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상술법이란?
상술법(詳述法)이란 사물을 알기 쉽게 자세히 풀이하는 것이다. 상술법에는 앞에서 말한 정의법도 포함될 수 있으나 여기에서는 정의법 이외의 여러 가지 방법으로 소주제의 내용을 누구나 알기 쉽게 풀어나가는 것을 주로 가리킨다.
[보기 8.14]
(1) 말은 사람의 생각이나 느낌을 나타내는 음성 기호이다. (2) 말이라는 것은 우리가 어떤 생각이 날 때, 또 어떤 느낌이 피어 오를 때 그것을 말소리를 통하여 밖으로 드러내는 연모이다. (3) 말은 우리 마음 속에 괴이는 생각이나 느낌이라는 샘물을 말소리라는 물길을 통하여 묻사람의 귀에 흘려 보내는 수단이라 할 수 있다.
(1)은 앞에서 살핀 정의법으로 풀이한 것이다. (2)는 일종의 상술법으로서 누구나 쉽게 알아 들을 수 있게 자세히 풀이하였다. (3)은 (2)보다 한 걸음 나아가 비유를 써서 더 잘 알아 들을 수 있게 풀이하였다. 상술법은 정의법의 틀에 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되도록 자세히 풀이하는 것이다.
상술법에서는 자기의 관점에서 사물을 바라보고 해석하거나 자기 나름의 견해를 덧붙여서 풀이하기도 한다.
[보기 8.15]
글이라는 것은 그 사람 자체다. 글은 그 사람의 인격, 생각, 느낌 등 온갖 삶의 모습을 거울처럼 반영하는 것이다. 그러니 글을 쓴다는 것은 자기 자신을 온 천하에 공표하는 것이다. 곧 글은 단순한 표현 수단이 아니라 그 사람의 혼과 넋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다.
윗 글에서는 객관적인 정의법과는 달리 필자가 보는 관점에서 "글"이 무엇인지를 설명하고 있다. 각 문장이 다 그런 상술을 하는 문장들이다. 이런 상술법에서는 "곧," "즉" 따위 접속어를 연상하면서 앞말과 동일한 뜻의 풀이를 하도록 하는 것이 상례이다.
다음 글은 자기의 견해를 주제로 내세우고 그것을 풀이하는 경우이다.
[보기 8.16]
표준어의 가장 대표적인 기능은 통일의 기능이다. 한 나라 안에서의 방언차(方言差)는 심하면 의사 소통이 안 될 정도로 클 수도 있지만, 그렇지는 않더라도 서로 자기들의 방언을 쓴다면 의사 소통에 불편을 겪게 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표준어 제정의 일차적 목표는 이러한 불편을 해소하기 위한 것임은 널리 알려진 일이다. 즉 표준어는 한 나라 국민으로 하여금 공통된 의사 소통의 수단을 갖게 해주는 공통어(共通語)의 구실을 한다. 달리 말하면 한 나라 국민을 원활한 의사 소통에 의해 하나로 묶어 주는 일을 하는 것이다. 이것이 앞에서 말한 이른바 표준어의 통일의 기능이다.
<이익섭, "표준어의 기능">
윗 글은 첫머리에 주제로 제시한 바를 그 뒤의 문장들이 풀이함으로써 주제를 이해하기 쉽게 표출하였다. 그래서 주제가 선명하게 파악되고 있는 것이다.
다음 보기는 주제를 의문문 형식으로 제기하고 그것을 풀이하는 방식으로 서술하였다.
[보기 8.17]
자 그러면 말의 뜻이 깊다는 것은 무엇을 가리키는가? 어떤 낱말이나 글자의 뜻이 깊다는 것은 무엇보다도 오랜 쓰임의 역사를 전제로 한다. 세월의 때가 끼어야 한다고 할까. 오랜 세월 사용하는 동안, 여러가지 의미가 겹쳐진 의미들은 대개 인간 사회의 좋은 면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쓰인 것이기 때문에 긍정적 가치 평가에 관련되어 있다. 다시 말하면 뜻이 깊다는 것은 <1>오랜 역사를 가진 것, <2>여러가지 의미가 중첩된 것, <3>인간의 선의지(善意志)와 관련된 것이라는 세 가지 특성을 가지고 있다.
