 보여준 "철저한 친절심"을 소주제로 삼아 나타내려고 한 단락임이 누구나 알만하다. 이렇게 표면화하는 경우 못지 않게 소주제를 누구나 파악 할 수 있게 쓰는 이야기 단락이 가장 이상적인 서사법의 글이다.
다음 글은 비록 짧은 한 토막의 글이지만 그런대로 필자의 의도가 잠재되어 있음을 알 수가 있다.
[보기 9.5]
"엄마! 오늘 시험 끝나면 나는 자유여요." 초등학교 1학년 아이가 등교하면서 무심히 던진 말, 새삼 가슴에 와 닿는다. 사설학원을 다녀본 적이 없는 아이에게 끝없이 밀려드는 숙제와, 거기다 얼마전부터 시 전체가 보는 월말고사 준비를 위해 늦게까지 끙끙거리던 아이를 지켜보면서 '자유'란 말이 새삼 가슴에 와닿는다.
-- 안상숙, "아이 마음에 담은 '자유'"
위 글에서는 "자유의 희구"라는 소주제를 떠올리고 있다. 그것은 필자가 그것을 파악하고 이야기를 엮어서 강하게 암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음 글은 어느 새벽에 일어났던 일을 일기처럼 적은 한 단락의 글이다. 소주제 곧 글의 핵심이 잘 드러나 있는지 살펴가며 읽어 보자.
[보기 9.6]
아침 5시에 일어나 세수를 하고 뜰에 나가 맑은 공기를 마시면서 맨손 체조를 15분쯤 했다. 이어서 이웃 공원으로 건너가 산책을 하였다. 잰 걸음으로 걷기도 하고 언덕길을 뒷걸음쳐 올라가기도 하며 내 나름대로 체력 단련을 시도하였다. 약 40분의 산책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찬물로 땀을 씻고나니 기분이 상쾌하고 몸이 날 듯이 가벼웠다. 조용히 묵상을 한 다음에 간밤에 읽다가 만 책을 펴놓고 읽어 내려갔다. 이 시간의 묵상과 독서는 어떤 거룩한 경지에라도 이른 듯한 느낌을 자아냈다.
이 예문은 어느 새벽에 한 일들을 쓸거리로 한 이야기 토막이다. 그 내용인즉 일상의 평범한 이야기이지만 그런대로 소주제가 드러나 있다. 곧 "새벽 시간의 뜻깊음"을 소주제로 삼고 이야기가 전개된 것이다. 이렇게 하루 아침에 일어났던 일을 적는 일기문 따위에서도 그런 소주제를 중심으로 펼쳐나가면, 그것을 소주제문으로 표면화시키지 않더라도 그 핵심이 쉽사리 파악되는 단락이 됨을 알 수가 있다.
그런데 만일 윗 글에서 마지막의 두 문장을 덧붙이지 않고 끝내 버렸다면 어떻게 될까? 아무래도 그 소주제가 뚜렷이 드러나지 않게 될 것이다. 아침에 했던 행동을 별 뜻 없이 늘어 놓고 있어서 필자나 독자나 그 글에서 어떤 의미를 발견하기 힘들 것이다. 그런데 마지막의 이 두 문장은 앞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삼고 거기에 의미를 부여해서 자기가 이 글을 통해서 드러내고자 하는 으뜸 생각을 떠올리게 하고 있다. 이렇게 무괄식의 이야기 단락을 이루려면 필자 자신이 먼저 이야기의 의미를 확실히 파악할 뿐 아니라 그 이야기를 들려 주는 것만으로도 그 핵심이 잘 전달되도록 엮어야 하는 것이다.
다음 글에서는 어떤 소주제가 드러나고 있는지 살펴 보자. 곧 핵심있는 이야기인지 단순히 두서 없이 들려 주는 이야기인지 유의해서 읽어 보자.
