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법은 단락의 주요 낱말을 정확히 뜻매김하는 것이다. 낱말의 뜻매김은 흔히 사전 등에서 볼 수 있는 것인데 설명법에서는 이것을 쓰는 일이 많다. 소주제문을 이해시키는 데는 그것과 관련된 주요 낱말을 먼저 풀이해야 하기 때문이다. 뜻매김은 물론 모든 설명문에서 다 쓰이는 것은 아니고 풀이를 해야 할 낱말이 단락 안에 나타나는 경우에 나타나는 것이다. 어떻든 이 정의법은 설명법의 한 기본 전개법 가운 데 하나이다.
단락에서 주요 낱말을 뜻매김할 때에는 사전에 있는 것을 인용하기도 하나 자기 나름으로 알기 쉽게 풀이하는 수도 많다. 사전이나 해설서 등을 참조하거나 자기 나름대로 생각한 바를 바탕으로 알기 쉽게 뜻을 정의하여 쓰는 일은 흔히 있는 것이다. 따라서 정의법의 기본 요령을 알아 두면 많은 도움이 된다.
정의법의 기본 요령
정의법(definition)은 기본적으로 다음과 같은 형식으로 이루어진다.
(1) 사람은 말하는 동물이다.
이러한 정의는 대개 두 가지 부분으로 이루어진다. 정의받는 부분과 정의하는 부분이 그것이다. 그런데 두 부분은 다음에서 보듯이 등식 관계로 맺어져야 한다.
[정의받는 부분] = [정의하는 부분]
사람 = 말하는 + 동물
<변별 요소> <범주>
[정의받는 부분]이란 정의하고자 하는 대상을 말한다. 위에서 왼편의 "사람"이 이 부분에 해당한다. 바른편의 [정의 하는 부분]은 그 대상을 뜻매김하는 쪽이다. 이 부분은 <변별 요소>와 <범주>로 이루어지는 것이 상례다. <범주>란 정의받는 부분이 일차로 속할 수 있는 범주를 가리킨다. 위에서 "동물"이 그러한 범주이다. 그런데 이런 범주에는 다른 동물도 포함되므로 그런 것들과 구별짓는 특질을 첨가할 필요가 있게 된다. 그것이 <변별 요소>이며, 위의 경우에는 " 말하는"이 그 구실을 한다.
정의는 정의 받는 부분과 정의하는 부분이 등식이 될 수 있도록 그 소속 범주와 변별 요소를 알맞게 고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 소속 범주가 너무 커도 안 되고 작아도 안되며, 또 변별 요소를 잘못 선택하여 다른 것들과의 정확한 구별을 짓지 못하여도 안 된다. 가령, 위의 경우에 <범주>를 "동물" 대신에 "생물" 따위로 한다면 그 소속 범위가 너무 넓게 될 것이고, "여자" 따위로 한다면 그 소속 범주가 너무 작아서 문제가 된다. 또 <변별 요소>를 "말하는" 대신에 "두 발로 걷는"이라고 한다면 다른 동물에도 그러한 속성을 가진 것들이 포함될 것이며, 반대로 "글을 쓰는"이라고 한다면 글을 못쓰는 사람은 사람이 아니라는 말이 될 것이다.
범주와 변별 요소가 알맞게 되어 양편이 등식 관계를 이루는 정의는 다음과 같이 두 부분의 어순을 바꾸어도 명제가 성립되는 것이다. 가령 위의 정의에서처럼 "말하는 동물은 사람이다"
와 같이 바꾸어서 그 뜻이 달라지지 않을 때에 바른 정의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은 두 발로 걷는 동물이다"와 같이 정의한 경우라면 "두발로 걷는 동물은 사람이다"가 될 것인데 바른 것이 못된다. 두발로 걷는 동물에는 "닭"이나 새 같이 사람이 아닌 동물도 포함되기 때문이다.
대체로 바른 정의의 예를 더 들어 보이면 다음과 같다. 이탤릭체로 된 부분이 변별 요소인데 그것은 상당히 긴 경우도 있음을 알 수 있다.
(2) 글은 글자로 적은 말이다.
(3) 말은 생각과 느낌을 나타내는 음성기호이다.
(4) 사랑은 아끼고 위하여 정성과 힘을 다하는 마음이다.
