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시법(illustration)은 구체적인 사례나 실제 사물 등을 들어서 소주제 또는 그와 관련된 사항을 설명하는 것이다. 곧 예시법은 추상적인 말로 풀이하는 대신에 관련된 실제 사물을 직접 보여 주는 것이다. 흔히 우리가 "예를 들면," "이를테면," "실례를 들어 말하면" 따위 접속 어구를 실마리로 삼아 도입되는 설명이 예시법인 것이다.
다음 글에서는 간단한 사례들을 들어 소주제문이나 그와 관련된 문장들을 알기 쉽게 설명하고 있다. 곧 정의법이나 상술법으로 풀이를 한 다음에 그것을 좀더 구체적으로 서술하기 위해서 적절한 예시를 곁들이고 있는 것이다.
[보기 8.72]
2치적 사고(2値的思考)란 어떤 대상을 두 개의 대립된 상황으로 나누어서 한 쪽을 택하고 딴 쪽을 버리는 사고 방식이다. 이를테면, 긍정과 부정, 흑과 백, 선과 악 등의 두 가지 대립되는 상황을 설정하여 양자 택일을 하고, 어떤 중간적 존재도 인정하지 않는 경우이다. "흑백 논리"라고도 알려 진 이 사고 방식은 수학 문제의 풀이에서 그 대표적인 예를 볼 수 있다. 가령, < 2 + 2>는 4가 정답이고 4가 아닌 것은 모두 오답이며, 정답과 오답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여야 한다. 그 중간치는 인정되지 않는다. 이런 수학 문제의 경우 이외에도 양자 택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서는 2치적 사고 방식이 나타난다. 예를 들면, 전쟁 터에서는 이기기 아니먼 지기 곧 살기 아니면 죽기가 되는 2치적 사고가 지배를 한다. 또 "자유 아니면 죽음을 달라"라는 부르짖음도 2치적 발상에서 나온 것이다.
--서정수/노대규, <말과 생각>
윗 글에서는 주요 명제마다 구체적인 예를 들어서 주제를 완전히 이해할 수 있도록 풀이하고 있다. 이처럼 예시는 구체적이고 실감할 수 있는 설명 효과를 보인다.
다음 예문은 옛날의 고사를 예시함으로써 인상 깊은 서술을 보여 주고 있다. 적절한 예는 그 설명력과 함께 깊은 감명을 주기도 한다.
[보기 8.73]
옛날에는 적어도 스승은 부모와 같은 수준으로 대접했다. 스승을 모실 때에는 그림자를 밟는 것도 실례로 생각하였다. 스승이 세상을 떠나면 상복을 입는 것이 통례이기도 했다. 그 한 예로, 율곡 선생은 퇴계 선생보다 35년 아래로 직접 제자는 아니고 다만 도산 서원(陶山書院)에 은퇴한 퇴계 선생을 찾아 며칠 동안 가르침을 받았을 뿐이다. 그러나 율곡선생은 평생 퇴계 선생을 스승으로 받들었고 선생이 세상을 떠나자 3년 동안 내외분이 침실을 같이 하지 않았다고 한다. 요즈음은 도저히 생각도 못할 일이다.
--"횡설수설," <동아일보>
다음 보기는 낱말의 예들을 들어 설명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 언어 같은 것을 설명하려면 일부 낱말을 대표적으로 드는 일이 많다. 이것은 물론 한국어 전체의 속성을 대표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 특징을 아는데 중요한 구실을 한다.
[보기 8.74]
한국 사람에게 한국말의 특징이 무엇인지 들어보면 흔히 동의어, 즉 같은 현상을 여러가지 말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이라고들 한다. 그러나 동의어는 영어에도 아주 많다. 내가 보기에는 한국말의 특징이 있다고 하면, 그것은 우리의 상상력에 자극을 주는 의성어나 의태어가 풍부한 점이다. 소리를 모방하는 의성어가 많지만 그것보다는 형태, 행동 그리고 태도를 묘사하는 의태어가 더욱더 발달되어 있다. 울퉁불퉁, 돌록볼록 등 물리적인 형태를 표현하는 말, 그리고 더 심리적인 차원에서 우물쭈물, 오순도순, 얼렁뚱땅 같은 의태어가 한국 산문이나 한국 시에 생동감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 우리 애기엄마를 논리적으로 설득하려고 할 때에는 영어를 쓰고, 싸우거나 기분좋게 하려고 할 때는 오히려 한국말로 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한국말을 통해서는 우리 감정이나 정서의 세계를 생생하게 전달할 수 있는 반면 영어는 이중성이 덜해 논리적인 전개가 더 잘되는 것 같다.