[보기 9.7]
우리집은 아파트 11층에 있는데 내 발로 걸어서 올라 가려면 서너번은 쉬어야 되지요. 그런데 엘리베이터에 들어가 11이라는 숫자만 누르면 쪼르르 11층까지 올려다 주는 이 공간이 너무나 감사해서 문이 열려 나올 때는 "고맙다"하고 툭 치고 나옵니다. 차를 기다릴 때 내 앞에 와서주는 차는 너무나 고맙지요. 호주머니에 기백만원이 들어 있어도 차가 오지 않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내릴 때에는 꼭 "고맙습니다" 하는 한마디가 나와 기사님의 마음을 흐뭇하게 해 줄 것입니다. 식당에서 음식을 먹고 나올 때 "잘 먹었습니다" 하고 하면 기분 좋은 식당 주인은 "안녕히 가십시오. 또 오십시오" 하며 더욱 더 깨끗하고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야지 하고 생각할 것입니다. 내가 사고파 하는 물건이 없으면 짜증이 나겠지만 그 물건 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스럽고 기분좋고 고마운 일입니까?
-- 조 순 성, "감사하는 마음" 중에서
이 글은 그 소주제문이 겉으로 안 드러나 있지만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행동한다"는 필자의 의도가 잘 드러나 있다. 각 행동마다 감사하는 마음이 넘쳐나고 있기 때문이다.
(2) 소주제문이 표면화되는 서술법의 글 - 설명적 서사문
앞에서 보았듯이 본래의 서사법은 이야기 내용만 들려 주고 그 의미는 독자로 하여금 파악하게 하거나 느끼게 하는 것이다. 특히 소설 작품 속의 서사법이 그러하다. 그런데 일반 수필이나 이야기 들을 소개하는 글에서는 사건 전개의 과정과 함께 그 의미를 필자가 파악한 대로 적어서 나타내는 일이 많다. 말하자면 이야기가 암시하는 의미를 나타내는 소주제문을 지어서 단락의 첫머리나 끝에 놓아 두는 것이다. 이런 소주제문은 사건 진행 과정의 일부가 아니고 필자가 그 이야기의 의미를 간추린 설명 문장이다. 그래서 이런 서사법의 글은 "설명적 서사문"이라 부르기도 한다.
다음 보기는 옛날 고사를 소재로 한 것인데 그 이야기만 들려 주는 경우와 소주제문(마지막 문장)을 내세워 그 의미를 필자 나름으로 해석해 주는 경우는 차이가 있다.
[보기 9.8]
어느날 저녁 때 임금이 대궐 안을 산책하고 있었다. 우연히 주방 앞을 지나다 보니 수랏상을 마련하는 여자가 홍시를 혀로 핥아서 닦고 있었다. 임금은 못 본 체하고 그 앞을 지나쳤다. 그 이튿날 아침에 수랏상에 그 홍시가 올라 있었다. 임금은 은근히 화가 치밀어 그 여인에게 물었다. "음식은 어떻게 해야 깨끗한고?" 여인은 가슴이 철렁했다. 임금이 홍시를 핥는 것을 보신 것이라고 짐작이 갔기 때문이다. 여인은 금시 대답하여야 되었다. "아니 보시면 깨끗하나이다." 임금은 이 재치있는 대답을 듣고 입가에는 흐믓한 미소가 서렸다. 그것에 그치지 않고 후한 포상을 하라는 분부가 뒤따랐다. 이렇게 재치가 위기를 모면케 해 주는 일이 있다.
--임정현, "감의 맛" 중에서
윗 글과 같은 경우에 소주제문은 필수적인 것은 아니지만 그것을 나타내는 쪽이 필자가 의도하는 소주제를 뚜렷이 드러내는 효과가 있다. 이 이야기는 관점에 따라 딴 의미로 해석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임금의 덕에 중점을 두어 "지혜를 사랑하는 임금의 후덕"과 같은 소주제로 파악할 수도 있을 것이다.
다음 이야기는 이솝의 어렸을 때 일을 들려 주는 일화이다. 이 이야기의 소주제와 소주제문을 생각해 보자.