(5) 두메란 도시에서 멀리 떨어져 사람이 많이 살지 않는 곳이다.
(6) 사람이란 생각과 말을 할 줄 아는, 지구상에서 가장 발달한 동물이다.
(7) 아버지란 자기를 낳은, 어머니의 남편, 또는, 자식을 가진 남자를 자식에 대한 관계로 이르는 말이다.
(8) 어머니란 자기를 낳은 여자 또는 자식을 가진 여자를 자식에 대한 관계로 이르는 말이다.
정의법에서 우리가 특히 유의하여야 할 사항이 있다. 위에서 지적한 대로 정의하는 항목을 잘 조절하여 양편이 등식 관계를 이룰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기본되는 사항이다. 그밖에도 다음의 몇 가지는 반드시 지켜야 좋은 정의가 된다.
첫째로, 정의받는 항목에 나와 있는 낱말이 정의하는 쪽에 다시 나타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다음에서처럼 "문화"라는 말이 양쪽에 나타나면 일종의 순환 정의가 되어 버린다. 순환 정의는 정의를 하나마나 한 것이 되고 만다.
(9) 문화란 한 민족이나 집단이 공동으로 이루어 놓은 문화 유산이다.
둘째로, 정의하는 쪽에 어려운 말이 나타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다음에서처럼 "광물질"과 같은 어려운 말이 정의하는 쪽에 나타나면 그것을 다시 정의해야 되니 정의의 효과가 문제된다.
(10) 물은 광물질의 일종이다.
셋째로, 반대말 등을 써서 부정적 정의를 하는 것도 금물이다.
(11) 여자는 남자가 아닌 인간이다.
(12) 애국심은 맹목적인 나라 사랑은 아니다.
(11)과 같은 경우에 "여자"를 알려면 다시 "남자"를 알아야 할 것이고, (12)와 같은 경우에는 "맹목적인 나라 사랑"이 무엇인지 알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이런 부정적 표현도 때로는 설명에 효과가 있지만 바른 정의는 아니다.
넷째로, 정의법은 비유법과는 다르다. 정의법은 위에서 보듯이 정의받는 요소가 소속되는 상위 범주를 바탕으로 이루어진다. 가령, "글"은 "말"을 바탕으로 정의하고 "사랑"은 "마음"이라는 범주에 속하는 것이라고 하는 따위이다. 그러나 비유법에서는 전혀 다른 범주에 소속시키는 것이 보통이다.
(13) 사랑은 우리를 동여 매는 끈이다.
(14) 사랑은 사람의 마음을 홀리는 달콤한 사탕이다.
에서와 같이 "끈"이나 "사탕"은 "사랑"과 본질적으로 관련이 없는 범주이다. 다만 그것은 비유적으로 관계를 가질 뿐이다. 이런 비유적인 표현도 때로는 중요한 것이지만 정의와는 다르다.
정의법을 익히려면 위에 말한 유의점을 고려하면서 정의를 많이 시도해 보는 것이 필요하다. 일차 단게로는 사전이나 그밖의 설명서 따위를 참조하거나 그런 곳에 나와 있는 정의를 인용해서 정의를 마련해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러다가 딴 데 나와 있는 정의에 문제가 있다든지, 마음에 차지 않으면 그것을 바탕으로 자기 나름으로 뜻매김을 시도해 보는 것이다. 이를테면,
(15) 사랑이란 가치를 향한 마음의 세찬 운동이다.
과 같은 것은 흔히 사전 들에서 보는 일반적 정의와는 다르다. 말하자면 자기 나름의 독특한 정의이다. 이런 개성미 있는 참신한 정의법을 쓰는 것은 글의 참신한 맛을 북돋울 것이다.
정의법으로 단락을 이루는 요령
정의법은 단독으로 또는 다른 설명법과 어울려서 단락을 이루는 수가 많다. 단락의 소주제나 그와 관련된 주요 낱말을 정의하는 것은 글의 내용을 전개하는 한 기본 방식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단락 전개에서 정의법이 활용되는 예를 살피면서 그 요령을 익히기로 한다.
(가) 정의법은 한 단락의 소주제문을 이루는 수가 있다. 곧 소주제문 자체를 정의법으로 규정하고 그것을 뒤에서 풀이하여 펄침으로써 단락을 이루는 것이다.