<심재기, "뜻이 깊다는 것">
첫 머리에는 주제와 관련된 "물음"을 제기하고 그것을 응답하여 풀어 가는 방식으로 주제를 구체화하고 있다. 이렇게 주제를 "물음"과 "응답"의 방식으로 하면 주제가 더 잘 드러 날 수도 있다. 이때 유의할 것은 그 응답이 잘 주어지도록 해야 한다. 물음과 응답 내용이 맞지 않는다면 주제는 그만큼 잘 안 드러날 것이다.
상술법에는 이른바 "환언법(換言法)"이라는 것도 포함된다. 환언법이란 앞에 말한 바를 딴 말로 바꾸어서 해석하는 것이다. 대개 "다시 말하면," "다른 말로 말하면" 따위의 접속어를 실마리로 하여 설명하는 것이 환언법이다.
[보기 8.18]
꽃샘 추위에 설늙은이 얼어 죽는다는 말이 있다. 꽃샘 추위란 이른 봄 꽃이 피기 시작할 무렵에 밀어 닥치는 늦추위를 말한다. (다시 말하면) 꽃이 피는 것을 샘내서 훼방을 부리는 추위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 꽃샘 추위이다. 이런 늦추위에는 허약한 늙은이들이 오히려 곤욕을 치르게 되는 일이 많게 된다. 겨울에는 추위 방비를 잘 해서 무사할 수 있었는데, 이제 봄이라고 해이한 마음으로 무방비 상태에 빠지게 되다가 큰 변을 당하게 된다는 것이다. (다른 말로 말하면) 뜻밖의 어려움에 희생자가 많으니 매사에 너무 성급히 굴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이 속담이 드러내는 속 뜻이다.
윗 글에서는 환언법이 두 번에 걸쳐 사용되었다. 괄호 안에 표시한 접속어가 그 실마리가 되어 있다. 첫째번 것은 "꽃샘추위"라는 어구를 풀이하는 경우이고, 둘째번 것은 앞에 나오는 표현을 다른 말로 간추려 보인 경우이다. 이런 접속어는 필요에 따라 표면화시킬 수도 있으나 그렇지 않고 속으로 되뇌이면서 쓰기도 한다. 위에서 그것을 괄호 안에 표시한 것은 겉에 안 나타낼 수 있음을 뜻한다.
상술법은 이른바 덧풀이법 또는 추가 설명법도 포함한다. 앞의 설명에 더 추가하여 풀이를 하는 경우도 일종의 상술법이다. 그만큼 더 자세히 풀이되기 때문이다.
[보기 8.19]
대지는 어느 누구에게도 소속될 수 없다. 땅은 수많은 생물들과 함께 우리 인류가 오랜 세월을 두고 땀흘려 일구고 가꾸고 거두어들이면서 의지해온 삶의 터전이다. 우리가 살 만큼 살다가 언젠가는 돌아가 묻힐 곳 또한 이 대지다. 우리들 삶의 터전이요 어머니이며 돌아갈 곳인 이런 대지가 어떻게 투기의 수단이 되고 탐욕의 도구가 될 수 있단 말인가. 우리는 이 대지 앞에서 항상 나그네로서 겸손함을 지녀야 한다.
-- 법정, "정직과 청빈의 덕을"
윗 글에서 이탤릭체로 쓴 부분이 덧풀이법으로 추가된 것이다. 이런 추가 서술에는 "또, 또한, 더구나, 특히" 따위 접속어가 쓰이는 일이 많다. 요컨대, 상술법에서는 무엇보다도 쉽고 알아 듣기 좋은 표현을 쓰도록 하여야 한다. 위의 각 보기에서처럼 알기 쉽게 설명하여야만 그 목적을 이룰 수가 있다. 만일 그것이 다음 보기에서처럼 더 쉽게 풀이되지 않는다면 바른 상술법이라 할 수 없을 것이다.
[보기 8.20]
정치란 욕망의 조절 기구라는 말이 있다. 사람은 누구나 편히 잘살고 모든 것을 누리고 싶어한다. 그 살벌한 무한 욕망의 인간들을 다스리고 가다듬어 약속된 틀안에 가두는게 정치라는 얘기다. 그렇다면 정치인은 매우 역설적인 존재가 아닐까. 그들은 무한 욕망이라는 인간의 치명적인 약점을 비집고 公約을 토해내며 살아간다. 그러면서도 그들이 부풀려 놓은 욕망의 풍선을 터뜨리고 조절해 버리니까.