[보기 9.9]
이솝이 어렸을 때의 일이라고 한다. 선생님이 이솝에게 공중 목욕탕에 사람들이 많은 가를 알아보고 오라고 시켰다. 한참후에 돌아온 이솝은 "한사람밖에 없다"고 보고했다. 선생님은 그러면 됐다면서 이솝을 비롯한 제자들을 데리고 목욕을 하러 공중목욕탕엘 갔다. 이솝의 말과는 달리 목욕탕은 발을 들여 놓을 틈도 없을 만큼 초만원이었다. 놀란 선생님이 이솝에게 물었다. 도대체 이게 어찌된 일이냐. 이솝은 대답했다. 제가 왔을 때 목욕탕 정문 입구에 큰 돌이 하나 버티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걸려 넘어지고 발을 채이곤 했습니다. 아무도 그돌을 치우지 않고 피해서 목욕탕으로 들어 갔습니다. 그 광경을 지켜 보던 한 사람이 혼자서 땀을 뻘뻘 흘리며 돌을 치워 놓고 목욕탕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사람이라고 다 사람입니까. 제 눈에는 그 돌을 치운 "그사람"만이 사람으로 보여 목욕탕에는 "사람은 한 명밖에 없다"고 한 것입니다. 불후의 명작 "이솝우화집"을 남긴 천재성은 어릴 때부터 번뜩였나보다.
--<한국일보>1992.6.25.
위의 이야기를 들려 준 필자는 맨 마지막에 자기 나름으로 파악한 소주제를 나타내는 해석 문장 곧 소주제문을 제시하였다. 이 필자는 위 단락의 소주제를 "이솝의 천재성을 보여 주는 것"으로 파악하고 그것을 마지막의 소주제문으로 집약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일화는 그 내용으로 보았을 때 "참된 사람다움"을 소주제로 한다고 할 수도 있다. 어찌 보면 이런 소주제가 더 타당성이 높을 것으로 생각되기도 한다. 이런 점에서 볼 때에 이야기 단락에 소주제문을 나타내는 것은 여러 가능한 소주제 중에서 필자가 파악한 것을 명시하는 효과가 있음을 확인할 수가 있다. 만약 위와 같은 경우에 그런 필자 자신이 제시한 소주제문이 없다면 일반 독자는 "참된 사람다움"이라고 파악할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다음 비유에서 보여 주는 이야기도 필자가 파악한 소주제가 나타나 있다.
[보기 9.10]
어느날, 암소와 돼지가 만나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가던 끝에 돼지가 불만스러운듯이 암소에게 타박을 하기 시작했다. "왜 사람들은 항상 너의 온순함과 친절함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며 칭찬하는지 모르겠다. 물론 네가 우유와 크림을 제공하고 있다는 사실은 안다. 그러나 생각해 보라. 따지고 보면 돼지인 나는 암소인 너 보다 더 많은 것을 사람들에게 주고 있지 않느냐. 나는 베이컨과 햄을 주고, 털도 주고 있다. 심지어 사람들은 내 발까지도 소금에 절여 알뜰하게 먹어치우지 않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며 낙심한듯시 한숨을 내쉬었다. 잠잠히 듣고 있던 암소가 조심스럽게 한마디 했다. "글쎄, 나도 잘 모르겠는데…. 아마도 나는 살아 있는 동안에도 사람들에게 우유와 크림을 주기때문이 아닐까?" 다소 외람되고 불경스럽게 들릴지는 몰라도, 따지고 보면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는 인간도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지위고하에 관계없이 이 암소형과 돼지형의 생활 사이를 오락가락하며 사는 듯하다.
--정구영, "돈이 뭐길래" 중에서
위 글은 맨 마지막의 문장에서 필자가 파악한 소주제문을 보여 주고 있다. 위 이야기도 사람에 따라 여러 가지 소주제로 파악될 수 있을 것이므로 이렇게 필자 나름의 해석을 소주제문으로 보여 주면 필자의 의도가 확고히 드러나게 될 것이다.
그런데 다음 이야기는 위 글의 딴 단락에 나오는 것인데 필자의 확실한 견해가 겉으로 드러나 있지 않다.