[보기 8.6]
사람이란 말하는 동물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사람 말고는 말하는 능력을 가진 딴 동물이 없으니 말이다. 앵무새가 말을 하지 않느냐고 할지 모르지만, 그것은 말의 흉내이지 본격적인 언어 능력을 구사하는 것은 아니다. 오늘날까지도 많은 학자들이 사람 밖의 동물 가운데 말하는 부류가 있는지 열심히 찾아보고 있지만, 결론은 사람만이 말하는 능력을 천부적으로 가지고 태어난다는 것이다.
윗 단락에서는 첫 머리에 나타난 소주제문이 정의법으로 규정되어 있고 그 뒤에 그것을 여러 모로 풀이하여 그 소주제문을 뒷받침하였다. 결국 이 단락에서는 소주제문으로 내세운 정의를 다시 풀이한 것이다.
다음 단락은 낱말 정의의 필요성을 제기하고 거기에 답하는 정의법에 따라 전개되고 있다.
[보기 8.7]
우선 새 말이란 무엇인가? 새 말은 어떤 것을 지칭하는 것인가 하는 것부터 규정해야 할 필요가 있다. "새 말"이란 이미 있었거나, 새로 생겨난 개념이나 사물을 표현하기 위해 지어낸 말, 그리고 이미 있던 말이라도 새 뜻이 주어진 것을 통틀어 일컫는다. 다른 언어로부터 사물과 함께 차용되는 외래어도 여기에 포함된다.
--남기심, "새말[新語]의 생성과 사멸"에서
이 단락은 소주제문에서 제기되는 새 말의 정의로 형성되어 있다.
다음 보기에서는 소주제문 뿐 아니라 그것을 풀이하는 내용 중에도 정의법이 쓰이고 있다.
[보기 8.8]
언어는 일종의 기호이다. 기호란 어떤 의미를 표상하는 감각적 표지이다. "어떤 의미"는 기호의 내용이요, "감각적 표지"는 기호의 형식이다. 곧 기호는 일정한 내용을 나타내는 형식을 갖추고 있는 것이다. 여러 갈래의 수학 기호 또는 부호는 물론 교통 신호, 여러 가지 형태의 통신 부호들은 다 일정한 내용을 표상하는 형식을 갖추고 있는 기호들이다. 우리의 언어도 우리의 생각과 느낌이라는 내용을 표상하는 음 성이라는 형식을 갖추고 있으므로 기호적인 성질을 가지고 있다.
위 예문에서는 소주제문(첫문장) 자체가 정의의 성격을 띠고 있으며 그 뒤에서는 그 소주제문에 나타나는 "기호"라는 낱말을 뜻매김함으로써 뒷받침을 하고 있다. 이 뜻매김의 뒤에는 그것을 더 자세히 풀이하는 문장들이 이어지고 있다.
(나) 소주제문에 나오는 주요 낱말을 뜻매김하여 펼치는 경우가 있다. 소주제문에 나오는 낱말 중에 중요한 것이 있으면 그것을 정의함으로써 단락 전개의 실마리를 삼는 것이다. 정의법은 이런 방식으로 쓰이는 일이 가장 많다.
[보기 8.9]
물갈이하라고 하면 곧 정치판의 사람 바꾸기로 통하는 시대다. 그러나 그건 원래 농약 없이 무공해 농법으로 벼를 기르던 옛 사람들의 농사 기술의 하나였다. 한겨울 무논에서 팽이 치고 썰매 타던 추억을 가진 사람들은 왜 가을 걷이가 끝난 논에 물을 가득 채워 겨울을 났는지 생각해보라. 추수 후 벼 '그루터기'엔 이화명충 따위의 해충알이 서식하며 겨울을 난다. 그것들을 수장(水葬)해 버리려는 선인들의 지혜가 바로 물갈이였다. 10년 전의 우리말 사전엔 물갈이는 곧 '진갈이'라고 해서 농업 용어 하나만 있었다. 요즘 사전에는 '어항이나 수영장의 물을 갈아주는 것'으로 한 항목이 더 생겼다. 어항 수영장 따위 현대적 수요가 생기기 전엔 '물을 갈아준다'는 뜻은 없었던 것이다. 새로 통용되어 세(勢)를 가지면 사전에 오르는게 말이다. 이제 농약 없이 물갈이 농법으론 논농사를 할 수도 없다. 그래서 앞의 뜻은 죽어가고 나중 생긴 뜻은 더 살아나는 것이 아닐까.