- "횡설수설," <동아일보>
윗 단락은 맨 앞의 문장을 풀이하고 있지만 그것이 좀더 쉽게 설명되지 않고 어려운 표현들이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더구나 마지막 문장은 그 의미가 확실히 드러나지 않는 알쏭달쏭한 표현이 되어 있다. 이런 글은 상술법을 의식하고 쓴 것이 라고 할 수 없다.
다음 글에서도 쉬운 풀이가 아쉽다. 한 문장에서 모든 것을 정의하려는 것도 문제이지만 각 어구에 대하여 자세한 풀이가 거의 없다.
[보기 8.21] "소리-대화-몸짓" 어우러진 종합 예술
판소리란 한 사람의 소리굿이 북반주에 맞추어 긴 이야기를 소리(唱)와 대화체의 아니리(白), 劇的表現을 위한 동작인 발림(科)을 통해서 표현하는 劇音樂의 하나다. 또한 鼓手와 청중들이 "얼씨구" "좋다" 등의 외침을 통해서 唱者의 흥을 유발시키는 충미새가 들어가는 것이 판소리의 특징중에서 두드러진 점이다.
판소리는 이같이 문학음악 연극이 삼위일체가 된 종합 예술의 성격을 갖고 있는바 그중에서 소리와 장단을 포함한 음악적 성격이 판소리의 특징을 돋보이게 하며 "一鼓手, 一名唱"이란 말이 있듯이 북반주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
진양조 중모리 자진모리 장단을 주축으로 하여 중중모리 엇모리 휘모리등 다양한 장단을 구사하고 있다.
판이란 말은 놀이판 씨름판과 같이 무대를 가리키는 말이라고 할 수 있으며 한편 판을 짠다는 用例에 따르면 소리로 장단에 맞게 "판"을 짜서 부르는 소리라고 할 수 있다.
-- 權 五 聖, "'소리-대화-몸짓' 어우러진 종합예술" 중에서
첫 단락에서 "아니리","발림" 따위 용어를 다시 풀어 주지 않은 것은 문제이다. 이런 말은 "판소리"라는 말보다 오히려 일반 사람에게 더 잘 알려지지 못한 용어이므로 풀이해야 좋은 설명이 될 것이다. 둘째 단락에서도 풀이가 모자라다. 특히 "一鼓手, 一名唱"이라는 어구는 설명을 해 주어야 할 것이다. 셋째 단락에서 "진양조, 중모리" 따위 용어를 늘어 놓기만 하고 풀이하지 않은 것도 문제다. 다만, 마지막 단락에서 "판"이라는 말은 비교적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다른 단락에서도 이런 구체적인 풀이가 있었더라면 더 나은 설명 문이 되었을 것이다.
(2) 상술법으로 단락을 형성하는 실제 요령
앞에서 본 바와 같이 상술법은 소주제나 그와 관련된 표현들을 되도록이면 쉽게 풀이해서 독자의 이해를 돕는 것이다. 이제 이런 상술법으로 단락을 이루는 실제 요령을 익히기로 한다.
(가) 상술법으로 단락을 전개하려면 다음과 같은 접속 어구를 실마리로 삼는 것이 좋다.
(1) 자세히 말하면, 풀어서 말하면, 알기 쉽게 말하면
(2) 곧, 즉, 다시 말하면, 다른 말로 말하면
(3) 또, 또한, 특히
따위의 접속 어구를 속으로 되뇌이면서 써 가는 것이다. (1)의 예들은 소주제문을 알기 쉽게 해설할 때 쓰일 수 있다. 곧 소주제문 전체를 쉬운 말로 나타내고자 할 때는 이 접속어를 속으로 생각하면서 거기에 따라 쉬운 문장을 적어 보이는 것이다. (2)의 보기들은 대개 풀이한 것을 다시 한 번 딴 말로 풀이할 때 흔히 쓰인다. 곧 위에서 말한 환언법을 써서 재차 쉽게 풀어 말하고자 할 때 쓰이는 실마리가 될 것이다.
(3)의 접속어는 특별히 덧붙여서 설명할 때에 실마리로 삼을 수 있다.