-- 마크 세튼, "한국어의 생동감" 중에서
위 보기에서 밑줄친 의성 의태어는 한국어의 특징을 설명하는 데 쓰이는 전형적인 용례가 된다. 예시는 이런 전형성이 있어야 효과가 있다.
예시는 깊은 인상과 실감을 불러 일으킬 뿐 아니라 그 "실증(實證)"을 보여 주는 효과도 있다. 다음 보기가 그러한 구실을 하고 있다. 한국인의 "멋"이 여러 문학 작품에서 검출되고 있음을 낱낱이 예시함으로써 소주제문을 방증하고 있다. 이 단락은 일종의 분류법에 속하는 글이기도 하다. 멋의 여러 유형을 나누어 보여 주기 때문이다.
[보기 8.75]
이와 같이 우리의 음악, 무용, 회화, 공예, 건축 등으로부터 일상 생활 도구, 의상 음식물에 이르기까지 깃들여 있는 이 "멋"과 조화는 우리의 생리 체질까지 제약하면서 발전하여 나왔기로 우리의 문학에서도 이 미의식이 반영되고 있음은 말할 나위도 없는 것이다. 누구나 잘 아는 <춘향전>에서 이 도령이 놀아난 것은 춘향이 기생의 딸이라는 사실을 알기 전에 그네 뛰는 춘향의 멋들어진 자태를 보는 그 순간에 반 해 버렸고, 춘향이 이 도령에게 반한 것도 이 도령이 남원 부사의 아들이라는 사실보다 멋장이 이 도령에게 반한 것이었다. 방자는 방자대로 "신멋"이 들었고, 변학도는 변학도 대로 "텁텁한 멋"이 있다. 이같이 우리의 고전 작품에 나오는 인물들은 다 제가끔 독특한 "멋"을 지니고 나타나서 울고 웃는다. 가끔 "멋없고," "싱거운" 친구가 나타나서는 다른 모든 "멋장이"들의 "멋"을 더욱 빛나게도 하여준다. 뿐만 아니 라 작품 구성에서도 "멋"을 부린다. <춘향전>의 이 도령이 어사 출도하는 대문은 과연 멋들어진 광경이다. 멋있게 해치우는 것을 흔히 "신난다" 한다. 이도령의 어사 출도는 그야말로 신나게 멋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송강의 "관동 별곡" 에서도 송강의 "멋"을 흠뻑 맛볼 수 있다. 시조에서도, 고려 가요에서도, 향가에서도 우리는 그 독특한 "멋"을 얼마라도 찾아 낼 수 있다.
<정병욱, <한국 고전의 재인식> 중에서>
예시법은 위와 같이 비교적 간단한 실례를 보여 주는 것 말고도 실제로 목격한 사건, 옛날에 있었던 역사적인 사실, 전해 내려오는 고사나 설화, 딴 사람에게서 들은 이야기, 신문 잡지나 일반 도서 등에서 읽은 사건 등을 알맞게 골라 써서 주제나 소주제를 실증적으로 설명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예시법은 앞에서 말한 이야기 서술법 곧 서사법의 글과 비슷 한 바가 있다. 그 이야기만을 본다면 일종의 서사법에 속한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그런 이야기를 그저 전해 주는 것이 아니라 소주제문의 설명을 보완하고 뒷받침하는 방향으로 쓰이게 되면 예시법이 되는 것이다. 이런 글은 서사적 설명법의 글이라 하기도 한다.
예시법은 인용법과도 구분된다. 인용법은 대개 명언이나 대화 같은 언어적 표현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상례인데 반해서, 예시는 주로 사건이나 이야기 등을 그대로 전해 따오는 것이 아니라 필자 나름으로 다시 엮거나, 또 때로는 해석을 덧붙여서 쓰는 것이 보통이다.
다음 글은 그 필자가 들은 이야기나 직접 겪은 이야기를 예시법으로 활용하여 소주제문을 강력하고 실감있게 뒷받침 하여 펼치고 있다.
[보기 8.76]
사람은 두 가지 판단의 잣대를 가지고 있다. 훌륭한 임금으로 추앙을 받고 있던 다윗왕도 자기자신에 대해서는 지극히 관대한 잣대를 사용하고 다른 사람에대해서는 지극히 엄격한 잣대를 사용하는 우를 범했으니 우리 범인이야더 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어느 한 도시의 동네사람들 쉰다섯가구가 모여 진지한 회의를 한 결과 질주하는 자동차 때문에 보행이 위험하다는 결론을 내리고 속도 제한 청원서에 서명하여 제출하였다. 경찰에서는 이 청원서를 받아들여 속도제한 표지판을 붙이고 단속을 시작하였다. 며칠 뒤에 다섯 사람이 단속에 걸렸는데, 아이러니컬하게도 단속에 걸린 다섯 사람 모두가 그 청원서에 서명한 사람들이었다고 한다.