-- "횡설수설," <동아일보> 중에서
위 단락에서는 소주제문에 나오는 "물갈이"라는 용어를 여러 가지로 뜻매김하면서 풀이하고 있다.
다음 보기도 소주제문에 나오는 말을 뜻풀이하는 방식으로 펼친다.
[보기 8.10]
사람에겐 칠전팔기하는 불굴의 정신이 중요하다. 곧 일곱번 넘어져도 여덟 번 일어나 끝내 뜻을 이루려는 불굴의 정신이 무척 값진 것이다. 우리가 잘 산다는 의미는 무엇인가? 나는 기능공이건, 중급기술자건, 구멍가게 배달꾼이건, 경영자건 주변의 난관을 극복하고 본인에게 주어진 업무를 주위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성심전력으로 완수하면서, 긍정적으로 사고하고 미래를 꿈꾸며 항상 일에서 즐거움을 찾는 사람이 잘 사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 조동식, "초석이 된 고통" 중에서
위 단락에서는 소주제문에 나오는 "칠전팔기"라는 어구를 뜻매김하는 방식으로 단락 전개의 실마리를 삼고 있다. 그 뒤에는 "...잘 산다는 의미는 무엇인가?"라는 물음을 제기하여 설명하고 있지만 정의법은 아니다. 자기의 견해를 나타낸 것이기 때문이다.
(다) 소주제문과 관련된 주요 낱말을 뜻풀이하는 경우도 많다. 소주제문에는 직접 나타나지 않지만 그것을 전개하여가는 과정에서 필요한 낱말을 정의함으로써 뒷받침을 강화하는 것이다.
[보기 8.11]
그래서 쓰레기터에 갈 것도 밥상에 오르게 되는 경우가 생긴다. 그것이 바로 "쓰레기"와 "씨레기(시래기)"이다. 시들어 버린 무청이나 배춧잎 같은 쓰레기를 그냥 버리지 않고 말려 두었다가 음식을 만들어 먹으면 별미가 난다. 비타민 C도 많아 건강에도 한결 좋다고 한다. 궁해서만이 아니었다. 값어치가 없다고 생각한 것에서 오히려 새롭고 귀중한 가치를 끌어내는 것이 한국 문화의 한 원형이기도 한 것이다. 이따금 외국 사람들이 몬드리안의 그림과 견주는 한국의 조각보 역시 마찬가지다. 버려진 헝겊조각을 이어서 보자기를 만들면 누더기가 될 것 같은데 사실은 그 반대로 오묘한 무늬와 현란한 색체가 조화를 이룬 초디자인 작품이 생겨난다. 요즘 쓰레기의 재활용 문제가 전 세계의 과제로 등장하고 있지만 한국의 씨레기와 조각보의 발상은 리사이클링(자원재활용)의 원조요, 그 정신의 모형이라 할 수 있다.
--이어령, "쓰레기" 중에서
다음 보기에서는 "작심삼일"이라는 말을 풀이하면서 단락을 전개해 간다. 이 말은 소주제문에 나오는 것은 아니지만 (첫 문장이 소주제문은 아니므로), 소주제와 관련된 말이기에 뜻풀이를 하는 것이다.
[보기 8.12]
"작심삼일(作心三日"이라는 말이 있다. 결심이 오래 가지 못하는 경우를 말한다. 그런데 내 경우는 삼일이 아니라 "작심일일"로 끝나 버리는 때가 허다하니 혼자 부끄러울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전에 술을 마실 때는 술을 좀 참는 것이 그렇게도 어려웠었다. 평소에는 아무 일 없다가도 막상 술을 끊겠다고 작정을 하면 어김없이 첫날부터 공술이 생겨 "산통"을 여지없이 깨버리곤 했으며 혹은 피치못할 사정의 미끼에 걸려 들어 곤혹을 치르기 일쑤였다. 이렇게 한번 무너진 결심은 다시 세우기가 어려웠다. 유혹에 약한 것이 큰 흠이다.