다음 보기에서는 주로 (1)과 (2)의 접속 어구를 속으로 되뇌이면서 문장들을 이어 나감으로써 소주제문을 자세히 풀이 하였다. (물론 실제로 쓰인 글에 그런 접속어가 문장마다 드러나게 할 필요는 없다.)
[보기 8.22]
옛말에 생즉언(生卽言)이라 하였다. (풀어서 말하면) 산다는 것은 곧 말을 한다는 것이다. (곧) 아침에 눈을 떠서 저녁에 잠이 들 때까지 우리는 수천 마디의 말을 하고 산다. (다시 말하면) 말을 통해서 우리의 생각을 남에게 전하고 또 남의 생각을 들어서 서로 협력하고 사랑하며 사는 것이 인생인 것이다. (다른 말로 말하면) 삶이 있는 곳에는 반드시 말이 있게 마련이다.
보기는 첫 문장에 나타난 소주제문을 전개하는 문장을 이어 나갈 때마다, "풀어서 말하면", "곧" 따위의 어구를 실마리로 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런 어구를 마음 속으로 되뇌이면서(가끔 글의 표면에 나타나기도 한다) 그것을 길잡이로 삼아 각 문장을 지어서 이어 간다면, 결과적으로 소주제를 여러 각도로 풀이하는 글이 이루어지게 마련이다.
(나) 상술법은 정의법으로 풀이한 것을 다시 더 알기 쉽게 설명할 때에 쓰인다.
[보기 8.23]
사랑은 아끼고 위하여 정성과 힘을 다하는 마음이다. 사전에서는 사랑이라는 두 글자를 이렇게 뜻매김한다. 이는 사랑이란 자기보다는 대개 상대방을 되도록 소중히 여기고 받들어 주며, 상대방이 바라는 바를 다 이루어 주고자 온갖 정성을 다하려는 마음 가짐이라고 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사랑은 그 대상을 위하여 희생하는 마음의 태도라고 할 수가 있다.
윗 글에서는 첫 문장에 나오는 뜻매김의 문장을 자세히 풀이하는 상술이 따르고 있다. 이처럼 상술법은 정의에 덧붙여서 그 내용을 풀이하는 일이 많다.
다음 글도 맨 앞의 소주제문을 여러 각도에서 풀이하여 집중적으로 뒷받침하고 있다. 각 문장 사이마다 위에 말한 접속 어구가 들어갈 만하지만 이 글에서는 그런 것을 거의 안 쓰고 "그것은"이라는 대명사로 대신하고 있다.
[보기 8.24]
나에게 있어서 문학은 나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는 거울입니다. 나는 지난 30년 동안 매일 그것을 통해서 나 자신의 모습을 끊임 없이 관찰해 왔습니다. 그것은 이상한 거울이어서 겉모습만을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드러내지 않고자 하는 하는 것, 내가 감추고자 하는 것도 모두 보여 줍니다. 그것은 자신을 벌거벗은 상태로 보게 만듭니다. 그것은 늘 나 자신을 부끄럽게 만듭니다. 문학은 또한 내가 살고 있는 세계와 그 속에서의 삶의 모습을 내게 보여줍니다. 그것을 통해서 나는 내가 육안으로 보지 못하던 세계의 모습을 볼 수도 있고 다른 사람과 함께 사는 무질서한 것 같은 삶의 모습도 볼 수가 있습니다.
-- 김치수, "팔봉문학상 소감"
위 글처럼 접속 어구는 되도록 안 쓰고 내용적으로 이어지게 하는 것은 흔히 세련된 문필인의 글에서 볼 수 있다. 말하자면 접속어구는 속으로 되뇌어서 상술법의 실마리로 삼되 꼭 필요한 때에만 그것을 글 가운데 나타내는 것이다.
(다) 상술법은 사람을 대상으로 할 때에는 일부 행동이나 말씨 따위도 곁들여서 그 특징들을 되도록 자세히 풀이하게 된다.