[보기 9.11]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세계 제2차 대전으로 혼란스럽던 1943년 무렵, 만주 봉천에 와 있던 외국인 선교사들이 부득불 모두 고국으로 돌아가야만 할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A선교사는 평소에 애지중지하던 책, 가구, 집기 등을 단단히 묶어 은밀한 곳에 숨긴 다음 창문이나 현관문 등 문이란 문은 전부 잠근후 못질까지 하고 떠났다. 반면 B선교사는 평소에 아끼던 책, 책상, 침대, 옷장, 재봉틀, 하다못해 부엌 집기에 이르기까지 모두를 가까이 지내던 이웃들에게 골고루 나누어 주고 떠났다. 3년 후 전쟁이 끝나 두 선교사가 모두 돌아오게 되었다. A선교사가 돌아와 보니 깊숙이 감춰둔 재산은 하나도 남김없이 도둑을 맞았고, 집도 폭격으로 부서져 당장 들어가 잠잘 곳도 없었다. B선교사도 돌아와 보니 그의 집 역시 폭격으로 거처할 곳이 없었다. 그러나 그의 사랑을 입은 많은 이웃들이 제각기 자기집에 머물기를 간청하였고 필요 하시겠다며 3년전 나누어 주었던 가구며 집기 등을 도로 가져왔다고 한다.
이 예문에는 이야기만 서술되어 있고 소주제문은 명시되지 않았다. 이 이야기는 소주제문이 무엇인지 파악되기 쉽게 되어 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가령, 윗 글을 읽는 이들에게는 "주는 것은 받는 것이다," "남에게 베풀어야 한다" 따위의 소주제가 쉽사리 떠오를 수 있을 것이다. 그래도 필자가 소주제문을 드러내지 않으면 독자가 파악한 소주제는 필자가 의도한 바와는 반드시 일치되지 않을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문학적인 수필 따위에서는 여운을 남기기 위해서 일부러 소주제문을 제시하지 않는 일도 많으나 어떻든 필자의 뜻을 좀더 명확히 나타내어서 독자가 그렇게 이해해 주기를 바라는 경우에는 소주제문이 명시되어야 할 것이다.
다음 보기는 어린 시절에 겪었던 일을 이야기한 글인데 앞 부분에 필자가 그 의미를 요약한 소주제문이 나타나 있다.
[보기 9.12]
아홉 살 나던 해의 어느 날 겪었던 끔찍한 사건은 나로 하여금 삶의 환희를 맛볼 수 있게 했다. 사건이 난 그날 오빠와 나는 시골의 목장에서 겨울에 쓸 사료를 높이 쌓 아 둔 마른 풀더미 곁에서 놀았다. 풀더미에는 때때로 굴처럼 구멍이 뚫려 있었는데 우리는 그곳을 들락거리면서 장난을 하곤 했다. 그 날도 나는 유달리 깊고어두운 구멍을 발견하고는 그 속으로 기어 들어갔다. 한참 들어가다가 다시 돌아올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2,3미터를 더 들어가자 구멍이 막혀 버려 오지도 가지도 못하게 되었다. 나는 산더미같이 쌓인 풀 속에 갇히고 만 것이다. 안간힘을 다해 구멍을 뚫고 나오려 해 보았으나 허사였다. 있는 힘을 다해 소리를 칠 수 밖에 없었다. 오빠와 일꾼들이 달려와서도 한참 만에야 어느 지점에서 소리가 나는지를 알 수가 있었던 모양이다. 나는 그 어둡고 답답한 굴 속에서 숨을 죽이며 구조를 기다리고 있었다.얼마 동안이 지나서야 구조자들의 손길이 와 닿았다. 나는 드디어그 구렁에서 들려 나오게 된 것이다. 바로 그 순간에 맛보았던 그신선한 공기와 찬란한 햇빛을 나는 영원히 잊지 못한다.
-- 카드린 설리반, "<단락 연습>에서 인용 번역"
이 글은 단순한 경험담이 아니라 그 의미 곧 경험자에게 "큰 삶의 환희를 느끼게 했다"는 소주제를 펼치고 있다. 그 주제는 글의 첫머리에 나타나 있고 그 뒤에 겪은 이야기가 서술되어 있다. 그래서 이 글은 그런 경험한 사실의 의미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엮었음이 분명히 드러나고 있다.
요컨대, 아무리 짧은 글이라도 그 자체 안에 핵심이 있고 그것을 중심으로 내용이 엮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는 마치 모든 조직이 그 우두머리를 중심으로 짜여져서 한덩이가 되어 움직이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이런 의미를 명시적으로 나타내는 것이 소주제문이며, 본디 그런 소주제문이 안 나타나는 서사법의 글에서도 그것이 나타나면 그 글의 의미가 한층 더 뚜렷하게 드러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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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핵심이 있는 이야기 단락을 쓰는 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