-- 강길웅, "작심삼일" 중에서
다음 글은 글 전체가 온통 뜻풀이로 이루어지고 있다. 그 뜻을 풀면서 필자 나름의 해석을 붙여서 그 깊은 뜻을 이해하는 데 도움를 준다. 이런 정의법을 쓰는 데에는 필자 자신의 해박한 지식이 필요하다.
[보기 8.13] 소형지향 사회(小型指向 社會)
넓이를 재는 평(坪)은 한 사람이 큰 대(大)자로 누워 옆 사람과 부딪치지 않는 넓이다. 농토를 재는 단위인 마지기도 한 장정이 소를 몰고 하루에 갈 수 있는 면적이다. 젓가락 길이도 교자상의 반대편 가장자리에 놓인 음식을 집어 먹을 수 있는 길이다. 이처럼 한국인의 도량형(度量衡)은 신체를 기준으로 한 인간적인 척도라 하여 신척(身尺)이라 한다. 미터법으로 일률화한 서양의 도량형은 과학을 연구하는 척도로서는 십상이지만 일상 생활에서 쓰는데는 우리 선조들이 써 내린 신척 이상으로 편리한 도량형은 찾아볼 수가 없다.
신척문화(身尺文化)가 얼마나 발달했는지 음식의 단위마저도 가장 알맞게 먹을 수 있는 인간적이고 도덕적인 분량으로 삼고 있음을 미뤄 알 수가 있다. 한 홉(合) 두 홉하는 양을 재는 척도는 한사람이 한 끼에 먹을 수 있는 양식분량이요 한꺼번에 최대로 마실 수 있는 물의 분량이라고도 한다. 고기 한 근은 대가족의 평균수인 12명이 한 끼에 국을 끓여 먹는데 가장 적정한 근수였다. 명태 조기 청어 고등어 등 한국 사람이 잘 먹는 생선의 크기는 비슷비슷한데 지지거나 조리는데 세토막 내기에 가장 알맞는 크기다.
우리 전통 식문화의 기본구조는 삼상(三床)이었다. 조손(祖孫) 겸상하는 할아버지 상과 가장인 아버지 상, 그리고 할머니를 위주로 한 여타 식구들의 상이 삼상이다. 이 삼상에 한토막씩 놓을 수 있게끔 세 토막 낼 수 있어 비로소 한 마리인 것이다. 그래서 민어같이 세 토막 내기에 너무 큰 생선은 삼상에 맞추어 잘라 팔았고 삼상에 맞추기에 너무 작으면 "손"이라 하여 작은 새끼 한 마리를 덤으로 배때기에 끼워 팔았던 것이다. 밭에서 야채의 단을 묶을 때도 눈어림으로 손으로 집어 묶는 분량을 역시 "손"이라 했는데, 미나리 손이 다르고 시금치손이 달랐으며 쑥갓손이 각기 달랐던 것이다. 곧 12명의 기본 식구가 한 끼에 가장 알맞게 먹을 수 있는 분량이 손이요, 야채의 풍미에 따라 손의 양이 늘고 줄었음은 척도에 노예가 된 서양에 비해 그 얼마나 인간적인가.
핵가족화가 급격히 진행되면서 한식구가 한 끼 먹기에 가장 알맞는 분량으로의 소형화가 급작스레 진행되고 있다 한다. 이를테면 슈퍼 마켓에서 가장 좋은 값을 받을 수 있는 야채의 크기는 종전 무게의 절반 가량의 소형 배추, 길이 20cm를 넘지 않는 소형무, 10cm를 넘지 않는 소형 오이 하는 식으로 호박 가지 감자 고구마 홍당무 수박에 이르기까지 소형지향이요, 이보다 크면 잘라 파는데, 값이 떨어지게 마련 이라 한다. 핵가족 제도가 한국인의 신척(身尺)을 대폭 줄여 놓은 것이 된다.
현대는 남성화 대형화 사회로부터 여성화 소형화 사회로 급변하고 있다 하고 "작은 것은 아름답다(스몰 이스 뷰티풀)"라고 말한 것은 슈마이헤르마하다. 그 아름다운 작고 적은 것이 쓸모까지 있게 되다니 단 한 숟가락의 보리죽에 굶주렸던 전쟁 세대에게는 생각이 미치지 않아 어리둥절하기만 하다.
--이규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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