[보기 8.25]
"강선생, 사회를 비판적으로 보는 사람이 양주를 마셔도 되는 거야. 난 이상하더라. 양주를 마시면서 비분강개 하는 거." 내게 가까운 선배 중에 이런 논리로 진보적 사고를 하는 지식인들을 비판하는 분이 있다. 그의 모든 말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리고 그의 세상을 보는 눈이나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들이 나와는 많이 다르지만, 내가 그를 존경하는 까닭이 하나 있다. 그는 언제나 말과 행동에 있어 일관됨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그는 세상을 밝게 보려한다. 남녀관계에서 성윤리에 대해 전통적인 가치관을 가지고 있으며, 우리 사회의 정치와 경제에 대해서도 "그래도 이만큼 살게 된 것 고마워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라는 기준으로 평가한다. 스스로의 행동에 있어서나 인간 관계, 돈에 대한 문제, 자신이 입신양명하는 문제에 있어 깨끗하고 정직해지려고 애를 쓰는 사람이다. 그래서 나는 그를 딸깍박이 보수주의자라고 부른다.
---강명구, "딸깍박이 보수주의자" 중에서
다음 보기는 첫 문장에 나타나 있는 소주제문을 여러 각도에서 풀이하고 있는 무게 있는 단락이다. 단락이란 이렇게 자세 한 뒷받침이 이루어질 때 충실하고 설득력을 드러내는 것이다.
[보기 8.26]
인촌 선생의 면모를 현민 유진오 박사는 '경륜가'라 표현한 바 있습니다. 인촌 선생의 평생의 동반자로서 인촌 선생의 사업을 막후에서 계속 도왔던 현민의 말이므로 경청할 만한 무게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현민의 '경륜가'란 말은 인촌 선생의 사업과 치적이 교육 산업 언론 등 다방면에 걸쳐 있으면서도 이를 상호 연관하여 민족 역량의 신장과 자주 독립이라는 같은 목표에 모아지기 때문에 결국은 민족의 장래를 설계하고 경영하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이같은 경륜가로서의 인촌 성생은 한마디로 애국애족을 평생의 업으로 한 지사이고 신의를 생활신조로 삼았던 안목과 식견을 갖춘 의인이었습니다. '독립자강', '공선사후', '신의일관', '담박명지'라는 그의 좌우명들을 자세히 헤아려보면 그가 평생을 어떤 마음가짐으 로 살았던가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어떤이는 인촌 선생을 민족교육을 창도한 큰교육자로, 혹은 민족기업을 창업한 큰 기업인으로, 또는 동아일보의 항일언론을 주도한 큰 언론인으로, 혹은 해방 후 건국의 초석을 놓은 큰정치가로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런 표현이 인촌선생의 참모습을 그리기에는 적절치 않다고 생각합니다.
-- 김수환, "인촌의 '공선사후(公先私後)' 정신 아쉽다"
다음 글은 정조(正祖)에 관하여 다룬 단락이다. 그가 한 말을 풀이하는 데서 출발하여 그 인물의 됨됨이 등을 설명하였다.
[보기 8.27]
정조는 "萬川明月主人翁自序"란 글에서 군주인 자신을 萬川에 비치는 明月이라고 했다. 백성을 수많은 물에 비유하여, 군주인 자신을 그 위에 하나씩 담겨 비치는 밝은 달이라고 했다. 달은 맑고 밝은 것이다. 군주인 자신을 이에 비유 한 것은 달과 같이 지극히 순수하고 맑은 정치를 하고 있다는 것을 밝힌 것이다. 그는 修己治人의 유교 이념에 따라 자신을 닦는 공부를 철처히 했다. 그래서 정약용 같은 대학자도 진심으로 그를 존경해 마지 않았다. 규장각도 그 공부를 극대화 하기위해 세운 것이었다. 그는 그렇게 하는 것만이 아버지의 비극적인 죽음까지 몰고온 당대 정치의 난맥을 풀 수 있는 길이라고 믿었다. 그는 만천에 비치는 달이 되기 위해 궁성 밖을 나와 수많은 백성들과 직접 만났다. 할아버지 영조도 궁성 문앞, 종로거리 등에서 많은 백성들을 만났지만, 그는 한걸음 더 나가 도성 밖의 역대 先王들의 능을 두루 참배하면서 농촌의 많은 백성들과도 만났다. 행차 때의 "觀光" 인파가 수만에 달했다는 기록도 한둘이 아니지만 최근의 한 연구는 이런 가운데 평민들의 上言 제도가 획기적으로 발달한 사실을 밝혀 주었다.
-- 이태진, "달같은 임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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