20대의 한창 나이였을때, 버스에서 정신없이 졸다가 내려야 할 정류장을 지나쳐 안달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그들을 은근히 경멸하는 마음이 내게 있었다. "얼마나 시간관리를 제대로 못하고 엉망으로 생활을 했으면 여러 사람이 타고 있는 버스속에서 저렇게 입을 벌리고 아름답지 못한 모습으로 졸고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마음속으로 그들을 무절제 하고 게으른 사람으로 낙인을 찍었었다.
그렇게 징죄하고 판단하던 바로 나 자신이 어느날 귀가하는 버스 속에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깜빡 졸다가 내려야 할 버스 정류장을 한 정류장도 아니고 두 정류장이나 지나치는 실수를 범했다. 너무 피곤한 탓이었다고 자위를 했던 내 모습 역시 자신에게는 관대하고 남에게는 가혹한 이중 잣대의 실상임을 깨닫고 실소를 금할 수가 없었다.
-- 鄭 求 英, "두가지 잣대," 조선일보, 93/8/10
다음 보기는 고사를 예시하여 소주제를 실감있게 펼치고 있다. 이런 옛 일화도 설득력있는 글을 이루는데 큰 몫을 하게 된다.
[보기 8.77]
나는 쾌도난마의 현실성을 별반 믿지 못한다. 물론 한칼로 잘라 말할 수 있는 일이 전혀 없는 건 아니다. 그러나 모든 현실이 한칼로 잘라진다고는 믿을 수 없다. 때문에 서양의 고사에 나오는 이른바 "골디온의 매듭" 또는 "알렉산더의 매듭"에 대해서도 쾌감을 느끼는 편은 아니다. 기원전 334년, 알레산더 대왕이 골디온의 신전에 이르렀다는 데서부터 얘기는 비롯된다. 그 신전의 기둥엔 수레 하나가 단단하게 매어 져 있었다. 그 매듭을 풀면, 온 세계의 왕이 된다는 예언이 전해 오던 터였다. 알렉산더는 그 매듭을 한칼로 베어버렸다. 편견으로 얼룩진 대학의 스케치처럼 "가시(可視)의 현상 "에만 집착하는 무리들은 그걸 "매듭을 푼 것"이라고 해설한다. 어처구니없는 얘기다. 마듭을 하나하나 푸어가는 "長征의 노고"와 한 칼로 베어버리는 "단순의 척결"이 도저히 같을 수는 없다. 잘린 매듭은 풀리지 않은 매듭을 그대로 간직 하고 있었을 것임이 분명하다.
<김중배, "알렉산더의 매듭">
다음 이야기도 고사 등을 인용하여 독서의 중요성을 강조하여 설명하였다.
[보기 8.78]
로마의 대정치가며 장군이었던 케사르가 30대초반 이베리아(스페인)지사로 있을 때 이야기다. 하루는 그가 책을 읽다 한참 동안 침울하게 생각에 잠겨있더닌 별안간 대성통곡했다. 친우들이 그 까닭을 물었다. 케사르가 대답했다. "그래, 이것이 원통한 일이 아니요? 알렉산더(대왕)는 그렇게 젊은 나이에 벌써 무수한 나라의 왕이 되었는데 나는 아직 아무것도 한 일이 없으니 말이요." 야심만만했던 케사르가 알렉산 더 대왕의 전기를 읽고 자탄해서 대성통곡한 것이었다.
한권의 책이 무한한 감동을 주는 경우는 허다하다. 철학자 니체는 책방에 그대로 서서 쇼펜하워의 "의지와 관념의 세계"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은 후 이것을 바탕으로 그의 철학을 대성했다는 것이다. 한 권의 책이 사람의 평생을 좌우하는 일도 많다. 자서가 지식 지혜 교양 사색 관찰 상상력 연구 체험 역사의 보고임은 두 말할 나위가 없다. 양서를 읽는 사람은 훌륭하고 뛰어난 사람이 된다. 나라도 마찬가지다. 독서인구가 많은 나라는 흥성한다.
--"횡설수설," <동아일보> 1992,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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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시법으로 이루는 설명 단락
